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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국정농담] '北피살' 때 靑 대응, 설마 30년간 '봉인'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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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靑 "北피살 정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 예정"

임기 내 3심 안 끝나면 최대 30년 '봉인' 가능

1년전 "내가 직접 챙기겠다"던 文 약속 '흔들'

해경은 "'성명불상' 北군인, 살인 피의자 입건"

뒤늦게 "초기자료 檢에 넘겨"...국감도 與 다수

'종전선언' 美설득 '올인'...진실규명 쉽잖을 듯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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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서해에서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방부, 해양경찰청은 여전히 유족 등에게 당시 사건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특히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정보공개청구 재판이 거듭되자 사건 당일 보고·지시 관련 정보들을 두고 “비공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예정”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재판이 3심까지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 퇴임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청와대 내 정보들은 최대 15년이나 30년까지 ‘봉인’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2037년에는 문 대통령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나이가 각각 84살, 83살에 달하게 된다. 2052년이면 문 대통령은 물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차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성명불상’의 북한 군인을 살인죄 피의자로 입건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공개했다. 사건의 정황이 아직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음을 암시한 것이다. <관련기사> ▶[단독] 文임기 7달 남았는데···靑 "北피살 정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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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공무원 피살 당시 정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 예정”

15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소송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의 서훈 실장 측은 지난 14일 공무원 피살 관련 정보공개청구 1심 재판부에 “대통령기록물은 국가안전보장, 국민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철저한 보존 및 보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특별히 관리되고 있다”며 “향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인 정보의 경우도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에 따라 보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기 전 정보라는 유족 측 주장을 반박한 내용이다. 서 실장 측은 아울러 “첩보의 입수 경위, 관련 부서의 대응, 우리 군의 군사작전상황, 북한군 동향 등 군사적 비밀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어 이를 공개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안보이익을 해칠 우려가 여전하다”며 “정보 공개를 안 해도 유족이 입게 되는 구체적 불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은 법령상 공개가 원칙이나 국가안전보장, 국민경제, 정무직 인사 등과 관련된 정보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비공개 기간을 따로 둘 수 있다. 일반 지정 기록물은 15년, 개인의 사생활 관련 기록물은 30년의 범위 내에서 열람·사본 제작이 허용되지 않는다. 자료 제출에 응할 의무도 없다.

유족 측이 요구한 정보들은 아직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인정받더라도 보호기간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다음 날(2022년 5월11일)부터 시작한다. 유족 측이 청와대에 요구한 자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방부·해경·해수부에 받은 보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방부·해경·해수부에 내린 지시’ ‘청와대가 ‘남북간 통신망이 막혀 있다’고 보고 받은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소송이 끝나지 않으면 최대 15~30년 간 해당 자료들이 ‘봉인’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욱 국방부 장관 측 역시 “중요한 국방 정보”라며 모든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2020년 9월22일 오후 3시30분경 북한군이 실종 공무원을 발견한 좌표’ 정보는 보유하고 있지 않음을 재차 강조했다. 앞서 지난 9월29일 해당 재판부는 ‘우리 군이 북한군 대화를 감청한 녹음파일’ ‘북한 통신내용과 국방부 산하 통신내용’ 등의 정보에 한해 합동참모본부 내 특수정보보호시설에서 비밀심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심리는 당사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재판부만 비공개로 정보를 열람·심사하는 제도다. <관련기사> ▶[단독] 文정부, '北피살 공무원' 실종 좌표도 확보 안했다..."위치 대략 추정"

앞서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는 지난해 10월 국방부에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 파일 등을, 해경에 어업 지도선 동료 9명의 진술 조서 등을, 청와대에 사건 당일 주고받은 보고·지시 사항 등을 각각 밝혀달라며 정보 공개를 청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에 이씨는 올 1월13일 서울행정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첫 재판은 소송을 제기한 지 7개월이 지난 8월20일에야 열렸다. 청와대와 국방부, 해경 측은 첫 재판에 돌입하기 전부터 “한반도 평화 증진, 군 경계 태세 등 국익을 현저히 침해할 수 있다”며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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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성명불상’ 北군인, 살인 피의자 입건···초기자료는 檢에 넘겨”

김홍희 해경청장 측 역시 정보 비공개 입장을 굽히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김 청장 측은 소송 자료에서 “해경은 이 사건(공무원 북한군 피살 사건)에 대해 성명불상 북한 해양경비군인을 살인죄의 피의자로 입건했다”며 “현재 법무부와 미국 국무부를 통한 국제형사사법공조, 중국 해경국을 비롯한 관계기관의 협조 요청 등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경 사건을 살인죄로 수사한다는 것은 이날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피해 공무원의 신분은 현재 사망자가 아닌 실종자 상태다. <관련기사> ▶[단독] 해경 "'성명불상' 北군인, 공무원 피격 살인 피의자로 입건"

다만 김 청장 측은 피의자 신분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당시 북한의 누가, 언제, 어디서, 왜, 무슨 행위를, 어떻게 했는지를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여지를 남겼다. 미국·중국과 수사 공조까지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수사를, 어떻게 진행 중인지 여부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해경 측은 나아가 15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실제 재판에서 유족 측이 요구한 초기 수사 자료 원본을 이미 검찰에 넘겼다고 뒤늦게 밝히기도 했다. 법정에 나온 해경 직원은 유족 측이 요구한 ‘무궁화 10호 직원 9명의 진술조서’ ‘초동수사 자료’ 등의 원본을 수사를 지휘하는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이미 넘겼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유족 측이 직접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부터 소송으로 번진 지금까지 해경 측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간 정보공개 요청을 받은 정보를 모두 원본으로 보유한 것처럼 주장해 오다가 재판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입장을 다소 바꾼 것이다. 이 직원도 이 사실을 전날인 14일에 알았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단독] '北피격 살인죄 수사' 해경, 이제 와서 "초기자료 檢에 넘겼다"

서울경제가 입수한 정부 측 소송 자료에 따르면 김 청장 측은 지난 9월18일 수사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하겠다면서 “원본을 제출할 경우 ‘분실 등 사고 우려가 있으므로’ 사본 형식으로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청장 측은 또 이날 소송 준비서면을 통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정보가 공개되면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영향력을 받을 개연성이 농후해 공정한 수사가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기 수사자료 원본들을 검찰에 넘긴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가 해당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해경 측은 변론종결일인 오는 29일 전까지 인천지검에서 관련 자료 원본을 받아 내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답변을 했다. 1심 재판부의 최종 판단은 내달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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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은 ‘與 다수’···유족, 해경청장 ‘월북’ 명예훼손 고소

공무원 피살 사건 규명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다만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주목도는 높지 않았다.

김 청장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해경 국정감사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해경의 중간수사발표를 유족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해경청 담당 국장과 과장을 경고 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인권위가 권고했는데 안 받아들일 거냐”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 지적에 “인권위의 결과는 무겁게 받아들이나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김 청장은 “특히 채무 금액 등 인권위가 낸 부분은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해경의 의견을 제출했으나 인권위가 반영을 안했다. 인권위 결과에 토를 달 순 없으나 실종자나 가족에 대한 명예를 실추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피격된 공무원이)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뒤집을 만한 증거를 발견했느냐”는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 질의에는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고 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 유족은 지난 8일 김 청장을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날은 문 대통령이 숨진 공무원의 아들에게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 아드님과 어린 동생이 고통을 겪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항상 함께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유족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약속만을 한 줄기 희망처럼 여겨 지금까지 믿고 기다렸지만 1년이 지나도록 해경의 인권 침해를 지켜만 봤고 진실 규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며 “약속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웠고 대통령이 침묵하는 동안 한 가정은 무너졌다”고 말했다.

피살된 공무원의 아내 권모씨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피켓을 들고 30분간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피켓에는 ‘월북게임’ ‘빚 있으면 월북 당한다’ ‘월북 당하면 총살이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권씨는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과의 약속을 잊은 건 아닌지, 편지를 받은 지 1년이 되는 것을 계기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청와대 앞을 찾았다”고 밝혔다. 유족을 대리하는 김기윤 변호사는 “인권위가 해경의 중간수사 발표가 고인과 유족의 인권침해를 했을 뿐만 아니라 고인의 채무액수를 부풀려 발표하고 ‘정신적 공황상태’라는 표현도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결정했음에도 해경은 아직 유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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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는 미국 상대로 北대화·종전선언 ‘올인’···진실 규명 쉽잖을 듯

유족들과 야권 정치인들의 압박에도 현 정부가 임기 내에 북한의 협조를 얻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진상을 완전히 규명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지난 4일 북한이 남북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복구한 것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위한 미국 설득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북미 대화가 기로에 선 시점에서 김정은을 굳이 자극할 사안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대화의 물꼬부터 튼 다음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야 해당 사건 문제도 다룰 수 있다는 게 정부 측 입장이다.

소송 당사자인 서훈 실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남북 간의 연락채널이 다시 소통이 됐고 (미국 측과)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를 한 번쯤 점검하고 전반적으로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종전선언도 그 일부가 될 것이고 포함해서 같이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이 진행된다면 제재 완화 문제도 같이 논의돼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서 실장과 만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북한과 만나서 협상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 고위당국자는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두고 “결코 이벤트성으로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16일 종전선언 구상을 다룰 한미일 북핵수석협의에 참여하기 위해 4주 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13일 미국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종전선언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며 “한미 양국 고위급이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현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별개로 국민 생명과 관련한 진실 규명은 반드시 구분해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게 나온다. ‘월북’ 여부는 북한군이 우리 국민의 목숨을 앗아갈 어떠한 명분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지적대로 정부의 ‘월북’ 발표가 애초부터 뚜렷한 근거에 기댄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유족과 국민들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문 대통령의 1년 전 약속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정부가 그 뒤로 이상하리만큼 이 사건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사실도 함께 말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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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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