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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Mr. 굿 리스너 미래 소리에 반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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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기자]

회장에 오르자마자 '로봇업체'를 인수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자동차 기업이 웬 로봇"이냐는 거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로봇업체를 인수하더니 UAM, 자율주행차, 수소경제 등 미래 비전을 하나둘씩 꺼내들었다.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이 내달린 1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정 회장은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의선의 1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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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사진=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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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임직원을 믿습니다. 같이하면 정말 '되겠다' 이런 생각 많이 합니다." 지난 3월 16일 온라인 타운홀 미팅.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공식 수장'에 오른 후 첫번째 열린 타운홀이었다.

혹자는 '회장에 오른 만큼 권위를 강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코로나19 난국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공을 '몹쓸 바이러스'에 발빠르게 대처한 임직원들에게 돌렸다. 성과급 지급 기준을 바꿔 직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현대차그룹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정 회장의 '탈권위'에 적잖게 놀랐지만, 내부 사람에겐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 2년 전 열렸던 2019년 타운홀 미팅에서도 정 회장은 청년세대 관련 도서인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를 소개한 후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알려주세요"라고 청했었다.

임직원들이 세대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현대차 사람들은 정 회장이 카리스마로 무장했던 이전 총수와 다르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챘다. 실제로도 그렇다. '회장' 정의선은 "이봐 해봤어"란 어록을 남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불도저'란 별칭으로 불린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같은 카리스마형 리더가 아니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든 구성원과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매니저급(대리 이하) 직원에게도 전자우편을 직접 보낸다. 올해 타운홀 미팅에서 임직원에게 공을 돌린 건 그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일 뿐, '정의선'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결'을 가진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키를 잡은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그는 수석부회장에 오른 2018년 9월 이후 2년여 만에 현대차그룹 회장에 선임됐다. '굿 리스너(listener)'란 별칭답게 그는 임직원들과 소통하면서 현대차그룹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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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종합 모빌리티사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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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건 현대차의 '미래 플랜'이다. 올해 초 정 회장은 "2023년 로보택시를 상용화하고, 2028년엔 도심항공교통(UAM·Urban Air Mobility)을 출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엔 "2040년까지 누구나, 어디에나 수소에너지를 쓸 수 있는 수소사회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정 회장이 로봇·UAM·수소경제를 현대차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셈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현대차그룹의 중심은 뭐니뭐니 해도 '차車'다. 하지만 '정의선의 구상'엔 '차'보단 다른 청사진이 더 많다. 대체 정 회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가 정 회장의 1년을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1년을 통해 현대차의 '미래 비전'을 엿볼 수 있어서다.

■포인트❶ 로봇과 DNA = 정 회장이 '공식 수장'에 오른 후 가장 먼저 추진한 인수·합병(M&A)은 무엇일까. 지난해 12월 세계적인 로봇기업 '보스톤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지분 80.0%를 인수한 거다(올해 6월 M&A 완료).

보스톤 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로봇 '스팟(Spot)'을 출시한 곳이다. 연구용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도 개발했다. 자율주행(보행)·인지·제어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정 회장이 왜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가장 먼저 M&A했느냐다. 답은 간단하다. 정 회장의 '미래 비전'의 중심에 로봇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정 회장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수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더 이상 차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세상에 공포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로봇'을 미래 포석으로 활용하기 위해 보스턴 다이내믹스만 인수한 게 아니다. 사내 로보틱스랩을 통해 자체 로봇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로보틱스랩에선 웨어러블 로봇 AI서비스 로봇 로보틱모빌리티 등 인간과 공존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 회장이 '로봇'을 통해 설정하려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DNA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이 질문의 답은 '협소한 차'를 탈피한 '미래 모빌리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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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미래 모빌리티는 사람이나 물품을 이동시키는 '자동차'의 역할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무인택시, 스마트 물류 등 인간의 욕구가 모빌리티에 반영될 것이란 얘기다. 정 회장이 '로봇기술'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인간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통합 모빌리티'를 꾀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포인트❷ 모빌리티 핵심축 = 정 회장은 '로봇기술'을 발판으로 미래 모빌리티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그 생태계는 UAM·자율주행·전기차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 UAM은 '정의선 구상'의 첫번째 축이다. UAM이 '자동차'란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흥미로운 모빌리티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인류가 원하는 곳으로 스트레스 없이 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서비스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UAM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UAM을 향한 현대차그룹의 발걸음도 바쁘다. 2028년엔 도심 운영에 최적화한 '완전 전동화 UAM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2030년대엔 지역항공 모빌리티 제품을 선보인다는 구체적인 플랜도 세웠다. 이를 위해 서울을 비롯해 미국 주요 도시, 싱가포르 등과 UAM 이착륙장 공사 관련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이 작업을 수행하는 현지법인도 설립했다.

'정의선 구상'의 두번째 축은 자율주행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로보택시'를 빼놔선 안 된다. 현대차와 액티브(미 자율주행 기술기업)가 공동 설립한 '모셔널'은 지난 9월 독일 뮌헨 IAA 모빌리티에서 아이오닉5 기반의 로보택시를 공개했다.

이 로보택시는 모셔널이 개발한 첫번째 상업용 완전 무인 자율주행차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2023년부터 글로벌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에 공급해 완전 무인 자율주행 서비스를 꾀할 계획이다. 이 역시 현대차그룹의 '미래'가 모빌리티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포인트❸ 또다른 축 수소 = 이처럼 '로봇'에서 시작한 정의선의 구상은 UAM, 자율주행차에서 구체화한다. 또다른 '축'도 있다. 수소다. 언뜻 수소는 모빌리티와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래 지구와 인류를 위한 솔루션"이란 현대차 말에서도 구체성이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정 회장이 추구하는 수소산업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이 역시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모빌리티과 궤를 함께한다.

모빌리티 관통하는 수소연료전지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현대차는 지난 9월 7일 개최한 전략발표회인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에서 수소산업의 밑그림을 발표했다. 정 회장이 직접 나서 수소연료전지기술과 수소모빌리티 등 수소경제의 비전을 제시했다. 'HTWO(에이치투)'로 명명한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브랜드도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3월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 공장인 'HTWO 광저우'를 착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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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보듯 현대차그룹의 수소 플랜의 중심엔 '수소연료전지기술'이 있다. 정 회장이 추진하는 수소경제의 핵심이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고, 이는 모빌리티를 관통하는 중요한 기술이란 거다.

익명을 원한 수소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근간이다. 일반 승용·상용차뿐만 아니라 기차·선박·비행기는 물론 도심항공(UAM)에도 적용 가능한 미래 교통수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 회장은 지난 1년 미래를 위한 초석을 놓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미래에 집중하다 보면, 현재를 소홀히 할 수 있다. 당장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작업에 제동이 걸릴 우려도 있다. 미래와 현재가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그럼 정 회장 1년의 실적은 어땠을까. 정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글로벌 경영환경은 불투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원자재 가격 상승,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등 숱한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고난의 시기를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신차新車와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현대차의 올 2분기 매출액은 24조5847억원으로 전년 동기(18조1471억원) 대비 35.4%(6조4376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2분기 3772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올해 1조9826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판매량도 늘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 3분기 기준 505만여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전년 동기 대비 13.1% 증가한 수치다. 친환경 브랜드로서의 입지도 굳히고 있다.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가 판매한 친환경차는 53만2000여대로 지난해보다 68.0% 증가했다. 주가 역시 상승세를 탔다.

정 회장 취임 당시 17만8000원이었던 현대차의 주가는 현재 2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심화하면서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이슈가 해소되면 다시 상승세를 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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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7일 발표한 ‘하이드로젠 웨이브’를 통해 수소서회의 비전을 제시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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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정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도 숱하다. 정 회장이 미래성장동력으로 삼은 UAM, 자율주행차, 수소산업 모두 언제 현실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UAM이 안정적인 비행 성능을 갖추려면 배터리 성능이 지금보다 월등하게 개선돼야 한다. UAM 개발에 맞춰 신호·관제·운행관리체제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수소연료전지 역시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생산비용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연료전지에서 촉매제 역할을 하는 백금의 가격이 높고 연료전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과 설비의 값도 비싸기 때문이다.

미래와 현재는 함께 돌아가야

더구나 수소연료전지는 기술적으로 초기 단계에 있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뿐만 아니다.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수소연료탱크부터 전기분해 장치, 저장·운송 장치 등이 필요한데 부품마다 기술적 난제가 숱하다. 전기차가 대중화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라도 빨리 풀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어쨌거나 정 회장은 현대차의 팔색조 변신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지금 1년의 기록은 10년 후 현대차그룹을 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자동차를 넘어선 종합 모빌리티사로 이끌 수 있을까. 그의 또다른 1년이 주목된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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