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슈 슈퍼컴퓨터 시대

기상청, 1천억대 슈퍼컴퓨터 왜 고철로 팔았을까?

댓글 7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주기적 교체가 효율 측면에서 유리

(지디넷코리아=남혁우 기자)최근 기상청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후 교체 주기가 되면 1천 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가격에 폐기해 논란이 됐다.

이같은 슈퍼컴퓨터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슈퍼컴퓨터 교체 시기인 4~5년 마다 한 번씩 있어온 지적이다. 2005년에 485억원을 들인 2호기와 2003년 541억원을 들인 3호기도 2020년 7월에 폐기 처리했다. 회수한 금액은 총 7천800만원이었다.

이달 5호기를 도입하며, 5년간 사용해온 4호기도 이제 폐기를 앞두고 있다.

수백억원씩 투자하는 슈퍼컴퓨터를 기상청은 왜 4~5년마다 폐기하는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지디넷 코리아에서 살펴봤다.

지디넷코리아

현재 시범 도입 중인 슈퍼컴퓨터 5호기(이미지=기상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급격한 기술발전으로 주기적 교체가 경제적으로 유리

기상청은 기상 예보와 예보정확도의 향상을 위해 2000년 기상업무 전용 슈퍼컴퓨터 1호기로 일본 NEC의 SX-5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2005년 기상용 슈퍼컴퓨터 2호기로 크레이의 X1E 시스템, 2010년 XE6 시스템을 3호기로 사용했다.

현재 2015년 도입한 슈퍼컴퓨터 4호기 CRAY XC40 시스템과 2021년에 도입한 슈퍼컴퓨터 5호기 레노버 SD650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이유는 빠른 기술 발전 때문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 등장으로 기존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우수한 신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을 아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달 운용을 시작한 5호기의 구입가는 628억원이며, 현재 사용 중인 4호기는 550억원으로 약 78억원의 비용차이가 있다. 하지만 성능은 5호기가 70배 이상 높다.

지디넷코리아

국가슈퍼컴퓨팅센터에서 진행 중인 연구(이미지=국가슈퍼컴퓨팅센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치모델의 정교화와 상세화에 따른 자료량 증가로 계산 용량이 지속해서 늘어남에 따라 예보발표시각을 지나 수치모델계산이 완료되는 예보지연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기상용 슈퍼컴퓨터의 주기적인 교체는 필연적이며, 기상 선진국의 슈퍼컴퓨터 도입 교체 주기는 점차 단축되는 추세다.

또한 슈퍼컴퓨터는 단순히 기상예측에만 쓰이지 않는다. 슈퍼컴퓨터를 관리하는 국가슈퍼컴퓨팅센터를 통해 국방, 우주, 재난 예방, 에너지, 의료 등 다양한 첨단 과학 기술 연구에 쓰이고 있어 점점 높은 수준의 계산처리능력이 요구된다.

이로 인해 한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은 슈퍼컴퓨터 운영기간을 4~5년으로 산정해 운영하고 있다.

■ 1년 운영비 60억, 동급 신형 슈퍼컴퓨터보다 비싸

임무를 마친 슈퍼컴퓨터는 국내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대부분 폐기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성능에 비해 운영 비용면에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 1위를 기록하던 미국 타이탄과 일본 케이 역시 지난 2019년 해체됐다. 케이는 일본 후지쯔와 이화학 연구소가 일본 정부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개발한 슈퍼컴퓨터다. 후속작인 후가쿠는 현재 슈퍼컴퓨터 성능 1위를 기록 중으로 1천100억엔(약 1조2천억원)의 국비가 투입됐다.

기상청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4호기 1년 운영비용은 약 60억원에 이른다. 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20~25억원 수준인 전기요금이다. 4호기는 스타일러 크기 서버랙 5천800대가 병렬로 연결된 구조로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지디넷코리아

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1위를 기록했던 타이탄도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고 2019년 해체됐다 (이미지=오크리지연구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슈퍼컴퓨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율적으로 식혀 성능을 유지하기 위한 수랭식 시스템과 냉각탑 등 제반 시설도 필요하다.

이 밖에도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는 인력과 유지보수 전문가 등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도 지속적으로 소모된다.

기술이 월등히 발전한 현재 시점에서는 4호기 1년 운영비로 더 높은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더 낮은 운영비가 나오게 구축할 수 있다. 다른 국가나 연구단체에서 슈퍼컴퓨터 지원을 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또한 기존 슈퍼컴퓨터는 군사, 보안 등 특정 업무에 맞춰 주문제작한 칩셋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전환이 불가능했다. 기상청의 1호기, 2호기 역시 이러한 사례다.

폐기되지 않은 일부 컴퓨터는 박물관 전시물품이 되기도 하며, 초기 슈퍼컴퓨터인 크레이1은 독특한 디자인을 살려 휴게실 소파로 쓰이기도 했다.

특이 사례로 미국 한 슈퍼컴퓨터는 이베이를 통해 4만5천달러에 판매됐다. 판매된 슈퍼컴퓨터는 미군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실제 군사작전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핵무기 설계 및 개발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 당시 내부 데이터는 모두 제거된 채 제공됐다.

구매자는 수집용으로 해당 컴퓨터를 구입했다며, 자신의 목장에 트랙터 옆에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디넷코리아

소파로 사용 된 슈퍼컴퓨터 (이미지=SER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농촌진흥청에 일부 지원 등, 재활용 방향 모색

세계적으로 폐기하는 슈퍼컴퓨터가 늘어나며 환경 문제 등이 대두되자, 재활용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슈퍼컴퓨터 전체를 사용하기보다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파기하는 단계다.

기상청도 같은 처분 절차 과정을 거쳤으며 이중 일부 시스템을 다른 기관에 이전했다.

슈퍼컴퓨터는 교체를 앞두고 운영 종료 심의 및 불용처분을 받은 후 국내 행정기관이나 대학,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2, 3회에 걸쳐 소요조회를 실시한다. 해외는 규모상 운임이나 현지 도입비용 등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한된다.

3호기의 경우 인터림, 초기분, 최종분 시스템으로 나눠져 있어 3번에 걸쳐 불용이 이뤄졌다.

가장 규모가 작은 인터림 시스템은 2015년 불용된 후 아무 기관의 요청이 없었지만, 1년 뒤 진행된 2차 조사에서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과학원의 지원이 있어 무상 이전됐다.

지디넷코리아

벼 엽록체 DNA 유전자 지도 예시




이후 2018년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원에서 3호기 초기분, 최종분 시스템 중 7개 랙을 무상이전해 나비스를 구축했다.

나비스는 기존보다 9배 향상된 전산시스템을 바탕으로 농생명 빅데이터 분석과 활용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벼 유전체 빅데이터로부터 2천700여 개의 엽록체 유전체를 단시간에 조립하는 등 농업 분야에 첨단기술 기반 농법을 제시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3호기 도입과 활용기술을 바탕으로 임무를 마치는 4호기 일부도 확보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슈퍼컴퓨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수랭식 시설을 갖춘 빅데이터 연구동도 마련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성공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다른 기관 부서도 폐기를 앞둔 4호기의 일부 도입을 고려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예보 향상위해선 예보관 역량 강화 모색해야

슈퍼컴퓨터 성능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지만, 국민 불만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자연재해로부터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기상예측의 정확성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백억원에 이르는 슈퍼컴퓨터 투자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이러한 성과미달로 인한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은 슈퍼컴퓨터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급변하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데이터 분석 어려움과 과도한 업무강도, 부족한 예보관 역량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슈퍼컴퓨터는 보다 세밀하고 자세한 기후정보를 분석한 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로 예측하는 것은 예보관이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기상청 국정감사에서 이수진 의원은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예보 역량 강화를 위한 기본 조건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예보관 인원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는 교육 및 예보기술 연구를 위한 근무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은 7개 조 중 4개조는 예보 현업에 근무하고, 3개 조는 교육 및 예보기술 연구를 하며, 조별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

24시간 기상을 예측하는 예보국은 7명이 한 조를 4개조가 12시간씩 교대근무 한다. 16일 단위로 주간근무-야간근무-휴무-비번을 순환하는 방식이지만 정원 부족으로 야근이 지속되고 있다.

기상청 예보관은 정원 132명이지만 현재 128명이 근무 중이다. 예보관의 주당 평균 초과근무시간은 2021년 9.83시간으로 주 50시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거리 거주 직원은 가정 방문이 1주에 한 번에서 2주에 한 번으로 줄어 가정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고, 실질적인 피로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도하게 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기상 예측 관련 신규 기술을 배우는데 할애할 시간이 부족해 해외에 비해 역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노웅래 의원은 "강수유무정확도가 일정하게 상승하지 않고 오히려 떨어지는 이유는 예보관의 역량에 문제가 있다"며 "예보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시스템과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예보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 공무원과 다르게 순환보직을 시키지 않고, 관할 지역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역량과 노하우 전수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혁우 기자(firstblood@zdnet.co.kr)

<© 메가뉴스 & ZDNET, A RED VENTURES COMPANY,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