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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흑인 국무장관 콜린파월,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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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전후로 부시 행정부 외교 이끈 인물
퇴임 후 민주당 흑인 대선 후보인 오바마 지지도
한국일보

콜린 파월 미국 전 국무장관이 '9·11 테러'가 벌어진 후인 2001년 9월 17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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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초 흑인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이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1세기 미국 외교 전략의 대전환을 촉발한 9·11 테러 전후에 미 외교정책 전반을 이끈 인물이다.

18일(현지시간) 유가족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파월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게시글에는 파월 전 장관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2차까지 완료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베트남 참전군인 파월은 1958년 미 육군에 입대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임기 말인 1987년에 흑인 최초 국가안보보좌관에 올랐다. 이후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1989년 최연소이자 흑인 최초 합참의장을 지냈고,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는 국무장관에 임명됐다.

파월 전 장관은 한때 유력한 최초 흑인 대통령 후보로까지 꼽혔다. 미 CNN방송은 "90년대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한 걸프전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파월은 71%의 호감도를 얻으며 국민적 영웅이 됐다"고 당시 그의 인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의 공직생활 마지막은 명예롭지 못했다. 국무장관 재임 당시인 2003년 국제사회에 이라크전 명분을 알리기 위해 나선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면서다. 2005년 초 국무부를 떠난 파월은 이후 자신의 당시 연설을 "기록에 영원히 남을 오점"이라고 돌아봤다.

공직 생활 대부분을 공화당 행정부에서 지낸 반면, 퇴임 후에는 민주당과 행보를 함께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지원하면서 그의 취임식 명예 공동의장 중 한 명이 됐고, 이후에도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신 힐러리 클리턴·조 바이든 등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파월은 1973~1974년에 동두천 주한 미군부대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한국군은 지칠 줄 모르고 군기가 엄했으며 머리도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월은 1937년 뉴욕 할렘에서 자메이카 이민자 부모 아래 태어났다. 뉴욕시립대 지질학사,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1962년 결혼한 아내 알마 비비안 파월과의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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