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30 (토)

가정폭력 신고 출동한 경찰 때린 남성 무죄 판결에...현직 경찰 “이런 판결이면 시민 다 죽는다” 국민청원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상당한 위험이 있었던 당시 현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입니다. 만약 당시 경찰관이 그대로 철수한 뒤에 아동에게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면 누가 책임집니까? 그때도 경찰의 판단을 잘못이라고 했을까요.”

조선일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때린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자 현직 경찰관이 이에 대해 반발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글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정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남성의 행동이 불법체포에 저항하는 과정이었으므로 정당방위였으며, 경찰이 미란다 원칙 고지를 빼먹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의 근거였다. 하지만 이 판결이 알려진 직후 “국민 법 감정과 동 떨어진 판결”이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 현직 경찰관은 이 판결에 불복해 국민 의견을 묻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했다.

◇경찰 때린 男에 법원 “불법체포 벗어나려 정당방위”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이런 판결이면 시민들 다 죽는다. 안전이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16일 오후 1시 현재까지 3350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원자는 자신을 현직 경찰관이라고 밝혔다. 본지 취재 결과 이 글을 올린 이는 경남경찰청 소속 주동희 경위다. 주 경위가 지목한 판결은 최근 울산지법 형사9단독에서 상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46)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다. A씨는 지난해 4월 6일 자신의 집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걷어차고 밀치는 등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 자녀로부터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B경위가 집 안에 있던 미취학 아동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씨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B경위가 수갑을 이용해 제압하려하자, A씨는 자신의 이마로 B경위의 코와 입 부위를 들이 받아 코뼈 골절 등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일보

울산지방법원 전경. /울산지법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판결문 등을 보면 경찰이 당시 출동하게 된 것은 A씨 첫째 자녀(21)가 “엄마, 아빠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여러 번 가정폭력이 발생했는데 무섭다”며 112에 신고하면서다.

A씨와 다툰 뒤, 집 밖에 있던 A씨 아내는 경찰에게 “남편이 흥분한 상태에서 막내(7)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했다. 이에 B경위는 A씨에게 “집 안에 들어가 7살 아이에게 의사를 확인하겠다”고 했으나, A씨가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났고, B경위는 A씨의 이마에 코와 입 부위를 맞았다. A씨는 “경찰관이 자신을 붙잡아 흔들며 억지로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기 때문에 밀쳐냈고, 위법하게 연행하려 해 저항했을 뿐이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가정폭력 피해자인 아내는 이미 집 밖으로 피신한 상태였고, 남편이 다소 흥분한 상태였지만 7살 아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정황이 없다”며 “피고인이 체포를 면하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한 것은 불법체포로 인한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당시 상황이 친권자인 A씨 의사를 무시하고 경찰이 집 안에 들어가 자녀를 데리고 나올 정도로 위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또 A씨의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인데도 무리하게 체포하려 한 점, 체포하는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A씨가 경찰관을 폭행했다고 하더라도 체포에 저항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방위로 봤다.

◇경찰 “가정폭력 신고 받은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

본지 취재를 종합해보면 당시 A씨 가정폭력 신고는 처음이 아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아는 경찰로서는 현장 상황에 따라 만일을 대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게 일선 경찰들의 반응이다. 주동희 경위도 청원글에서 “신고 자체가 ‘평소 상습적인 가정폭력이 이뤄졌다’고 한 점, A씨가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는 점에서 미취학 아동(A씨 막내 아들)이 공포심에 잡혀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추정된다”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로서는 아동을 보호해야 할 법적인 근거가 발생한 것이며, 비록 A씨 아내가 집 밖에 있었다 하더라도 아동을 상대로 한 피해 상황 확인과 상황에 따라 가정폭력 가해자와 자녀를 분리조치 해야 하는 경찰 의무가 생긴 것이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경찰 로고. /조선 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법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위해가 임박한 때에 타인의 주거에 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아동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경찰권을 발동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 행위라는게 주 경위의 주장이다.

주 경위는 “아동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체가 언제든 도주하거나, 아동의 입을 막아 증거를 인멸할 개연성이 충분히 보여지는데도 ‘도주 우려가 없고, 집 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올 정도로 위급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평균적 상식이 결여된 판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경찰이 그대로 철수한 후에 아동에게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면 누가 책임지냐”고 주장했다.

◇사법부-국민 법 감정 온도차... “AI 판사에 재판받겠다”

이번 판결을 다룬 기사 댓글에서도 재판부의 판단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잇따르고 있다. ‘앞으로 가정폭력 사건은 경찰이 개입 안하려 할 듯’ ‘남편이 흥분한 상태여서 막내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아내의 말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정황 아닌가’ ‘경찰이 그냥 돌아갔다가 무슨 일 났으면 또 경찰 욕 먹는거지’ 등 판결에 부정적인 의견을 낸 댓글에 공감이 높았다.

사법부와 국민 법 감정 사이의 판결 온도차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범죄 처벌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법원 판결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만약 본인이 재판을 받게 된다면 인간 판사와 인공지능(AI) 판사 중 누구에게 재판 받을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AI(48%)를 택한 응답이 인간 판사(39%)를 택한 응답보다 더 높게 나오는 것으로 반영됐다.

주 경위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관할 지역의 사건도 아니고, (B경위 등과) 개인적 친분이 있어 청원글을 올린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주 경위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출동한 B경위는 퇴직 3개월을 앞둔 베테랑 경찰이었다. 최초 112 신고가 들어왔을 때는 현장에 출동하지 않다가 현장 상황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뒤에 지원 출동에 나섰다.

주 경위는 “퇴직을 앞둔 경찰이 뭐하러 집 안의 아이의 상태를 굳이 확인하려 했겠나. 당시 현장 상황과 앞선 신고 내용 등을 종합해 아동을 상대로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 시 분리조치 등의 경찰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며 “국민 법 감정과 동 떨어진 이런 판결로 범죄 예방 등을 위해 일해야 할 경찰 업무 위축으로 이어져 자칫 치안 공백이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검찰 측은 항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