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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상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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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상식의 시대가 온 것일까? 무엇 하나 합의 못하는 정치판이지만 상식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다. 다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내년 대선은 누가 상식을 실현할 수 있는 상식이 있는지를 놓고 경쟁하는 선거가 될 것 같다. 물론 상식 담론을 회의적으로 볼 수 있다. 상식을 강조한 선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정부가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를 약속했다. 상식에 대한 진정성도 의문이다. 상식이 반대편 인물이나 정책을 폄하하는 도구일 수 있다.

그래도 이번은 다른 것 같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상식이 전 세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상식 부상의 배경에는 엘리트 실패가 있다. 엘리트가 기술, 무역, 인권, 환경, 부동산 분야에서 현실과 중산층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 이념이나 엘리트 내부 경쟁에 중요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공정 정책도 상식 검증 대상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대학 입시 등 공정 사회를 위해 만든 능력주의가 상식 수준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최근 부상한 화두는 정부 운영의 상식이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저서 '상식적 정부(Common Sense Government)'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규정과 규제로 마비되다시피 한 미국 정부를 상식으로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상식의 회복력을 증명한다. 세계 역사에서 엘리트 이념을 대체한 시민 상식으로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19세기 말 미국 자본주의를 독점자본으로부터 구한 것은 농부와 소상공인의 진보주의(Progressivism)였다. 그들은 지식인이 선호한 시장주의와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반독점 규제, 반부패 정책, 소비자 보호 등 독립적인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관철했다. 1980년대 대처 영국 총리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시장 개혁도 지식인이 주도한 새로운 이념이 아닌 실패한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 호응한 포퓰리즘 성격의 정치 운동이었다.

미국에서 상식론이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상식주의가 미국 민주주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페인이 미국이 영국의 폭정에 맞서 독립을 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기 위해 쓴 책자의 제목이 '상식'이듯이, 미국 지도자들은 자주 상식에 호소해 개혁을 감행한다. 지식인의 영향력이 큰 유럽과 달리, 미국은 지식인보다는 일반 시민을 신뢰하는 반지성주의 전통이 강하다.

현재 한국의 상식은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 맥락에서 상식이 진영의 대안이라면, 진영 논리를 거부하고 탈이념, 탈정당을 표방하는 청년 유권자가 상식의 원천이다. 청년이 주도하는 상식의 정치로 상식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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