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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외국인 vs 개미… 반도체·네이버·카카오 놓고 석 달째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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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에서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계속되고 있다. 외국인은 최근 석 달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11조원 순매도하며 하락장을 이끌고 있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특히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삼성전자우(005935) 같은 대형 반도체주에 집중됐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이 기간 외국인이 쏟아낸 매물을 받아냈다. 석 달간 해당 종목들을 약 12조원어치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메모리 반도체의 피크아웃(경기가 고점을 찍고 하강하는 것) 우려와 미 달러화 강세 및 채권 금리 상승이라는 겹악재 속에서, 개인과 외국인이 상반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외국인의 ‘동상이몽’은 국내 양대 빅테크인 네이버(NAVER(035420)카카오(035720)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IT 성장주의 투자 매력 약화와 국내 정책 규제 리스크에 주목한 외국인은 빅테크의 보유 비중을 낮추고 있는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단기 급락해 저점에 도달했다는 판단 하에 빅테크 ‘저가 매수’를 지속하고 있다.

조선비즈

최근 3개월 간 외국인, 개인의 반도체주 매매 금액. /단위=백만원, 자료=한국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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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악재는 ‘메모리 반도체 피크아웃’, ‘인플레이션’, ‘강달러’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8조7000억원, SK하이닉스 주식을 총 1조7000억원 순매도했다. 삼성전자 우선주도 5900억원어치 내다 판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 반도체주에서만 석 달간 11조원어치의 외국인 매물이 나온 것이다.

외국인이 대형 반도체주를 대거 팔고 있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끝났다는 비관적 전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대다수 전문가는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슈퍼사이클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는 반도체 경기가 4분기 이후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3분기 동남아시아의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메모리 외 IT 부품 업체들의 공급에 큰 차질이 생겨, 전방 업체들은 메모리반도체 재고를 쌓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고가 소진되기 전까지 디램(DRAM) 가격 상승세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의 전력난으로 인해 IT 공급망 차질이 더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디램 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만 시장 조사 기관 트렌드포스는 올 4분기 D램의 평균 거래 가격이 전 분기와 비교해 최고 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2018년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사이클 이후에도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때의 악몽 탓에 업황이 나빠지기 전에 먼저 매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에 주력하는 업체들은 맞춤형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여러 업황을 두루 반영하나,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사이클과 유사하게 움직이는 시클리컬(경기 민감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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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최근 3개월 간 주가 흐름. /단위=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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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비슷한 주가 흐름을 지속해왔다. 미국 마이크론의 경우 8월 초 82달러까지 올랐으나, 이달 15일(현지 시각) 67.68달러로 하락했다. 약 두 달 만에 주가가 17% 넘게 내렸다. 웨스턴디지털 역시 같은 기간 19.4% 하락했다. 이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5%, 19%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증시 조정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 역시 국내 반도체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지면 채권 만기가 도래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의 가치가 떨어져, 채권 매도세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시장에 풀린 채권의 양이 증가해 채권 값은 하락하고 반대로 할인율(채권 금리)은 높아진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지며, 이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주가를 견인하는 성장주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린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강 달러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신흥국 증시에는 부정적인 요소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달 15일 1165.22원에 그쳤으나, 이달 12일 1196.89달러까지 올랐다. 미국이 테이퍼링을 실시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달러화를 모으게 되면, 달러 가치는 필연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정 본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의 금리 상승과 강 달러에 대응해 신흥국에 대한 포지션을 줄이고 있는데, 한국 주식의 보유 비중을 조정하려면 당연히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많이 팔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노 센터장도 “외국인은 글로벌 패시브펀드(특정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에 투자하는 펀드)를 통해 한국 주식의 비중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삼성전자는 한국 주식 가운데 패시브펀드에 가장 많이 편입된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반도체 업황 악화와 신흥국 증시 조정에 대비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대거 팔고 있는 것과 달리, 개인 투자자는 해당 종목에 장기 투자를 하려는 수요가 많다. 노 센터장은 “삼성전자는 분기 배당도 하고 장기적인 성장성이 높기 때문에, 저가에 매수해 오래 들고 있겠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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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의 네이버, 카카오 본사(왼쪽부터).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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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이 판 네이버와 카카오, 개인은 저가 매수로 대응

개인과 외국인은 네이버와 카카오에 대해서도 상반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개월간 개인은 네이버와 카카오 주식을 총 1조7500억원어치를 사들인 반면, 외국인은 1조1000억원 순매도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빅테크 주가가 지나치게 큰 폭으로 하락해 저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 구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네이버 주가는 지난 9월 초 이후 13% 넘게 하락한 상태며, 카카오 주가는 22% 가까이 떨어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두 회사 주가가 특히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 정치 규제에 기인한 만큼 ‘최악의 악재’는 해소됐다고 분석했다.

이문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카카오의 경우 9월 초부터 플랫폼 전반에 규제 이슈가 불거지자 시가총액이 14조원 넘게 증발했는데, 국정감사가 마무리돼가는 가운데 회사 측에서 다양한 상생안을 내놓고 있는 만큼 최악의 (주가) 구간은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외국인의 네이버·카카오 대량 매도는 미 증시의 빅테크 주가 부진과 관계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페이스북 주가는 최근 한 달간 12% 넘게 떨어졌으며, 구글 지주사 알파벳 주가는 9월 중순 2888달러에서 이달 초 2673달러까지 내렸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성장주의 투자 매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며 IT 플랫폼 주가도 동반 하락한 것이다.

정 본부장은 향후 1년 안에 국내 대형주들이 의미 있는 반등에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중반부터 국내 증시의 고점이 계속 낮아지며 약세장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주가가 반등하더라도 단기 하락폭을 일정 부분 회복하는 ‘되돌림’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 연간 수익률은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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