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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명배우를 떠나보내는 방식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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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9일 파리 시내 앵발리드에서 열린 배우 장 폴 벨몽도의 영결식.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그의 관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 장례는 국장(國葬)이었다. 마크롱은 우리는 벨몽도가 바로 우리와 닮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당신을 잃은 것은 우리의 일부를 잃은 것이다. 당신은 국보이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조사에서 말했다. 르몽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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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쯤 되고 영화깨나 좋아한다는 사람은 경복궁 건너편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 자주 들락거렸을 거다. 아날로그 시절에 프랑스 문화원은 쉽게 접할 수 없던 프랑스 영화에 갈증을 느꼈던 사람들이 누리던 문화적 호사였다.

나도 그 축에 끼었던 사람이다. 거기서 무슨 영화를 봤는지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분명하게 내 필모그래피에 각인된 영화와 배우가 있다. 그 흑백영화를 다시 찾아봤다.

마지막 장면은 다시 봐도 참 인상적이다. 연인의 밀고로 경찰에 쫓겨 도망가다 총을 맞고 길에 쓰러진 건달 살인범. 담배 연기를 훅 내뿜고는 자기 손으로 눈을 내리깔고 폼나게 죽어가며 내뱉는다. "진짜 역겹다."

이 영화 '네 멋대로 해라'(감독 장 뤽 고다르, 1960년)가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의 상징으로 세계 영화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저예산, 즉흥적 르포르타주 스타일, 혁신적 편집 등이 영화의 문법을 새로 썼다. 원제는 'A bout de souffle(마지막 숨결)'이고 영어 제목은 'Breathless(숨막히는)'다. 국내 상영 제목 '네 멋대로 해라'를 누가 작명했는지 존경스럽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위대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장 폴 벨몽도다. 조금 지난 뉴스지만 그가 6일 죽었다. 향년 88세. 그날 나는 내 청춘의 한 조각이 떨어져간 것만 같았다. 나에게도 '아이돌'이 있었으니 비뚤어진 코에 못생기고 투박하고 친근하고 능청맞은 벨몽도, 그리고 냉소 우수 허망 반항 서늘한 무표정의 초월적 넘사벽 조각남 알랭 들롱(86)이었다.

나는 프랑스가 대배우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했다. 프랑스 신문을 인터넷에서 뒤졌다. 르몽드, 르피가로, 리베라시옹 등 주요 신문들이 예외 없이 1면에 대문짝만하게 그의 부고를 다루고 특집을 여러 면 게재했다. 몇몇 신문은 1면 전체를 담배를 꼬나문 그의 얼굴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그런데 매우 감동적인 사진 한 장이 눈을 사로잡았다. 9일 앵발리드에서 열린 영결식, 삼색기로 덮인 관 앞에 부동자세로 꼿꼿이 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사진은 딱 그 두 피사체와 긴 그림자뿐이다. 나폴레옹이 묻힌 앵발리드는 국가적 기념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국가 지도자가 한 대중적 배우를 보내는 자리에 참석하고 직접 조사를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부러운 게 있었다. 이 장례가 프랑스에서도 드문 '국장(國葬)'이라는 사실이다. 시민들이 '베벨'(벨몽도의 애칭)을 외치는 가운데 군합창대가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군악대가 그가 출연한 영화 '프로페셔널'(1981년)의 유명한 주제곡(엔니오 모리꼬네 작곡) '치 마이(Chi Mai)'를 연주하며 관이 마당을 돌자 마크롱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

한 국가가 국민적 사랑을 받은 문화예술인을 떠나보내는 방식을 본다. 그건 바로 문화에 바치는 예우다.

파리 시내에는 웅장한 돔 양식의 팡테옹 신전이 있다. '조국은 위인들에게 감사한다'라는 문구가 건물 정면에 새겨져 있다. 우리의 현충원 특별묘역 같은 곳이다. 이곳 지하에는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이 묻혀 있다.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마리 퀴리 부부, 앙드레 말로 등 75명이 영면해 있다.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이곳에 없다.

한국일보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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