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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우리가 지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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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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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 산재사고 1년 추모 및 법제도 개선안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와 아버지 장광씨가 국화꽃을 든 채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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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피자, 치킨.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앞에 평소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놓았다.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심야노동을 한 뒤 쓰러져 사망한 고 장덕준씨의 1주기였던 지난 10월 11일, 어머니 박미숙씨(54)는 아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저는 덕준이가 죽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못하겠어요. 덕준이가 지금 제 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버티고 있거든요.”(박미숙씨) 추모제를 지낸 이날, 경북 칠곡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박씨는 머릿속이 하얘진 채로 “덕준이가 참 좋아했던 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고 한다.

■연락 또 끊은 쿠팡

1년 전 장덕준씨는 여느 때처럼 저녁 7시에 출근해 아침에 퇴근했다. 그리고 욕조 속에서 가슴을 움켜쥔 채로 사망했다. 장덕준씨의 사망 직후 과로사 의혹이 제기되자 쿠팡은 “‘과도한 분류 작업으로 인한 과로사’라는 주장은 사실 왜곡”(지난해 10월 16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4개월 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장덕준씨의 죽음이 산업재해임을 인정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여 일하는 동안 장씨의 몸무게는 15㎏ 줄었고, 근육이 녹아내리는 ‘횡문근융해증’ 소견까지 나왔다.

쿠팡은 산재사망 판정이 나오고서야 한발짝 물러섰다. 자사 ‘뉴스룸’을 통해 “애도와 사과”를 말하며 “회사가 준비 중인 개선방안과 근로복지공단 판정결과를 종합해 근로자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후 8개월이 지났다.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와 아버지 장광씨(59)는 “다시는 덕준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재발방지 대책을 강력히 요구해왔지만,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쿠팡은 “민주노총 대책위가 협상자로 나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를 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족에게는 ‘황당한’ 논리였다. 박씨는 “대책위의 뜻이 곧 유족의 뜻이라는 것을 누누이 얘기해왔다”면서 “대책위가 막고 있다는 얘기를 왜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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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쿠팡이 유족과 대책위에 제시한 합의안 일부(위). 유족과 대책위는 쿠팡의 안을 대체로 수용하되, 실태조사 대목의 몇가지 문구 수정만 제안한 상태였다(아래). 그러나 쿠팡은 이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언론에 “민주노총 대책위가 협상자로 나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를 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쿠팡은 합의안에 대한 구체적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고 장덕준씨 유족, 대책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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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말하는 “민주노총의 무리한 요구”는 무엇일까. 쿠팡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수면시간, 주3일 같은 것”을 들었다. 그러나 유족과 대책위가 공개한 ‘합의안’ 자료를 보면 쿠팡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받아온 쿠팡은 3개월 전 대책위에 직접 ‘합의안’을 만들어 전달했다. 물류센터 노동에 관계된 내용은 크게 두가지였다. ‘야간근로 8시간 원칙’, ‘연장근로 최소화’, ‘쿠팡케어 프로그램(건강관리 지원프로그램)’ 등을 이미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첫 번째 항목으로 제시됐다. 대책위가 요구해온 쿠팡 물류센터 노동여건 실태조사에 대해서는 쿠팡이 추천한 복수의 기관 중 대책위가 지정한 기관이 진행하게 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실태조사를 토대로 한 개선 조치는 “근로자 안전과 회사 경영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의한다”고 명시했다.

유족과 대책위는 쿠팡의 합의안을 대체로 수용키로 하고 몇가지 문구 수정을 제안했다. 실태조사기관을 대학연구기관으로 할 것과 실태조사 최종보고서를 공개할 것 등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제안을 받은 쿠팡은 3개월째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대책위는 물론 유족에게도 연락을 끊었다. 그러면서 언론에는 “유족과 직접 얘기하고 싶은데 민주노총 대책위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스스로 제시했던 합의안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쿠팡은 같은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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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덕준씨가 잠든 경북의 한 납골당에서 지난 10월 11일 유족과 쿠팡물류센터노조, 김용균재단 측이 함께 추모제를 지냈다. 생전에 장덕준씨가 좋아했던 치킨과 피자, 햄버거가 영정 앞에 놓여 있다.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간 일해온 장씨는 지난해 10월 심야근무를 마치고 숨졌다. 그후 그의 죽음은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산업재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민주노총 쿠팡물류센터 노조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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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잠잠해지면 외면

쿠팡이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다가 연락을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고 장덕준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라는 판정이 나오자, 쿠팡은 재발방지대책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으나 같은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청문회가 끝나자 접촉을 끊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덕준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난 5월 13일부터 6월 17일까지 쿠팡을 고발하는 현수막을 만들어 트럭에 두르고 전국 10개 도시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즈음 쿠팡은 다시 연락을 해왔고, 대책위와 몇차례 만났다. 이때는 덕평 물류센터 대형 화재사고로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SNS에선 ‘쿠팡 탈퇴 운동’도 번지고 있었다. 화재사고가 잊히고 비판여론도 잠잠해졌기 때문일까. 최종합의안까지 직접 내놨던 쿠팡은 다시 ‘무응답’ 모드로 돌아섰다.

결국 유족은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지난 9월 쿠팡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알리고 정부의 안전 규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글을 올린 데 이어 지난 10월 12일 국회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이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로켓배송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야간노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면서 야간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지쳐버리길 바라는 쿠팡을 보면서, ‘덕준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덕준이는 저에게 친구면서 스승 같은 아들이었거든요. (심야노동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은) 아이가 남기고 간 숙제인데 멈출 수는 없습니다. 덕준이는 한번에 뭘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묵묵히 계속하는 아이였어요.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서, 저희도 저희의 속도로 계속 싸울 겁니다.”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의 말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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