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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개 식용 금지? 장사 접으란 말" 전국 유일 개시장 가보니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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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구 북구 칠성시장 내 개시장. 손님이 적어 한적한 분위기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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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마다 동물보호단체와 언론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개 식용 금지를 검토하겠다고 하니 우리보고 당장 장사 접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지난 28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시장.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개시장’이 있는 곳에서 한 보신탕 업소 주인이 푸념을 쏟아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개 식용 금지 신중히 검토할 때”라고 발언한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칠성시장 개시장은 과거 경기 성남 모란가축시장과 부산 구포가축시장과 함께 ‘국내 3대 개시장’으로 불렸지만 앞서 두 시장이 폐쇄되면서 유일하게 남은 곳이 됐다. 지금은 건강원 10곳과 보신탕 업소 4곳 등 14곳이 개를 식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과거 개시장 성업…지금은 행인 보기도 어려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복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보신탕을 먹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건강원이나 보신탕 업소도 50여 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칠성시장 개시장을 찾는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 개시장 안에 있는 도살장 2곳은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차례로 폐쇄됐고 최근에는 개의 배설물이 바닥에 떨어지도록 만들어진 철장인 ‘뜬장’도 철거됐다.

이날 칠성시장 개시장 내 보신탕 업소에는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드물었다. 여름철이 지나가고 제법 날씨가 선선해져서인지 이곳을 지나다니는 행인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인들은 “복날이 돼도 찾아오는 손님 중 20~30대 젊은층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60~70대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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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칠성시장 내 개시장. 손님이 적어 한적한 분위기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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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칠성시장 내 개시장. 영업을 중단하고 점포를 내놓은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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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개 식용 금지 검토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원한 한 60대 상인은 “여기서 수십년을 장사하면서 이것 말고는 생계를 이어갈 방도도 없는데 무조건 금지하라고 한다”며 “상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대책부터 마련해주고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해야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에 따르면 칠성시장 개시장에서 영업 중인 업체 14곳 중 10곳은 ‘보상과 지원이 있다면 전업을 하겠다’는 업종전환 동의서에 서명한 상태다.



동물보호단체들 일제히 환영…“처벌도 강화해야”



동물보호단체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27일 “문 대통령의 검토 지시는 개식용 종식을 염원하는 시민사회에 반가운 소식”이라며 “개 지육(枝肉)은 이미 현행법상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개 지육의 유통과 판매를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정부의 행정력 가동과 함께 법을 위반한 이들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권단체 ‘케어’도 이날 “개 식용 금지에 대해 임기 내내 어떠한 노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던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금지의 목소리를 내줘 환영한다”면서 “선진국 지위에 맞게 대한민국의 모든 대선후보들이 개 식용 금지 공약을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내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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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오전 대구시청 본관 앞에서 열린 '마지막 남은 칠성개시장 완전 폐쇄를 위한 연대'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구 북구 칠성개시장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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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먹는 것 비상식적” vs “먹거리 통제 지나쳐”



칠성시장 개시장 상인과 동물보호단체의 입장처럼 시민들의 반응도 둘로 나뉘었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직장인 김아현(31·대구 달성군)씨는 “고양이를 식용으로 도살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비상식적인 것처럼 개를 먹는 일도 이제는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 됐다”며 “정부가 이제라도 개 식용 금지 조치를 검토한다고 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반면 직장인 윤모(35·경기 하남시)씨는 “나도 보신탕을 먹지 않지만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통제하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 방식처럼 보인다”며 “소비자들이 점점 개를 먹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선다면 개가 식용으로 사용되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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