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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낙연 고향’ 호남, 왜 이재명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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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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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심은 한때나마 착잡했다. 경선 불복 조짐이 더불어민주당의 원팀 붕괴를 넘어 이재명 후보의 경쟁력까지 훼손시키는 게 아닌가 우려했다. 치열한 진영 간 대결이 예측되는 이번 대선에서 내분은 사실 공멸이나 다름없다. 광주시민은 이러다가 5월 광주의 꿈마저 무너지나 싶었다.

광주 민주진영 인사들은 후보 선출 당일(10월 10일) 이의제기가 터지자 긴박하게 움직였다. 지난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로 교체를 요구했던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사태를 떠올렸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도 중도 사퇴자의 무효처리를 두고 갈등이 나왔지만, 이번처럼 격렬하지는 않았다.

민주당 경선에서 보지 못한 초유의 강한 파열음이었다. 이낙연 후보 측의 공격은 연일 계속됐다. 불안한 후보를 넘어 위기의 후보라고 부채질했다. 분열의 조짐마저 보였다. 광주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광주 민주인사들은 지난 10월 13일 ‘원팀 촉구 시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낙연 후보의 경선 승복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경선결과를 부정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걱정스럽다”며 “단결할 때 단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또다시 과거의 늪으로 빠져 촛불시민과 함께 이룩한 모든 성과와 희망을 송두리째 짓밟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80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광주는 오로지 민주정부를 위해 헌신해왔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기본권 시대를 여는 대동세상 5월 광주의 바람을 위해 경선 승복, 원팀”을 촉구했다. 이낙연 후보에게 첫승을 선물한 광주·전남에서 경선 승복을 요구하는 첫 메시지였다.

성명에 참여한 한 인사는 “민주당 경선결과가 나온 지난 10일 이의제기 같은 불복 움직임이 나오자 바로 저녁부터 전화와 만남을 통해 의견을 모았다”며 “경선 불복 사태는 대선을 앞둔 민주당뿐 아니라 민주진영에도 엄청난 악재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광주의 압박 메시지가 전파됐는지 이 후보는 경선결과 수용을 선언했다. 아슬하고 긴박했던 사흘이었다.

■이낙연 ‘도덕성’보다 이재명 ‘돌파력’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호남은 내심 고민이 많았다. 광주시당 한 권리당원은 “양 후보의 캐릭터와 인생 내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상당수 당원이 고심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면서 “광주는 이재명 후보의 본선 경쟁력과 돌파력을, 전남은 이낙연 후보의 고향으로 깨끗한 후보론에 더 마음이 다가선 것 같다”고 후평했다.

호남은 역대 경선에서 시대정신과 본선 경쟁력을 잣대로 전략적 투표를 실시했다. 지난 2002년의 경우 이인제 후보(31.3%)의 대세론을 뚫고 광주는 시대정신의 아이콘 노무현 후보에게 1위 37.9%를 몰아주었다. 이른바 노풍이었다. 2012년에는 또다시 부산 출신 문재인(48.5%)을 선택했다. 당시 광주·전남의 장인으로 불렸던 손학규 후보는 32.3%에 그쳤다. 2017년에는 안희정 바람(20%)이 불었지만, 다시 될 만한 후보 문재인에게 5년 전보다 더한 몰표(60.2%)를 주었다.

광주·전남 당원들이 고심은 했지만, 호남 전체로 보면 50.75% 대 42.8%로 이 지사의 승리였다, 호남 민심은 도덕성을 강조한 신중한 이낙연보다는 돌파형 리더십으로 성과 성취형인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이재명은 호남사람들에게 ‘쌈빡하고 아싸리한’ 후보다. 전라도 방언에서 카리스마 있는 사이다형 정치인을 흔히 ‘쌈박하다’, ‘아싸리하다’고 한다. 산뜻하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그보다는 잘 드는 칼로 한 번에 싹 베는 듯한 결단과 돌파력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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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광주·전남 합동연설회가 열린 지난 9월 2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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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원팀 쉽지 않을 것”

이제 이 전 대표의 경선 수용으로 더 이상 파열음은 나오지 않을 듯싶다. 이 전 대표 지지자들의 앙금과 서운함은 남겠지만, 이들 또한 민주당 당원이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흐르면 원팀에 녹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명낙대전의 경선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광주지역 한 언론인은 “이번 경선결과 이낙연을 지지했던 호남지역 정치인들은 향후 진행될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처지가 불투명하게 됐다”면서 “호남은 민주당 경선이 본선이기 때문에 결국 이재명 지지자 대 이낙연 지지자로 지방 선거판이 짜일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화학적 원팀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시각을 반영하듯 이낙연 지지자들의 민주당 이탈도 엿보인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 전 대표 지지층은 이재명 대 윤석열 대결에서 이 지사를 14.2%, 야권 후보인 윤 전 총장을 40.3%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 홍준표 대결에서도 이 지사 13.3%, 홍 의원 29.9%이다. 경선 직후라 깊은 앙금이 그대로 녹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이탈은 예견된다(10월 11~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27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2%포인트).

이낙연 지지층의 이탈은 역으로 이재명 후보가 호남과 이 전 대표를 전력을 다해 끌어안아야 함을 보여준다. 집토끼부터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는 것. 나아가 이낙연 후보와 진정 원팀이 된다면 이 후보의 약점을 이낙연으로 메울 수 있는 정치적 보완재가 될 수도 있다. 이이제이(以李制李)라 할까.

민주당 전남당원인 이모씨(54·나주)는 “이낙연 전 대표의 온건하고 진중한 이미지가 경선에서는 한쪽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배제됐다”며 “이재명 지사의 뚜렷한 시대정신과 정책적 업적, 성취에 이 전 대표의 캐릭터가 더해지면 의미 있는 조합으로 본선에서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대선은 정당, 후보자, 미래의 선택이라고 한다. 경선이 격했던 터라 다소 어수선하지만, 호남의 시선은 이재명에게 향하고 있다. 대선 무대에 올라선 그에게 묻는다. 코로나19 민생위기, 기후·생태위기, 4차 산업혁명과 노동위기, 균형발전과 지역소멸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가. 더불어 5월 광주의 지난한 꿈을 이룰 수 있는지도 되묻는다. 호남은 다시 이재명 후보를 주시한다.

이건상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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