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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오징어게임 ‘비밀의 주역’ 오영수의 진짜 모습은…[왓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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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전문 배우의 절제된 연기

삶의 의미 되돌아보게 해주는 명작

영화 ‘봄여름가을 겨울 그리고 봄’

세계적인 K드라마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을 통해 80을 바라보는 노배우 오영수(77)가 큰 주목을 받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늙고 병들고 힘없는 인물’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배역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심지어 어마어마한 비밀을 간직한 핵심 인물이었다는 것이 시리즈 종반에 드러난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캐릭터를 맡아 핵심 인물로 이끌어가는 데에는 그의 탄탄한 연기력이 큰 역할을 했다. 철없는 듯 놀이에 몰두해 뛰어다니거나, 뇌종양으로 곧 쓰러질 것 같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치매 노인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옛날 얘기나 쏟아놓는 어이없는 모습을 연출하다가도, 갑자기 매우 현명하고 슬기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수십년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탄탄한 연기력, 발성 하나하나까지 주목되는 몰입감 있는 연기가 이 비밀 많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연기 경력 58년, ‘스님 전문 배우’

오영수는 연기 경력이 58년에 이른다.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고,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등을 받은 실력파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로 조연, 단역이었다. 주연을 맡은 영화는 손에 꼽는데, 대표적인 게 2003년 발표된 고(故)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다. 이 작품에서 호수 위 뗏목에 작은 암자를 짓고 동자승을 키우며 수도하는 승려 역을 맡았다. 승려 역을 맡은 작품이 몇 편 더 있어서 ‘스님 전문 배우’라는 별칭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오징어게임이 대형 히트를 친 후 밀려드는 광고 모델 제의를, “작품에서 연기한 장면의 의미가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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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스님역으로 나온 배우 오영수의 모습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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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 특유의 철학적 주제와 유려한 영상미, 그리고 절제된 대사가 돋보이는 명작이라는 평이 많다. 반면, 김 감독 여러 영화에서 목격되는, 주제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기괴함과 답답한 진행이 거슬린다는 비판도 있다.

오징어게임에서 오영수의 연기에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서 주연을 맡은 오영수의 연기를 보고 싶어 이 작품을 되돌려 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오영수는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동승, 소년승의 성장기를 지켜보며 인간의 욕망과 번뇌, 해탈을 향한 고행, 인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준다.

그러나 오영수의 연기를 보고 싶어한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선 너무 과하게 절제된 연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영수의 정확하고 묵직한 감정이 이입된 대사도 많이 들을 수 없다. 그만큼 대사가 별로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배우보다는 감독이 중심이 된 ‘감독영화’에 가깝다. 심지어 감독이 직접 출연까지 한다. 김 감독의 이 욕심 때문에 영화를 망쳤다는 혹평까지 나왔고, ‘제발 연기 욕심 내지 말고 훌륭한 배우를 써달라’는 영화평 댓글이 심심찮게 달리기도 했다.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다 코로나에 걸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김기덕 감독이 생전에 저지른 악행에 대해 반감을 가진 시청자라면 더 거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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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파 배우 오영수는 특히 스님 배역을 많이 맡아 '스님 전문 배우'라는 별칭을 얻었다. /SK텔레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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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지나면 봄은 다시 온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매우 정적이다. 조용한 호수 뗏목 위에 지어진 섬 같은 암자. 노승과 함께 수행을 하는 동자승은 장난감도, 친구도 없는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물고기, 개구리, 뱀을 잡아 돌멩이를 매달아 놓고 즐거워 한다. 이를 목격한 노승은 자고 있던 동자승의 등에 커다란 돌덩이를 단단히 묶어 놓고 그 괴로움과 업보를 깨우쳐 주려 한다.

세월이 흘러 동자승이 자라 소년승이 됐을 때 한 병든 소녀가 요양 치료하기 위해 암자로 들어온다.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 소년승은 노승에게 발각되고, 노승이 소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자 소년승은 암자에서 야반 도주한다. 암자의 가장 큰 재산인 불상과 닭 한 마리를 훔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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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승은 요양하기 위해 암자에 들어온 소녀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를 알게 된 노승이 소녀를 돌려보내자, 소년승은 암자에서 야반도주한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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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승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처를 살해한 살인범이 돼 암자로 도피하게 되고, 노승은 그에게 반야심경을 뗏목 암자 바닥에 새기게 한다. 그를 쫓아 암자로 온 형사들은 그가 반야심경을 다 새길 때까지 기다린 후, 노승으로부터 그를 인계받아 압송한다. 그 후 노승은 작은 배 위에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스스로 불을 붙인 후 열반에 든다.

다시 몇 년 후,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암자로 한 장년승이 걸어 들어온다. 이 장년승 역을 김기덕 감독이 맡았다. 장년승은 얼어붙은 배 위 얼음을 깨 사리를 모으고, 얼음으로 불상을 만든 후 사리를 얼음불상 미간에 넣는다. 그리고 암자를 지키며 수도에 들어간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우는 아이를 안고 암자를 찾는다. 장년승은 여인과 아이를 따뜻하게 맞아줬는데 여인은 그날 밤 몰래 석불을 훔쳐 암자를 떠나다 얼음 구덩이에 빠져 숨진다. 여인이 두고 간 아기는 장년승의 보살핌 속에 영화 첫 장면의 동자승처럼 자란다. 사계가 끝나고, 또 새로운 봄이 시작된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18년이 지난 지금 봐도 삶의 의미를 잔잔히 되돌아보게 해주는 영화다. 자신을 부각시키며 작품에 부담을 주려 하지 않는 오영수의 절제된 연기도 다시 한 번 주목된다.

개요 영화 l 한국 l 2003년 l 106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스님 전문 배우’ 오영수의 절제된 연기

평점 IMDb⭐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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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한 에버그린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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