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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JP' 이완구 별세...파란만장한 정치여정 '미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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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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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사진은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2014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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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출신의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꼽혀 온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이 전 총리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JP)를 잇는 ‘포스트 JP’ ‘충청 대망론 대표주자’로 불리며 부상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인 뒤 중앙 정치에서 멀어졌다. 파란만장했던 정치여정은 미완으로 멈춰서게 됐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오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제19대 총선을 3개월여 앞둔 2012년 1월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은 뒤 골수 이식을 받아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암이 재발하면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195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전 총리는 대전중·양정고를 거쳐 성균관대학에 재학하던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에서 경찰로 자리를 옮긴 후 최연소 경찰서장, 최연소 경무관 기록 등을 세웠다. 1995년 충남지방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복을 벗고 정치에 입문했다.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첫 금배지를 달았다. 1998년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했고,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 한나라당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2009년 지사직을 도중에 내려놨다. 이 일로 당시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와 가까워지면서 향후 정치행보에서도 ‘친박근혜계’로 분류됐다.

그의 정치여정은 박근혜 정부 때 급부상과 추락을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2년 암투병으로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뒤,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국회에 입성했다.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어지럽던 2014년 5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등 민감한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여야 협상의 중심에 섰다.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중도낙마한 뒤 박근혜 정부의 ‘정국 전환카드’로 두 번째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충청 대망론’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정치 인생에 정점을 찍은 순간으로 평가된다.

이후엔 악재가 연이어 왔다.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선 언론관과 부동산 투기 등 도덕성 의혹이 불거졌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인준표결에 이탈표가 나와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총리에 임명된 후엔 성완종 새누리당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며 남긴 로비리스트에 이름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63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지만 정치적 내상은 남았다. 21대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치적 재기를 모색했으나, 실제 출마로 이어지진 않았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이 전 총리는 충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뚝심과 책임의 상징”이라며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맡아 야당과 협치를 이루었던 부분은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지는 고향인 충남 청양군 비봉면 소재 선영이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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