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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팬데믹 시대에 빛 본 숄츠의 ‘침착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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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독일 연방의원 총선거에서 신승한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의 올라프 숄츠 총리 후보가 27일(현지시간) 베를린의 당 청사에서 군중을 향해 꽃다발을 흔들고 있다. 베를린 | AFP연합뉴스




독일 총선서 사민당 승리 견인
감정 표현 부족해 ‘로봇’ 별명
과감한 재정지출로 위기 대응
‘메르켈 닮은꼴’로 호감 얻어
중도 성향, 연정 구성에 유리

“나는 서커스 감독이 아니라 총리에 출마한 겁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는 지난 7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감정이 풍부하지 않다는 지적에 이같이 말했다. 이는 그가 왜 ‘숄츠로봇(Scholzomat)’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침착함과 냉정한 판단이 강점이지만 유머 감각이 부족한 그의 스타일은 정치인으로서 약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숄츠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당에 16년 만의 승리를 안겨주며 총리로 가는 9부 능선을 넘었다. 잠정집계 결과 사민당의 득표율은 25.7%. 올해 초 여론조사에서 15% 안팎을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눈부신 반전이다. 숄츠는 로봇에서 사민당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전 세계 외신들은 총선 이후 숄츠가 걸어온 길과 그의 총리 자질에 주목하고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약하고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점은 숄츠의 약점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침착하고 실용주의적인 그의 성향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며 대중에게 매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무장관으로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과감한 재정 지출과 구호 프로그램을 편 것도 그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사민당은 선거 과정에서 그의 풍부한 내각 경험과 신중한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숄츠의 강인한 정치적 맷집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수십년간 다수의 정치적 위기를 겪어왔으나 동요없이 우직하게 대처하며 정치적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재무장관으로서 독일 핀테크 업체 와이어카드의 회계부정 논란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유명 회계기업들도 수년간 회계부정을 밝혀내지 못했다”며 꼿꼿이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그의 경쟁자들은 폭우현장에서의 실소나 논문 표절 논란 등으로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았다.

숄츠는 1980년대만 해도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며 급진적 사회주의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노동법 변호사로 일하며 기업에 대해 알아갔고, 현재는 사민당 내에서도 중도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2019년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좌파 노선을 강조한 경쟁자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이에 숄츠가 지난해 8월 총리 후보로 지명됐을 때 일각에선 당의 성향상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제 사민당은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자유민주당과의 동거를 모색해야 하는 만큼 숄츠의 중도적 성향은 유리한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연정 협상에 성공해 숄츠가 총리직에 오르게 되면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당면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숄츠의 정책 노선도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연정 구성에 따라 대응 수위는 달라질 수 있으나 일각에선 그가 총리가 될 경우 재무장관으로서 펼친 적극적 재정정책이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외교분야에서는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의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노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숄츠는 “미래에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뿐 아니라 많은 아시아 국가들도 있을 것”이라며 실용적인 외교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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