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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뉴스톡톡]산지에선 가격 폭락이라는데…내가 살 땐 왜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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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7단계 비효율적 '유통구조'…양파 가격 89%가 '유통비'

상황 따라 물량 풀고 조이고…가격 담합 '경매제도'도 수술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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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동어시장에서 어업인들이 경매에서 낙찰받은 갈치를 상자에 담고 있다. 2020.3.18/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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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제주산 은갈치가 남아돈다고요? 정작 저는 비싸서 사 먹지도 못해요"(직장인 김모씨·27)

최근 제주도에서 갈치 가격이 폭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업량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코로나19로 소비가 줄어 재고가 많이 남은 탓입니다. 현재 비축한 냉동 은갈치 물량이 20만 상자를 넘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하지요. 어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산지에선 물량이 남아서 문제라는데 정작 마트나 식당을 방문한 소비자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입니다. 직접 지불하는 갈치 가격은 여전히 비싸기 때문입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냉동갈치 1㎏ 소비자 가격은 2만420원으로, 같은 날 서귀포 수협 냉동 갈치 1㎏ 평균 도매 가격 1만4820원보다 1만원가량 비쌌습니다. 최종 소비자 가격은 중국 시수이현 갈치 1㎏ 거래 가격인 약 6533원보다 4배가량 비싼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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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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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상황과 소비자 체감 가격에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국내 '유통마진율' 때문입니다. 올해 4월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2020년 유통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제주 서귀포 수협에서 위판한 갈치 약 30마리(10㎏)를 서울 대형 소매업체에서 팔았을 때 어민은 최종 판매가격의 48.2%(1만3416원)만 받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지불한 갈치 가격 절반 이상(51.8%)이 유통비였다는 의미입니다.

농산물 가격에도 비싼 유통비가 포함돼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2019년 유통실태 자료'에 따르면 양파 평균 유통비용률은 무려 88.7%에 달했습니다. 소비자가 양파 구매 시 지불하는 돈 중 약 10분의 1만 농가에 전달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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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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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단계 거쳐야 밥상에…복잡한 유통구조

그렇다면 유통비용은 왜 비쌀까요. 지나치게 복잡한 국내 유통 과정에서 한 가지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산물은 어가→산지 위판장→도매시장→도매상→소매상·대형유통업체→소비자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됩니다.

농산물 역시 농가→생산자단체→산지유통인→산지 공판장→가공(저장)→도매상→소매상·대형유통업체→소비자까지 여러 유통 주체 손을 거쳐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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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물 유통경로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19년 유통실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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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도 소매단계에서 발생하는 유통비가 전체 소비자가격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소매단계는 임대료와 인건비가 많이 들고 재포장 비용이나 상품 손실·파손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운송비·포장재비·상하차비·수수료는 고정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 번 책정한 비용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물가와 인건비가 오르기 때문에 이 비용 역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지요. 소비자 가격이 내려갈 경우에는 이 고정 비용을 높이려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중간에서 '입맛대로' 출하물량 조절

복잡한 유통단계는 또 다른 문제를 낳습니다. 산지 농·어가 의도와는 달리 중간 유통 주체가 가격을 왜곡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중간 상인이 밭 단위로 계약해 대규모 사재기를 해놓고 도매시장 출하 물량을 조절하면 가격을 조정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농산물 투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마늘이나 고추·파처럼 대체품이 적고 단기 수급 불안 요인이 높은 품목은 가격 상승을 기대한 유통비용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반면 저장성이 높고 소비량이 일정한 쌀이나 콩 같은 품목은 유통비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거의 매년 겨울 김장철마다 가격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양념채소 양파·파·마늘은 유통비용이 전체 가격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상상황에 취약한 상추·깻잎같은 잎채소 가격이 더 크게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생산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갈 것을 우려한 산지 유통인이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산지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게 업계 관계자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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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농수산물도매시장 과일 경매 2021.9.8/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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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에서 가격 담합도

가격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 최정점에는 '경매제도'가 남아있습니다. 폐쇄적이고 경직적인 경매제도 내에서 가격 담합과 불필요한 비용 부풀리기가 이뤄진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된 문제입니다.

경매제는 당일 공급 물량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일 농수산물 가격이 달라지는 원인이 됩니다. 이 가격에 따라 밭을 갈아엎거나 외국산 수입량을 늘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경매제를 기준으로 농산물을 유통하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현재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 총 46개소 중 공영도매시장은 32개소입니다. 이 중 가락시장 점유율은 30~40%가량으로 유통물량 90% 이상이 경매방식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도매시장 내 도매법인들은 산지에서 출하한 농산물을 경매하고 수수료를 받습니다. 일부 도매법인이 5~10분 먼저 당일 경락가격을 결정하면 이를 기준으로 나머지 중·도매인이 가격을 맞추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경매에서 상품 모양을 좋게 보이기 위해 파를 '단 묶음' 형태로 출하하는데, 여기에 추가 작업비용이 들어 생산비가 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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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연서면의 배 과수농장에서 농민이 태풍에 떨어진 배를 바라보고 있다. 2020.9.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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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방안 언제 나올까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으로 식자재 가격 변동이 유독 심했던 상황에서도 가락시장 5개 청과도매법인(농협가락공판장 제외)이 경매수수료로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돌발 상황이나 날씨·전염병이 비싼 농수산물 가격의 '부수적인' 요인인 배경입니다.

그러나 유통 단계를 단순히 축소한다고 하더라도 산지에서 소비자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유류비와 같은 경비는 거의 비슷할 것이란 분석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통경로가 다양하면 소비자가 같은 품질 상품을 더 저렴하게 구매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요. 물론 유통 단계를 줄이면 수많은 종사자들의 생계가 곤란해지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지적된 문제를 방치하는 건 소비자와 생산자 피해만 키울 뿐입니다. 현재 유통 및 경매제도를 개선하고 투명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와 관련해 농림식품부는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개선과제를 검토해왔으며 지난 6월부터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해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온라인 장보기 업체와 대형마트도 산지 농가와 직거래 또는 계약재배하며 유통마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체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올해 겨울에도 애지중지 키운 농산물과 어획한 수산물을 폐기하는 농가와 어가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피해는 소비자가 함께 나누겠지요. 먹거리 가격 안정이 곧 '공익'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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