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리더의 소통] 위기 극복의 위대한 스토리텔링 '오디세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고전은 읽기 어렵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모든 사람이 읽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바로 고전이라고 위트 넘치는 정의를 했을 정도다. 서양 최고의 고전이라고 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도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책 가운데 하나다. 인문 교양 과정 리스트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책이지만, 요약본이 아닌 책 전체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입에서 입으로 노래되어 전해지던 구송시(oral poetry) 시대에 생긴 것이라 형식부터 대단히 낯설다. 이 작품을 읽으려면 고대 그리스 신들의 계보 등 배경으로 미리 알아야 하는 내용도 있어서 선뜻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오랫동안 매달렸던 신간 원고를 탈고한 뒤 탈진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제주도로 달려가 낮에는 걷고 해가 지면 숙소에 돌아와 눈먼 시인 호메로스의 글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다시 만난 오디세이는 위기 극복과 리더십의 위대한 스토리텔링이었다. 미국 작가 어설라 르 긴의 표현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어드'는 전쟁 이야기이고 '오디세이'는 여행 이야기다. 즉 전자는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핵심이며 후자는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귀향하기까지 10년의 고난을 다룬 이야기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귀향(歸鄕)의 노래이며, 거칠게 요약한다면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복수가 전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이 책으로 인해 인문학과 리더십은 '여행'과 '바다'라는 두 가지 비유를 얻게 된다.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며 또 다른 세상을 향해 항해하는 모습은 리더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상징처럼 여겨진 것도 이 작품 덕분이다. 리더와 모험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오디세우스란 이름은 '오디움(odium)을 받은 자'란 뜻이고, 오디움이란 그리스어로 미움과 불신을 뜻한다. 태생적으로 신들에게 미움을 받아 고생할 팔자였다. 원하지 않은 트로이 전쟁에 동맹군의 일원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두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전쟁터와 거친 바다에서 보내야 했다. 식인 습성이 있는 거인 국가에서 부하를 빼앗기고, 거친 파도에 배가 부서지고, 칼립소·키르케라는 요정에게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만, 끝내 돌체 비타의 삶을 거부하고 귀향을 선택했다.

흔히 오디세우스를 가리켜 꾀가 많은 지혜의 인물이라 말하지만 어쩌면 그의 능력 중 가장 돋보인 것은 인내하는 능력이었다. 트로이의 목마 안으로 들어가 다른 장군들이 동요할 때도 꾹 참고 이겨냈으며, 매력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요정과 유혹하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듣고도 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의 유럽인은 오디세우스를 유럽인의 전형으로 간주했다. 호기심이 많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행동하는 특성, 타인에게 미루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결정 능력, 깨어 있는 지성 등의 요소를 지녔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우치는 자기 해방 능력을 오디세우스에게서 보았다.

오디세우스는 '메티스(metis)' 능력이 뛰어났다. 메티스는 지혜의 신이며,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 '기술'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용어인 메티스를 현대의 리더십과 자기 개발 용어로 부활시킨 사람은 예일대의 제임스 스콧 교수였다. 그가 말하는 메티스의 정의는 '끊임없는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실용적인 기술과 후천적으로 취득된 지능'이다. 예상치 못한 위기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종합적 직관 능력을 말한다. 그것은 곧 팬데믹의 장기화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대가 강력히 요구하는 능력이다.

좌절과 분노, 결핍과 굴욕은 분명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불가피하고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반전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오디세이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손관승 리더의 인문학 작가·전 iMBC 대표이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