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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많이 받은 삶, 이제 주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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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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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흥행 신화를 낳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 1번 오일남 역을 맡은 배우 오영수씨가 지난 13일 경향신문과 만났다. 오씨는 1968년 극단 광장에서 데뷔해 54년간 무대를 지켜온 베테랑 배우로 <오징어 게임>에서는 해맑은 미소와 폭넓은 내면 연기로 ‘선 굵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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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영수씨(77)는 진녹색 체크무늬 셔츠에 검정바지를 입고 그 위에 주황색 재킷을 걸치고 나타났다. 다가서자 바람을 타고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멋쟁이였다.

오씨는 요즘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다. 이 드라마에서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으로 분한 그는 ‘대체 불가능한 농익은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침묵의 순간조차 그에게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팬들은 그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밈(meme·특정 장면이나 동영상을 이용해 인터넷에 유행할 만한 콘텐츠로 재가공하는 것)을 만들어 퍼날랐다. 팬이 개설한 SNS 계정을 오씨의 공식 계정인 줄 알고 순식간에 팔로워 수가 6만명이 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연극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1968년 극단 광장에서 데뷔한 후 거의 쉬지 않고 54년째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드라마 <선덕여왕>, <무신> 등에도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그의 자택이 위치한 경기도 위례신도시에서 이뤄졌다. 그는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흥행에 대해 “국위선양도 하고, 아주 뜻깊게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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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황동혁 감독은 2003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오씨의 ‘노승(老僧)’ 연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을 준비하며 일찌감치 오일남 역에 오영수씨를 낙점해 두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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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2㎏ 빠져…유명해지는 것도
피곤하다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 얼굴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겠습니다.

“그래서 체중이 2㎏이나 빠졌어요. 유명해지는 것도 피곤하다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 <오징어 게임> 출연 제안을 받은 것은 언제였나요.

“2019년 11월경이었어요. 넷플릭스에 나가는 작품인데 출연할 수 있겠느냐고 어느날 조감독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래서 ‘대본 좀 봅시다’ 했죠.”

- 대본을 본 첫 느낌은 어땠습니까.

“작품의 언어도 살아있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강하고 형식도 새롭다고 생각했어요. 추억의 어린이 놀이를 상징화해서 현실을 비판하니까요.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온 조감독에게 ‘내가 고민중이니까 감독이 시간이 되면 나를 한번 와서 보라’고 했어요.”

<오징어 게임>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황동혁 감독은 오일남을 연기할 배우로 오영수씨를 일찌감치 낙점해 두고 있었다. 앞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을 보며 오씨의 ‘노승(老僧)’ 연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 영화 <남한산성>을 찍을 때 캐스팅하려 했지만, 오씨의 사정으로 불발됐다. 그래도 그를 마음에서 놓지 않았던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준비하며 서울 대학로로 오씨를 찾아가 만났다. 당시 그가 출연중인 연극 <노부인의 방문>을 관람하며 다시 한번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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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한 장면. 오영수씨가 ‘노승’을 연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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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연기? 연륜·경륜 쌓이면 연기 자연스러워져
인생도 마찬가지…소유욕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나’만 남아

- 오일남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소유욕이 강한 지배자이자 약자들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악’만 있는 인물은 아니에요. 자기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어요. 장기매매를 위해 게임의 공정을 해친 요원을 처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 오일남도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한 것일까요. 줄다리기 같은 단체 게임에선 같이 죽을 수 있는데….

“드라마를 그렇게 논리적으로 보면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저것은 드라마니까 상징적으로 보자, 그것은 용서해주자, 그렇게 봐야 해요(웃음).”

- 팔색조 연기가 놀랍습니다. 얼굴 표정과 눈빛의 변화는 물론, 구부정한 허리와 팔랑팔랑 팔을 휘젓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더군요.

“배우에게 연륜과 경륜이 쌓이면 내공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과장도 하고 부자연스럽지만,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연기가 자연스럽게 되죠. 내 안에 오일남을 집어넣어 연기할 때도 많았지만, 내 의식의 흐름대로 표현해도 오일남과 맞아떨어질 때가 많았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소유하고 욕심 부리고 하다가 나이 70, 80 되면 다 놓고 싶어져요. 소유욕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러운 ‘나’만 남죠. 만약 내가 60대였으면 오일남을 지금처럼 연기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To have or to be)에 나오는 이야기에 나이를 더해 설명을 이어갔다. 산길을 걷는 나그네가 꽃을 만났을 때 젊은이는 소유의 갈망으로 그 꽃을 꺾고, 40~50대는 소유욕을 버리지 못해 뿌리째 꽃을 캐어 자신의 정원이나 뜰에 심고, 70~80대가 되면 그 자리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오씨는 “인생이 그런 것 같다”며 “크든 작든 많이 받은 삶, 이제 (인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될 수 있으면 주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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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씨의 연기는 얼굴 표정과 눈빛의 변화는 물론, 구부정한 허리와 팔랑팔랑 팔을 휘젖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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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광고모델 제안…작품 이미지 흐려질까 고사
보람 느끼거나 공익성 있는 광고라면 할 것

- 그러고보면 최근 ‘깐부치킨’ 광고 모델 제안을 거절한 게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어요.

“‘깐부’(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할 때 한 팀이나 동지를 뜻하는 속어)는 <오징어 게임>의 주제에 가까운 단어예요. 극중 오일남이 기훈(이정재 분)에게 ‘우리는 깐부잖아’ 하는 말에는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배신 등등이 함축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광고에서 이 깐부를 직접 언급하면 작품에서 연기한 장면의 의미가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됐어요. 그래서 정중히 고사한 거예요.”

- 다른 광고 모델 제안은 없었습니까.

“많이 들어와요. 그게 다 돈 아닙니까. 거절하니까 돈 주는데 자꾸 왜 안 하냐고 해요. ‘할까?’ 하고 잠시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게 다 욕심이에요.”

- 가족은 내심 서운할 수도 있을텐데요.

“와이프가 나름 힘들게 살았지만, 그래도 손 안 벌리고 살면 되는 거죠. 가족들도 내 뜻과 다르지 않아요.”

- 그러면 광고는 일절 안 할 생각인가요.

“아닙니다. 기회되면 해야죠. 다만 하더라도 작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나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광고, 또는 공익성이 있는 광고에 출연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촬영하면서 체력이 달리지는 않았습니까.

“연출자가 배우들 고생을 그렇게 안 시켰어요. 볶지 않았거든요. 믿음이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배우들도 열심히 했어요. 촬영은 대전과 경기도 안성의 고정 스튜디오 두 곳을 오가며 했는데, 나는 작년 4월에 촬영에 들어가 작년 11월에 끝났어요. 더빙은 금년 1월에 마쳤고요. 황 감독이 이 드라마 만들면서 너무 힘들어 이가 6개나 빠졌다는 것은 인터뷰 기사 보고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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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10대 때부터 60년 넘게 평행봉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20분이면 경기 위례신도시 자택에서 나와 20분을 걸어 남한산성 초입에 도착한 다음 평행봉을 50개 한다. 하루 1만보 걷기도 게을리하지 않는 그는 바둑도 수준급이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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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봉은 내 인생의 반려운동…
지금도 매일 50개씩 하고 1만보 걷는다

그는 ‘평행봉 사나이’다. 스스로 “내 인생의 반려운동”이라고 말할 만큼 10대 때부터 60년 넘게 평행봉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20분이면 집에서 나와 20분을 걸어 남한산성 초입에 도착한 다음 평행봉을 50개 한다. 하루에 1만보 걷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평행봉과 관련한 일화도 있다. 연극 <장판>(2016)을 할 때 그가 매일 평행봉을 한다는 사실을 술자리에서 우연히 들은 연출자가 무대 위에 평행봉을 설치했다. 극중 도둑이 매일 아침 찬서리 맞으며 체조하는 장면을 평행봉을 하는 장면으로 바꾼 것이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 매일 평행봉을 한다니, 건강은 좋겠습니다.

“10년 전, 협심증으로 스텐트 하나를 삽입했고, 3년 전 급성 폐렴을 앓아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덕분에 건강이 좋아졌어요. 사는 게 기쁨이고 환희예요.”

- 바둑실력도 꽤 좋다던데요.

“시간이 나면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 게 취미예요. 두뇌를 쉬지 않게 하려는 거예요. 지금 아마추어 6단이에요. 프로로 치면 1, 2급 될 거예요.”

- 고향은 어디인가요.

“태어난 곳은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낙하리예요. 4남1녀 중 셋째죠.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해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셨죠. 내가 여섯 살 때였어요. 형들도 젊어서 병으로 다 세상을 떠났고요. 6·25 전쟁 후에는 흙수저로 살았지만, 전쟁 전에는 우리 집안이 꽤 괜찮았어요. 황해도 해주가 훈장을 하신 우리 할아버지가 사셨던 곳이에요. 증조할아버지는 고을의 원이셨고요. 해주에 땅도 많았어요. 지금도 그 땅문서를 내가 가지고 있어요.”

-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젊어서는 삶이 고달팠겠습니다.

“그랬죠. 학교도 들락날락하고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잇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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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엘칸토 극장에서 공연한 <백양섬의 욕망>. 뒷줄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이가 배우 오영수씨다. 앞줄 왼쪽 세번째에 앉은 이는 배우 박정자씨다. 오영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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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연극 데뷔 후 54년간 쉼없이 연기
‘파우스트’ 연기하다 무대서 졸도하기도

오씨의 뿌리는 연극이다. 1967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1968년 전옥주 작 <낮 공원 산책>으로 데뷔했다. 이후 극단 성좌와 극단 여인을 거쳐 1970년부터 16년간 극단 자유에서 활동했다. <대머리 여가수>, <따라지의 향연>, <파우스트>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백양섬의 욕망>의 앙젤로 역으로 동아연극상(1979년)을 받았다. 이 시기 교육방송에서 성우를 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국립극단으로 옮겨 그곳에서 23년간 활동하며 정년을 마쳤다.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국전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94년)을 받았다.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필두로 민간 극단과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이수일과 심순애> 등을 공연하기도 했다. 54년간 출연한 작품이 200편이 넘는다.

- 배우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처음에는 연기를 꼭 해야겠다는 절실함 같은 것은 없었어요. 스물다섯 살에 군에서 제대했는데 취업이 잘 안 됐어요. 마침 극단 광장 단원인 친구가 저도 한번 와보라 해서 처음 발을 내딛게 된 거예요. 청소 같은 궂은 일 하면서 기회를 엿봤고 1년 후 데뷔한 거예요. 주인공도 빨리 맡아 스물여덟 살 때 극단 여인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스탠리를 연기했어요. 지금은 이래도 젊은 시절엔 제 조건(외모)이 꽤 괜찮았거든요. 하하하….”

- 연기가 쉽던가요.

“자만해 욕심 부리다 실패한 작품이 서른네 살에 한 <파우스트>예요. 극단 자유의 대표인 김정옥 선생님이 ‘오영수씨는 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가 맞다’고 했는데, 파우스트를 하겠다고 고집 부렸어요. 제목과 달리 <파우스트>의 실제 주인공은 메피스토여서, 내가 ‘파우스트 연극’을 만들어보겠다고 도전한 거죠. 당시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 미도파백화점까지 줄을 설 만큼 관객이 미어터졌어요.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어요.”

- 어땠길래요.

“목소리도 안 나오고 한 마디로 죽을 쒔어요.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 울고 싶더라고요. 급기야 지구본을 잡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20초가량 의식을 잃었어요.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꼭 다시 하고 싶은 역할이 파우스트예요. 지금 하면 제대로 할 것 같아요.”

- 연기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습니까.

“연극정신을 심어주신 분은 김정옥 선생님이고, 연기의 정수를 가르쳐주신 분은 국립극단에서 만난 고 장민호 선생님이에요. 이 두 분이 나의 스승이자 표상이죠. 나는 나이 60이 넘자 자만심을 가지고 ‘나 정도 하면 되지 않겠어?’ 했어요. 그런데 장민호 선생님이 술 한 잔 드신 후 ‘오영수, 아직 멀었어. 네 연기 가짜야’ 하는 거예요. 섭섭하기도 했지만 나를 위하는 말씀이셨어요. 나는 자만심이 있었지만 무대에서 늘 그 양반에 비해 작아보여서 왜 그럴까, 했거든요. 죽기 전에 장민호상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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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씨는 1994년 6월 국립극단이 올린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에서 국전 역을 맡았고 그해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다. 오영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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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아내와 2년 열애 끝에 1987년 화촉
처가 허락 받으려 월급 받는 국립극단으로

오씨가 국립극단에 입단한 것은 아내 강모씨(64)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은행원이었던 강씨는 연극을 자주 보러온 팬이었다. 2년 열애 끝에 결혼하려 했지만 처가의 반대가 심했다. 배곯는 연극쟁이인 데다 나이 차도 열세 살이나 나기 때문이다. 오씨는 “아내를 놓칠 수 없어 고민 끝에 매달 월급이 나오는 국립극단으로 옮기기로 한 후에야 장인·장모로부터 결혼 허락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7년 만 43세 때 그는 늦깎이 신랑이 됐고 슬하에 외동딸을 뒀다.

- TV 드라마와 영화 출연은 몇 편 안 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국립극단 단원으로서 자존심과 자긍심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제안받은 배역의 상당수가 성에 차지 않았거든요.”

- 2003년 개봉한 영화 <동승>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잇따라 노승으로 출연했지요.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청룡영화상(최우수 작품상, 기술상)과 춘사영화상(기획제작상, 미술상),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관객상)에서 잇따라 수상하면 작품성을 인정받았어요.

“2000년대 중반에 국립극단의 <떼도적>을 독일 만하임 쉴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어요. 그때 독일의 한 신사분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나오는 주인공이 출연한다고 해서 나를 보러 베를린에서 오셨다는 거예요. 감동 받았어요.”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노승이 고양이 꼬리로 반야심경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 쓴 것으로 압니다. 노승이 마지막에 창호지에 붓으로 써 눈 코 입에 붙인 閉(폐)자도 마찬가지고요.

“처음에는 대필하는 사람을 불렀어요. 그 사람이 반야심경을 쓸 때 쉬는 시간이라 나도 옆에서 썼더니 김기덕 감독이 본 거예요. ‘어, 선생님. 붓글씨 쓰시냐’고 묻더군요. 서당 훈장인 할아버지께서 내가 어렸을 때 지방도 암기해 쓰게 했다고 말했더니, 직접 붓글씨를 쓰라고 주문하더라고요. 고양이 꼬리에 먹물을 묻혀 마루바닥에 ‘摩訶(마하)’를 쓰는데 먹물이 엄청 조여드니까 고양이가 못 견디고 몸을 비틀며 똥을 싸면서 나를 집어삼킬 듯이 노려봤어요. 그 눈이 참 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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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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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배우들 설 자리 없어
미수까지 연기 소망…떠나는 내 뒷모습 아름다웠으면

- 좋은 연기란 어떤 걸까요.

“연기에 기력이 있어야 해요. 또 말과 말 사이에는 침묵의 언어가 있어요. 그것을 내공으로 살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호흡이에요. 연기의 기본은 기력과 호흡이 아닐까 생각해요. 좋은 연기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서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 배우의 역할에 대해선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진정한 배우는 인생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요즘 대개의 연극과 영화는 사건만 있고 인생은 없어요. 아쉬워요.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통해 500년간 살아있는 것은 사건만 다룬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인생을 노래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인생을 이야기하려면 노(老)가 있어야 해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인생을 말하는 작품이 없다 보니 나이든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노부부의 말년을 그린 후시하라 켄시 감독의 <인생 후르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배우로서 바람이 있습니까.

“언젠가 러시아 극단이 내한해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공연했어요. 나이 90이 넘은 노배우가 독백하면서 막이 내렸어요. 영혼이 울리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어요. 나는 평행봉을 하면서 미수(88세)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됩니까, 희망사항이죠(웃음).”

-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우리말 중에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사람…. 내가 언젠가는 무대를 떠날 것 아닙니까. 그때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셰익스피어는 희곡 <템페스트> 마지막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제 족쇄를 풀어주십시오’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펜을 꺾고 고향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하다 삶을 마감하죠. 나도 통일이 되면 우리 할아버지가 사셨던 해주 땅에서 전원생활을 하다 삶을 마치고 싶었어요. 아마 이루지 못할 테지만요.”

최근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시즌 2 계획과 관련해 “잠입한 경찰 준호(위하준)와 프론트맨(이병헌)에 대한 설명이 꼭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프론트맨의 사연 예고는 곧 오일남의 재등장을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깊디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노장 배우의 시즌2에서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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