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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전기요금 더 올려야 한다는 증권가… "탈원전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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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답식 요금체계서 원가 반영 연료비 조정단가 도입

8년만에 '킬로와트당 3원' 첫 인상 놓고 반발 등 거세

사실상 원전 비중은 안줄어… 탈원전은 장기 리스크

증권가 "국제유가 반영 없인 한전 수익성 개선 불가"

아주경제

한국전력공사가 4분기 부터 적용되는 전기요금을 8년만에 전격 인상한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한 다세대 주택에 설치된 전력계량기가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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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 올해 4분기부터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금융투자업계와 일반 여론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반 국민과 산업계 등 전기 사용자들은 공공요금 인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더 올라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의 분석을 내놓는 상황이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면 이런 증권가의 분석이 단순히 주주들을 위해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용자 입장에서 요금인상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장경제 원리와 상관 없이 비정상적으로 책정되던 전기요금의 정상화가 절실하다는 게 한전의 결정을 보고 있는 증권가의 분석이다.
8년 만의 전기요금 인상…한전, 천수답식 경영 끝내려나

앞서 한국전력은 지난 6~8월 중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한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가 킬로와트시(kWh)당 0.0원이라고 지난 23일 발표했다. 이는 전분기(-3.0원)보다 3.0원 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4분기 전기요금은 전분기보다 킬로와트시당 3.0원 오른다. 전기인상은 2013년 11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란 전기를 만드는 데 들어간 연료비의 변화를 기존 전기요금에 더하거나 빼는 수치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전기요금 책정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한전이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이 제도는 전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 중 원료비를 요금에 반영하는 게 요지다. 전기의 원료 중 영향력이 가장 큰 요인은 국제유가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올리고, 유가가 내려가면 전기요금도 내리려는 게 결국 이 제도의 목표다.

달리 말하면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는 전기요금을 책정할 때 원가를 반영하지 않았다. 원료비가 오르면 한전이 적자를 보고 원료비가 내려가면 흑자를 입는 재무구조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졌다.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이라는 뜻의 '천수답식' 경영이다. 한전이 민간회사가 아니라 공공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전은 기꺼이 적자를 감수하기도 했다. 비용과 상관없이 전국 방방곡곡에 송배전망을 깔고 이에 대한 비용 반영 없이 요금을 받았다. 그 결과 전기는 정부의 저렴한 행정서비스라는 인식이 퍼졌다. 전기를 사용한 대가는 요금이라기보다는 세금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한전의 숙원이던 원가연계형 요금제…1·2분기 적용 못한 이유는

이에 원가연계형 요금제는 지난 수십 년간 한전의 숙원사업이었다. 정부는 지난 2011년에 처음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하려고 모의시행도 해봤지만 전기요금 인상과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결국 보류했다. 2013년과 2016년에도 원가연계형 요금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최근 한전의 재정 안전성을 높이고 투자재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 제도를 도입한 직후 지난 1분기 전기요금은 내려갔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유가가 떨어진 것을 반영해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3.0원으로 책정한 덕분이다.

하지만 2분기 국제유가 상승세로 전기요금을 올려야 할 상황이 되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이유는 코로나19이다. 한전은 정부에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올렸지만 코로나19로 국민 생활이 어렵다며 유보통보를 받았다. 전기요금약관 연료비조정요금 운영지침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연료비조정단가의 전체 또는 일부 적용을 일시 유보한다는 통보가 있으면 이에 따른다'는 내용이 있다.

역시 국제유가가 오른 3분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제대로 적용했다면 전기요금은 지난 2분기에는 킬로와트시당 2.8원, 3분기에는 킬로와트시당 3.0원을 올려야 했다. 이는 월평균 350kWh의 전기를 쓰는 4인 가구일 경우 월 약 2000원가량의 요금이 오르는 수준이다.

이 시기 전기요금을 원가와 상관없이 동결한 결과 올해 한전은 연간기준 적자가 확실하다. 4분기 요금을 올렸지만 적자는 피할 수 없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전은 7647억원 규모의 누적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3분기 요금 동결로 적자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4분기 요금을 올려도 연간 적자는 불가피하다.

앞서 전기요금 동결 당시 주식시장도 곧바로 반응했다. 3분기 요금 발표날 한전의 주가는 7%나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정부와 한전 이사진을 상대로 배임책임을 묻겠다며 집단소송 준비도 나선 바 있다.
탈원전 비용은 '아직' 청구되지 않아…한전 수익성 확보는 절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이 탈원전에 따른 비용전가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직 탈원전에 대한 비용은 시장에 청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탈원전을 희망하고 있지만 원전의 비중을 줄이지는 못했다. 탈원전 관련 내용이 전기의 원가에 반영될 게 아직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향후 탈원전 등 환경정책이 한전의 전기요금 책정에 중요한 키워드가 될 가능성은 크다.

한전이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한 이유는 수익성을 확보해 정부나 주주에게 배당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제도 도입을 주도한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원가연계형 요금제의 도입 이유를 '투자재원을 확보해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메인플레이어'로서 한전의 역할수행을 위해 수익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한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한전은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와 각종 제도 마련을 위한 용역 등을 진행한다. 가동 중단이 결정된 석탄화력 발전 설비의 매몰비용도 한전의 부담이다. 한전 스스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국민 세금이 투입돼야 하는 정책들이다.
금융투자업계 "전기요금 추가인상 절실" 한목소리

이에 금융투자업계도 이번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이 충분한 조치가 아니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 발표에도 한전의 주가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향후 추가 인상의 필요성에 다들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전 2번의 유보로 제도의 신뢰성이 깨어진 상태에서 한 번의 인상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익 가시성에 대한 신뢰성을 일정 부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연료비 조정단가 상한(+5.0원/kWh)에 이르기까지 내년 1·2 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도 "4분기 요금인상에도 여전히 지난 동결로 아직 반영하지 못한 앞서 연료비 인상요인이 남아있다"며 "또 최근까지 석탄가격과 유가 상승에 따라 4분기에도 추가 연료비 상승요인이 발생하고 있어 한국전력의 실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몇 차례의 더 요금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올해 연료비 인상분을 모두 반영하면 전기요금은 13.8원/kWh 이상 인상해야 한다"며 "하지만 분기별 상한 한도가 3.0원/kWh에 그치기 때문에 향후 국제유가는 내리고 전기요금은 올라야 지난 원가상승을 따라잡는 셈"이라고 전망했다.
강현창 기자 kanghc@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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