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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 "사형선고나 다름없어" 贊 "계획 보완"…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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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권침해 등 고려해 정책 추진

2041년까지 ‘脫시설’ 전환 완료 방침

반대단체 “거주지서 감옥살이” 반발

찬성단체선 “구체적 예산·과정 필요”

전문가들 “사회적 논의 나서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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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달장애인끼리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 아십니까. 위원님들은 시설의 환경이나 프로그램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중증발달장애인 부모 신정화씨는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탈(脫)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탈시설 로드맵)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이렇게 호소했다. 탈시설 로드맵은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단계적 자립 전환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신씨는 자녀가 아무 이유 없이 칼과 가위 등으로 잘라버린 이불, 옷 등의 사진을 소개하면서 “이런 아이들이 밖에 나와서 자립 생활을 한다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겠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희가 소통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된다”며 “3년간 시범사업을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장애인이 (자립이) 가능한지를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놓고 최근 신씨 같은 장애인 가족과 관련 단체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다만 그 주장의 결은 단체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일부 단체는 ‘장애인의 탈시설’ 자체에 반대하며 정부 로드맵에 대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반면 탈시설을 주장해온 단체들은 정부 계획에 구체적인 소요 재원이 부재하고 탈시설 완료까지 20년이 걸리는 점 등을 들어 보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인프라 구축 없는 ‘자립’은 ‘감옥살이’일 뿐”

18일 탈시설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2022∼2024년 시범사업을 통해 탈시설·자립지원 기반 여건을 조성하고, 2025년부터 매년 장애인 740여명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해 2041년까지 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 1회 자립지원 조사와 자립지원사 배치, 주거환경 개선 등의 사업을 통해 장애인 자립 경로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장애인 거주시설은 1539곳, 거주 인원은 2만9000여명이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장애인 개개인 요구에 대응하기 어려운 거주시설의 근본적 한계, 지역사회 단절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 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스웨덴,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30∼40년에 걸쳐 대규모 수용시설 폐쇄와 장애인 대상 서비스 확대 등 탈시설 정책을 계속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의 로드맵이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탈시설 자체에 부정적인 쪽도, 탈시설 기조에 찬성하는 쪽도 모두 이번 로드맵은 부족한 점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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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반대 쪽은 지역사회 인프라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되는 탈시설은 장애인을 사지에 내몰 뿐이라고 비판한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김현아 공동대표는 “정부가 자립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몇몇 대책을 내놨지만 현재 장애인이 거주 중인 시설 여건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며 “예를 들어 정부가 배치하겠다는 자립지원사는 일종의 아르바이트생으로 현재 시설 내 사회복지사가 하는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은 그간 시설 내에서 물리·언어치료 등 서비스를 받았다”며 “이들이 공공임대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치료를 원활하게 받지 못하면 그건 자립이 아니라 그저 아파트에서 ‘감옥살이’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탈시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탈시설을 찬성하는 장애인 단체들 역시 이번 정부의 로드맵에 대해서는 “디테일(세부 지원책)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변재원 정책국장은 “정부 로드맵에 구체적인 예산이나 추진 과정이 빠져있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는 탈시설 목표 인원만 기재돼 있을 뿐 자립 지원을 위한 소요 재원 수치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탈시설 로드맵 이행 기간도 너무 길어 사실상 정부가 “실제 현시점에 시설 거주 중인 장애인을 자립시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변 국장은 “정부가 잡은 로드맵 완료 시점이 2041년인데, 이 정도면 시설 거주 장애인의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신규 시설 입소만 금지하더라도 탈시설을 완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거주시설 신규 설치를 금지하기로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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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상복을 입고 장애인 탈시설 정책 반대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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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설은 ‘주거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다만 이런 시설 개편이 ‘기존 장애인 거주시설의 소규모화’에 그칠 경우, ‘장애인 자립’이라는 탈시설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변 국장은 “장애인 당사자가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갖게 한다는 차원에서 장애인 개개인에게 주거 지원이 이뤄지는 게 옳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로드맵 이행 전에 탈시설 개념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경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 발표를 보면 탈시설화 개념과 정책이 모호하고 불분명하다”며 “정부가 우선 탈시설에 대한 개념적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탈시설에 대한 장애인 가족의 우려도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탈시설에 반대하는 장애인 부모 측의 주장 중 일부는 오해에 기인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탈시설을 하면서 사전에 모든 인프라를 갖춰놓는 경우는 없다”며 “탈시설을 진행하면서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승환·장한서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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