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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계획에 없던 임신이 찾아왔다... 이 여성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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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십개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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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십개월의 미래>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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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은 축복이지만 예상치 못한 임신은 특히 결혼제도에서 벗어난 여성에게 당혹을 넘어서 삶 자체가 바뀌는 문제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두꺼운 유리천장은 여성이 뚫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임신은 두 사람이 벌인 인인데 왜 그 책임은 여성이 더 지는걸까. 10개월 동안 아이가 자라는 몸도 여성, 낳는 것도 여성, 키우는 것도 여성일 경우가 많다. 우울감과 죄책감도 전적으로 여성에게 전이된다.

갑작스러운 임신이 미치는 영향

스물아홉 개발자 미래(최성은)는 덜컥 임신 10주 진단을 받는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복잡하다. 이름 없는 곳에 들어서는 느낌, 여기가 어디인지도 누군지도 모르겠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어째서일까. 남자친구 윤호(서영주)랑 언제 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임신이라니. 분명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 내려 해도 6개월 동안 한 적이 없단 말이다. 외계인의 짓이거나 악마의 씨는 아닐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이 뱃속의 아가는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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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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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딱이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성공하겠다고 스타트업에서 고군분투한 지 오래. 드디어 결실을 맺어 투자 받게 되었지만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꽃길만 걷게 될 줄 알았는데 사무실을 중국으로 옮겨야 한단다. 미래는 고민 끝에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리고 출산 휴가는 딱 1달만 쓰겠다고 선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하기만 했다.

대표는 정규직 되자마자 출산 휴가 쓰냐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이 회사에 바친 인생이 얼마인데 이런 대우를 받는단 말인가' 싶어 서운함이 밀려온다. 이 문제로 티격태격하던 중 화가 난 대표는 그럼 여기서 그만하자며 대화를 끝내버렸다. 미래는 이 상황에 지쳐 이성을 잃고 그만두겠다며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벌써부터 조금만 참을 걸 후회의 마음이 싹튼다. 매번 불같은 성격 때문에 될 일도 안된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일뿐이다.

그 길로 나쁜 마음을 먹고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구구절절 늘어놓아 답답하다. 듣자 하니 낙태는 불법이라며 빙빙 돌려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사실 계산적이고 이성적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가 살겠다고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조금 더 생각하고 오겠다"라고 말하던 순간 의사는 빠른 결정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며 회유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명을 두고 벌어지는 아이러니는 미혼 여성을 더욱 압박한다. 이쯤에서 취집(취업과 시집의 합성어)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까. 내 코가 석 자지만 혼자서만 결정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풀지 못한 문제는 없었는데 이번 문제는 복잡하고 어렵기만 하다. 그렇게 혼돈의 1분 1초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멀고도 험한 결승점은 아득하기만 하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 바로 '나'

<십개월의 미래>는 여성이 임신해 후 겪게 돼 혼란과 관계, 선택을 무겁지 않게 담아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대책 없는 캐릭터의 낙천성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중절 아니면 출산이라는 선택 대신 고민하는 과정에 주목하며 성장하는 인물을 그렸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캐릭터로 똘똘 뭉친 주인공 미래는 흔한 진로 고민에서 한 발짝 나아간 상황에 처해있어 머리가 아프다. 본인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도 벅찬데, 한 인간을 품고 곧 엄마가 되어야 한다니 기막힐 따름이다.

이제 곧 서른인데 뭐 하나 해 놓은 게 없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거라며 코딩 스타트업에 인생을 걸었었다. 퇴직 후 남들 다하는 치킨가게를 차리려는 부모 세대와 달리, 보장되어 있지 않았지만 밝은 미래를 확신하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정신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성공이란 길은 험하고 길게만 느껴졌고, 부모로부터 갖은 잔소리를 듣는 것도 모자라 손을 벌려야 할 판이다.

남자친구 윤호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전혀 결혼은커녕 아빠 될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우연히 선배 사업에 엮여 빚을 떠안게 되면서 인생이 꼬였기 때문이다. 독립하겠다며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사업을 돕기로 결정한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 여러 사건을 책임지려 노력할수록 수포로 돌아간다. 주변에는 본인을 포함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주인공이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은 많은 것과 맞바꾸어 할 경우의 수다. 과연 미래는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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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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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상 영화가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중심에는 최성은이란 배우가 있었다. 미래를 연기한 최성은 톡톡 튀면서도 진중한 연기가 뛰어난 배우다. 마치 미래에 빙의한 듯 메소드 연기로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이끌어간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 쪽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한 이십 대 후반의 여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영화 <시동>의 사연 많은 빨간 머리 라이더를 연기에 박정민, 마동석, 정해인 사이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선보인 최성은은 다양한 매력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누비고 있는 괴물 신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십개월의 미래>는 가히 '최성은의 발견'이라 해도 무관하다.

또한 산부인과 전문의로 나오는 백현진은 츤데레 의사로 분해 진진한 어른의 마음을 대변한다. 감정 없어 보이는 톤이지만 진심으로 미래를 걱정해 준다. 감정이 앞서는 미래를 항상 이성으로 다독인다. 그전 작품에서 보여준 폭력적인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캐릭터라 비교해서 보는 즐거움이 크다. 남궁선 감독은 단편 <세상의 끝>으로 화려하게 데뷔, 장편 데뷔작 <십개월의 미래>를 선보여 세계 유수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았다. 중간중간 챕터를 나누어 놓은 의도적인 설정 때문인 걸까.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보고 있거나 단편 소설집을 읽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다.

영화는 10개월 동안 줄 곳 미래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살면서 이처럼 오랫동안 나를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선택의 순간을 종용하는 주변에 휘둘려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또렷해지는 게 있었다. 그 와중에 잃지 말아야 단 하나는 바로 '나'였음을 깨닫는다.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해야 하는 모성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터였다. 임신 중인 인물과 주변 인물이 겪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세밀히 잡아냈다. 비난의 화살이나 책임의 주체를 논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어떤 선택이든 소중하다는 응원 섞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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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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