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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오너 기업’이 모든 면에서 우세하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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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글로벌 100대 대상 오너·비오너 기업 비교

“오너 기업 쪽, 성장성·수익성·안정성 모두 앞서”

오너 기업 기준 모호하고 창업 1세대와 세습 2·3세를 동렬로 여겨


한겨레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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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기업의 경영성과가 모든 방면에서 비오너 기업보다 우세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8일 ‘오너 기업 vs 비오너 기업 현황 및 경영성과’ 보고서를 통해 오너 기업(가족 기업)의 우월성을 거들고 나섰다. 오너 기업 쪽이 성장성과 수익성, 안정성 모두에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 전경련, “오너기업, 성장·수익·고용 모든 면에서 우수”

전경련은 신용평가기관인 에스앤피(S&P)의 데이터베이스(DB)인 ‘캐피탈 아이큐(IQ)’ 자료에 바탕을 두고 분석한 결과, 지난달 1일 현재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100대 기업(금융사 제외) 중 오너 기업은 40곳에 이르며, 10대 기업 중에선 8곳이 오너 기업으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1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33조8천억 달러였고, 이 중 40개 오너 기업의 시총이 18조5천억 달러로 55%를 차지했다. 1개사당 시총은 오너 기업이 평균 4637억 달러, 비오너 기업은 2543억 달러 수준이다.

이번 분석에서 전경련은 △단일 지배가족이 해당 기업 소유권 또는 의결권을 50%(상장사는 32%) 이상 가지는 경우 △창업자 또는 그 가족이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 △창업자의 후손이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면 오너 기업으로 분류했다.

전경련은 “2015년 대비 2020년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오너 기업의 매출은 63.2%, 고용은 22.0% 증가해 비오너 기업 매출 증가율(7.1%), 고용 증가율(-0.3%)을 크게 상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오너 기업은 당기순이익(135.6%), 영업이익(100.5%)도 비오너 기업(당기순이익 -11.3%, 영업이익 4.1%)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해외에는 오너 기업이 별로 없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 글로벌 기업 중 상당수가 오너 기업”이라며 “오너 기업이 한국 특유의 기업체계이고 성과가 안 좋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해소해야 하고, 이런 인식에 따라 만들어진 동일인 지정제도, 과도한 가업 상속세율 등 오너 기업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배주주 가문에서 ‘핏줄’로 최고경영자 자리를 이어가는 국내 재벌체제에 대한 옹호다.

■ “창업자 머스크와 3세 이재용을 동렬 비교?”…국내 재벌 문제 논점 흐리기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은 이에 “성과가 좋은 오너 기업은 대개 1세대 창업자가 경영하는 회사”라며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이런 회사가 아니라 2, 3세로 가족 승계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글로벌 오너, 비오너 기업의 경영 실적 비교 자료를 국내 재벌에서 이뤄지는 경영권 세습의 정당화로 연결하며 두둔하는 데 대한 비판과 경계의 발언이다.

전경련의 분석에선 오너 기업의 기준으로 지분 요건 외에 창업자나 가족, 후손의 경영 참여를 덧붙여 범위를 넓게 잡았다. 여기서 ‘경영 참여’는 원칙적으로 이사회 멤버인 경우이지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비등기·비상근) 같은 예외도 있다고 전경련은 밝혔다. 이는 국내외 기업 간 경영 관행과 승계 과정의 차이를 흐릿하게 만들어 글로벌 기업의 창업 1세대와 국내 재벌의 세습 2·3세를 한 덩어리로 묶는 결과로 이어진다.

글로벌 상위 10대 중 오너 기업으로 분류된 8곳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람코, 아마존, 페이스북, 테슬라, 텐센트, 엔비디아다. 대개 창업 1세대 기업이다. 전경련은 이들 기업을 세습으로 경영권을 이어가는 국내 재벌과 동렬로 놓는 것에서 나아가 재벌 정책에 대한 비판의 재료로 삼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넘어간 지 오래인 마이크로소프트, 사우디 국영 석유사인 아람코가 오너 기업군에 포함돼 있다는 대목 등과 맞물려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전경련 쪽은 이에 대해 “조사 당시(2020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빌 게이츠)가 이사회 멤버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람코에 대해선 “특정 가문이 지분을 모두 쥐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조사 대상 전체 글로벌 100대 기업 중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15위) 1곳뿐이다. 이 점에서도 오너 기업과 비오너 기업 비교 분석을 국내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수로 여겨진다. 재벌체제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오너 경영 여부보다는 역량 검증 없이 대물림하는 것이란 논점을 흩트려놓으려는 의도 아닌지 의심스럽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평가·자문 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오너 기업은 나쁘고, 비오너 경영이 좋다는 게 아니며 오너 기업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문제는 2세, 3세로 이어갈 때 경영 능력의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 대표는 “외국의 오너 경영에선 ‘핏줄’이라도 능력 검증 없이 (승계를) 하는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3세로 이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편·불법 합병이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행위는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며, 이런 식으로 오너 경영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건 문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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