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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논담] "고노 담화 존중한다는 기시다에 위안부 문제 풀자고 적극 설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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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응시]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인터뷰
한국일보

남기정 교수는 2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기시다 새 총재가 자민당 내 온건파인 만큼 한일 관계 개선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그러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지금까지와 다른 고민을 해야 하고 우리 정부도 더 적극적인 전략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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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이 29일 새 총재를 선출했다. 아베 신조 정권에서 2012년부터 4년 8개월 가까이 외무장관을 지낸 기시다 후미오(64) 의원이다. 내각제인 일본은 여당 당수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기시다는 다음 달 4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요식적인 투표를 거쳐 총리에 취임한다.

전후 최장의 연속 총리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의 갑작스러운 퇴장 이후 지난 1년간 일본을 이끌었던 스가 요시히데 정부는 아베 정권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스가 스스로 "아베 계승"을 표방했다. 일본 내 극우에 호응해 침략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의 길을 걸었던 아베 집권 기간 한일은 과거사 문제의 얽힌 실타래를 풀기 어려웠다. 새 총리의 등장으로 이 난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양국 관계가 회복의 전기를 맞을 수 있을까.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를 29일 만나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의 의미와 앞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 들었다.

-일본 자민당 새 총재 선출로 한일 관계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큰 기대는 어렵지만 약간의 변화는 생길 수 있다. 아베 총리 시절 한일 관계가 안 좋았던 것은 아베의 사상적 지향 때문이기도 한데 스가 총리는 그걸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기시다는 자민당 내에서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그가 회장을 맡은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는 자민당 내 중도자유주의 성향으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왔다. 외교의 비중이나 행태가 아베 때와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고노 다로의 우세가 점쳐졌는데 기시다의 압승이었다.

“고노의 경우 한국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아 대화 채널 만들기가 더 나았을 텐데 아쉽다. 기시다가 선전했지만 1차 투표에서 3위였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장관 지지 세력의 지원으로 승리를 굳힐 수 있었다. 일찌감치 다카이치 지지를 선언했던 아베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승리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기시다 정권에서도 아베의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다.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는 이번 선거 인기를 바탕으로 더 주목할 정치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기시다 내각에서 아베의 메신저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기시다는 아베와 다른 색깔로 평가받아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할 것이다.”

-기시다 총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주역이었다. 향후 과거사 문제 해결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기시다는 2015년 합의를 업적으로 삼고 싶었던 사람이다. 합의 과정에서 막판까지 내키지 않아 했던 아베를 설득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측 사정으로 합의 이행이 어려워지자 한국에 대한 불신을 표시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검증도 견제했고 결국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되자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렇더라도 기시다는 고노 담화에 부정적이던 아베와 달리 이를 존중하고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고노 담화의 정신에 입각해 위안부 문제를 풀어가자고 설득하면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2015년 합의가 고노 담화에 입각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4년여간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였다.

“한일 관계의 구조적 문제가 낳은 결과다.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극복한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런 고민이 없었고 한국은 전략이 없었다. 우리 정부는 나름대로 악화된 관계를 수습하려는 노력을 했다. 촛불 민심을 토대로 출발한 정권이니 그런 국민 정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일 관계 악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초기에는 한일 문제를 국정과제로 전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여긴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2015년 합의 재정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사이 강제동원 문제까지 불거져 숙제가 커졌다.”

-양국 지도자 간 신뢰 부족도 관계 악화에 한몫한 것 같은데.

“일본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컸다. 아베 주변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캠페인 영향이다. 일본 우익 매체들은 반한적 논조와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파상공세로 이어갔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경도됐고 남북한 관계 개선은 휴전선을 한일 사이에 그으려는 속셈이라는 식이다. 이들에게는 외교와 대화로 동북아 안보 위기를 해소하려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작업이 ‘현상 변경’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논리로 자유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트럼프를 통해 한반도 상황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두 지도자 간 불신이 커진 부분도 있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며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말만 끝없이 반복하며 정상 간 만남조차 피해 왔다.

“아베는 치밀한 전략은 없어도 주로 대미 외교에서 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정반대 경우가 한국이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일본 외교에서 중요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일본은 대한 외교를 전략 없는 정치 캠페인으로 전개했다. 국제법이라는 것은 한 번 정해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면 대화와 타협으로 바꿔갈 수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 스스로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와 맺은 여러 불평등 조약을 50년에 걸쳐 개정한 역사가 있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우리 헌법에 입각한 것인데 헌법과 조약 중 어느 쪽이 우위인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일본이 판정관인 양 국제법 지키라고 주장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를 대화 재개의 단초로 삼으려는 듯하나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일본은 수출규제를 강제동원 배상을 위한 현금화의 제동장치로 여기는데 그걸 풀어버리면 다른 보복 조치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 놓지 못하고 있다. 효과가 없는 데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제동원 사법 절차와 관련된 해법을 내놓으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출규제 해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실제 현금화될 경우 양국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현금화는 사법 절차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도 없고 일본이 그것을 요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랬을 경우 한일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런 위기감이 있다면 대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법원의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매각 결정이 나왔지만 항고, 재항고로 이어져 실제 집행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법으로 문제를 푼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일종의 희망고문일 뿐이다. 양국 정부가 지혜를 짜내는 게 바람직하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어렵지만 한일이 그동안 해온 노력이 있어 불가능하지 않다. 1990년대의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도 한일 시민사회의 노력이 배경에 있다. 그런 기조로 2010년 간 나오토 담화까지 나아간 것인데 이렇게 공유한 역사인식에 기초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지 못할 것도 없다. 현금화 프로세스를 그런 독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외교적 해법과 관련해 국내에서 여러 제안이나 입법 움직임이 있었는데.

“금전적 해결도 필요하지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피해자들은 더 중하게 여긴다. 일본 정부는 그걸 해야 하고 우리 정부도 그걸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여러 해법의 취약한 대목은 일본의 사죄를 전제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버리려 한다는 점이다. 돈 받고 끝내는 것은 피해자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노동이 강요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일본이 이를 사실로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전제로, 우리는 배상청구권이 있지만 이를 행사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전후 배상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처리했다. 이후 피해자 배상 문제는 우리 정부가 주체적으로 주도해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출발로 삼는 헌법 정신에 따른다면 우리 정부가 일본의 불법 점령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질 부분도 있다. 이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격에도 걸맞은 명예로운 방식이다.”

-위안부 문제는 어떤 형태로 풀어야 하나.

“2015년 합의에서 우리 국민과 피해자가 가장 반발한 것은 10억 엔으로 모든 걸 끝낸다고 한 대목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점을 확인하는 로드맵이라는 데 동의해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당시 합의문을 보면 ‘아베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이름 아래 책임과 반성의 뜻을 표시했는데 기시다의 설득이었다고 한다. 새 총리가 되면 기시다가 자신을 주어로 그 문장을 다시 확인하고 10억 엔도 일본 정부 책임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전달된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10억 엔을 입막음으로 끝내려는 태도에 대한 의구심을 제거해야 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출발은 고노 담화이므로 담화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 고노 담화에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역사의 과오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그런 고민을 해야 새로운 해법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우리 정부도 원칙론만 반복하며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국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도 미흡했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으면 대안으로 뭔가를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0억 엔 반환한다고 했지만 일본이 받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략적으로 문제를 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방관한 것도 사실이다. 정의기억연대 문제가 불거진 데도 정부 책임이 없지 않다. 위안부 동원 사실을 더 규명하고 교육을 통해 이를 알리려는 노력도 더 적극 했어야 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무관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랬더라면 일본을 움직일 동력도 생겼을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도 사법적 절차로 끝낼 게 아니라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가 엇갈리는 피해자의 여러 목소리를 얼마나 들으려 했는지 의문이다. 국내의 합의라는 게 중요한데 그걸 하지 않는 바람에 국내에서마저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이 커가는 기회를 줬다. 이런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근거로 대일 외교 창구를 만들어 전략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소송에 국내 사법부 판결이 엇갈려 혼란이 가중된다.

“사람에게 성장통이 있듯 국제법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에도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판결에 소수 입장이 있었다.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게 당연하다. 일본에서는 우리 사법부가 문재인 정부의 눈치를 본다며 독립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사법 절차로는 그 결정이 완결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행정부와 입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사법적 판단은 문제 해결의 기초이지만 국민적 합의를 통한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한일 지도자끼리 이 문제를 논의할 기회가 올까.

“코로나가 여전해 상황이 유동적이다. 백신 접종 등으로 팬데믹이 어느 정도 진정된다면 양국이 왕래를 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제 활동을 위한 패스트트랙을 다시 열고 문화 교류도 재개해야 한다. 한일은 역사나 정치 갈등이 있더라도 국민들 간 인적 교류는 막지 말자는 공감대를 접은 적이 없었다. 기후변화가 큰 이슈인데 환경장관 회담, 기후변화 고위급 회담 등 코로나 영향으로 그동안 못했던 고위 당국자 간 만남도 활발해져야 한다.

정상이 직접 만나는 것은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가 성사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해 불발됐던 회의를 일본 총선 이후 내년 초까지 의장국인 우리 정부가 정해 추진한다면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여야 대선 경선이 한창인데 대선 주자들이 밝히는 한일 관계 구상을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은 주자는 없는 것 같지만 일부에서 포괄적 해법이라는 명목의 주고받기식 거래로 과거를 봉합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일관계는 지금 1965년 체제의 모순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가 반쯤 열린 상태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과거사를 그 문제대로 깊이 고민해 정공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봉합으로는 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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