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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로켓 연구 26년 만에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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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특별기고

동아일보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


1447년(세종 29년) 11월 23일 한양에서 보낸 ‘대주화’ 60기와 ‘소질려포’ 36문이 의주에 도착했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수백 m 밖에서 진을 친 여진족을 막아내고 국경을 지키기 위해 개발한 신무기였다. 이후 ‘대신기전’으로 이름이 바뀐 대주화는 로켓 병기에 해당한다. 소질려포는 지름 18cm 크기의 철 파편이 들어 있는 나무통 폭탄으로, 이후 임진왜란 때 ‘진천뢰’로 발전한다. 신기전은 로켓 설계도가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이며, 길이 5.5m의 대신기전은 15세기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대형 로켓탄이다. 이 중 대신기전의 일종인 산화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로켓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발사체 강국이었다. 신기전 개발 주역들의 DNA를 이어받은 국내 로켓 과학기술자들이 이달 21일 본격적인 로켓 활용을 시작한 지 570여 년 만에 한국을 한 번 더 로켓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누리호의 뿌리인 액체 추진제 로켓 연구는 1995년 5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추력 180kgf(킬로그램힘)의 소형 액체 로켓 엔진 연소 시험에 착수하며 시작됐다. 정부는 1997년 12월 국가 우주 개발의 미래를 위해 한국 최초의 액체 추진제 과학로켓(KSR-3) 연구개발에 연구비 550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액체 로켓 시대를 열었다. 최종적으로 780억 원이 투입된 KSR-3는 2002년 11월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국내 액체 추진제 로켓 분야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항우연은 본격적인 우주발사체 독자 개발을 위해 2003년 추력 30t급 고성능 액체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2009년에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위성을 독자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나로우주센터를 건설했고 두 차례 실패 끝에 2013년 러시아의 1단 로켓과 국산 2단 로켓을 조합한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로 무게 100kg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에 걸쳐 지구 600∼800km 상공의 저궤도에 무게 1.5t에 이르는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첫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개발해 왔다.

지난해만 26회 발사에 성공한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은 현재 전 세계 상업위성 발사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 회사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우주발사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수십 년간 아폴로 계획 등 우주 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우주산업 기반을 단단히 다져놓은 덕분이다. 한국이 어렵게 확보한 우주발사체 기술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1단 로켓의 재사용 등 신기술 연구에 대한 지속적 지원은 물론이고 항우연과 함께 누리호 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이 이를 계속 유지하도록 정부가 연간 최소 2, 3회 발사를 보장해줘야 한다.

한국이 중형 우주발사체를 확보하는 것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간 현재의 국가 위상에 걸맞고 건국 이후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의 쾌거이며 경사가 될 것이다. 수조 원의 연구비를 묵묵히 투자한 정부와 성원해주신 국민, 연구 현장에서 모든 열정을 불사른 연구원과 산업체의 기술자 모두가 합심한 결과다. 국민 모두의 염원을 담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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