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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 정도론 피해 인정 안돼"...비극 부르는 비현실적 '층간소음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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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문제는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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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층간소음 갈등이 또다시 극단적 결과로 번졌다. 27일 새벽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 A씨가 위층에 사는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자수했다. 이로 인해 40대 부부가 숨지고 부부의 60대 부모가 다쳤다. 경찰은 A씨가 피해자들과 층간소음으로 말다툼을 벌이다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남성은 지난 17일에도 층간소음 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에 큰 다툼이 벌어지는 일은 적지 않다. 최근 두 달 새 소음에 항의하는 아랫집 사람에게 흉기를 던지거나(인천), 이웃 주민에게 손도끼를 휘두르는 일(경남 통영) 등이 발생했다. 이런 갈등이 심해져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알려지지 않은 싸움도 부지기수다.

잊을 만 하면 비극이 발생하는 층간소음은 일차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점차 심각해지는 갈등 뒤엔 중재를 끌어내지 못 하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소음으로 인정하는 기준 자체가 까다로운 데다, 이를 관리할 기관이 온전히 제 몫을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슬리퍼 착용, 아이용 매트 설치 등 일상 속 예방책을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소음 분쟁을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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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민원 느는데, 기준 초과는 ‘극소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실제로 윗집과 아랫집을 갈라놓는 층간소음은 악화일로다. 지난해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상담 신청 건수는 4만2250건이다. 2019년(2만6257건) 보다 60% 정도 늘었다. 올 상반기에도 2만6934건으로 이미 2019년 전체 건수를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소음을 호소하는 민원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코로나 때문에 1년 이상 지속되는 악성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별다른 대책이 없다 보니 당사자가 층간소음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는 급증하고 있지만, 막상 소음을 측정하면 문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웃사이센터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층간소음 문제로 14만6521건의 전화ㆍ인터넷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장진단 서비스를 신청한 경우는 4만5308건이다. 이 중 1645건은 소음을 직접 측정했는데, 환경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한 경우는 122건(7.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기준치 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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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주된 발생 원인은 ‘발소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는 층간소음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이다. 현재 층간소음 판단의 잣대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2014년 공동 제정한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이다. 여기에 따르면 발소리 같은 직접 충격 소음은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에 1분간 평균 43dB(데시벨)을 넘거나, 57dB 이상의 소음이 1시간 이내에 3번 이상 발생해야 층간소음으로 본다.

시민들이 겪는 층간소음의 가장 큰 원인은 뛰거나 걷는 소리다. 2012~2020년 현장진단 접수 6만61건의 67.6%를 차지한다. 가구(3.7%), 가전제품(2.8%) 등이 문제 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환경부가 낸 '층간소음 상담매뉴얼ㆍ민원사례집'에도 아이 뛰는 소리가 내는 층간소음은 40dB에 불과한 것으로 나와 있다. 윗집의 어린아이가 내는 발소리는 현재 기준상 소음이 아닌 것이다. 법적인 수치와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 서로 맞지 않는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도 환경부·국토부는 7년째 규칙 개정 등에 나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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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갈등을 접수하고 상담, 점검해야 할 이웃사이센터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센터 예산으로 30억원이 배정됐다. 이는 현장 상담과 측정 서비스 제공, 상담원 교육ㆍ훈련 등에 집중 투입된다. 하지만 고객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9.4점(2019년 기준)으로 '낙제점' 수준이다.

센터에서 현장 소음 측정을 하러 나가는 방식도 허탕 치기 쉬운 구조다. 윗집에 층간소음을 측정하겠다고 안내문으로 통보한 뒤 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윗집에서 미리 대비해 평소보다 소음을 줄이면 기준치 내로 나오기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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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환경공단 측에서 층간소음 현장에 나가기 전 미리 대상 가정에 전달하는 안내용 통보문. 이 때문에 소음을 내는 집이 미리 소음 측정에 대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노웅래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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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에 대한 강제 규정도 그리 촘촘하지 않다. 경범죄인 '인근소란죄'가 적용되면 10만원 이하 벌금만 낸다. 그마저도 소음을 입증하기 어려워 사실상 처벌이 쉽지 않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소음 문제를 보다 엄격하게 다루는 편이다. 아파트가 대부분인 한국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이웃 간 소음'으로 관리 범위를 포괄하는 식이다. 2019년 한국환경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질서 위반에 관한 법률과 공해방지법에 따라 최고 5000유로(약 650만원)의 과태료를 매긴다. 영국도 법을 통해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소음을 강력히 규제한다. 두 번 위반 시 1000파운드(약 150만원)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층간소음의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환경부가 층간소음 측정 기준을 대폭 강화하거나, 조정 권한을 위임받는 아파트 단지 차원의 중재 기구를 마련하자는 식이다.

차상곤 소장은 "측정 기준은 급하게 만들어진 측면이 있어 현실에 맞춰 강화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준을 짤 때는 전문가뿐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겪고 있는 시민 등도 참여해서 제대로 된 수치를 측정해야 한다"면서 "정부도 이웃사이센터 등만 내세우다 보면 민원을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아파트별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 등 민간 영역을 키우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웅래 의원은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이웃사이센터를 만들어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다. 층간소음 측정 기준도 현실적 피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환경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도록 층간소음 측정 기준을 엄격하게 재설정하고, 소음으로 인한 극단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현실적인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들어 층간소음 기준을 현실에 맞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건 알고 있다. 어떻게 개선할지 검토한 뒤에 국토부와 기준 변경 등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면서 "향후 처벌 강화보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과 연계해 조금 더 효율적이고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 전 미리 도움을 주는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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