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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백신 접종 뒤 ‘월경 이상’ 712건, 온라인 호소 이어지는데…‘기타 항목’으로 묶인 여성만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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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뒤 월경 이상은 ‘기타’ 증상에 뭉뚱그려

이상 반응 증상 가운데 21번째로 많아

산업재해 현황서도 여성 77%가 ‘기타’업종에 포함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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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대 여성 ㄱ씨는 지난 6일 백신 접종 직후 일주일 동안 부정 출혈을 겪었다. 이후 예정된 월경 기간에 생리도 이어졌다. 상당한 출혈량에 겁이 난 ㄱ씨는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백신과 인과성이 없다”는 말만 들고 돌아왔다. ㄱ씨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예방접종 도우미 누리집’에 자신이 겪은 증상을 보고하는 일뿐이었다. 이 누리집은 예방접종 후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열, 근육통, 피로감 등 8가지 증상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접종자가 직접 자신의 증상에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ㄱ씨가 겪은 ‘부정출혈’은 리스트에 없었다. ㄱ씨는 “맨 아래에 있는 ‘기타’를 선택하고 직접 ‘부정출혈’이라고 써냈다”며 “여성이 겪는 부작용은 주요 항목으로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생리 끝난 지 이틀 됐는데 백신 맞고 또 한다’, ‘주기가 정확한 편인데 백신 맞고 생리를 일주일 째 안 한다’ ‘부정출혈 열흘째다’…. 백신 접종 이후 월경 이상을 호소하는 경험담은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이 매주 내는 20장 분량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보고서에서 ‘부정출혈’ ‘월경’ ‘생리’ 등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질병청은 이상반응을 총 42가지로 분류해 백신 종류별 이상 반응을 집계하고 있는데, 부정출혈 같은 월경 이상 반응은 이러한 주요 분류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신고 건수로만 치면 월경 이상은 전체 42개 항목(10대 주요 호소 증상은 두통, 근육통, 어지러움, 발열, 구토 복통 등)과 견줘도 21번째로 많다. 대표적 백신 이상반응이 여성만이 겪는 장애라는 이유로 정부의 공식 집계에서 사실상 소외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민반응이라거나 본래 출혈이 잦다거나 하는 등의 일부 시선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모든 신고가 1차적으로 주관적 자가진단에 기반한다. 질병관리청은 월경 이상 반응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자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월경 이상 반응을 ‘기타’ 항목에 직접 적어 보고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기존 문항에 월경 관련 이상 반응이 없으니, 기타 항목에라도 써넣어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접수된 월경 이상 반응은 18건이라고 했다. 온라인상 경험담이나 불안을 호소하는 추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준이다. 이유가 있었다. 질병청이 2일 월경 이상 반을 신고 건수로 발표한 수치는 질병청이 아니라 식약처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으로 접수된 건수만 추린 것이다. 의약품안전관리원에 이상 반응을 보고하는 주체는 대부분 제약회사나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일반 접종자는 질병청 누리집에서 보고한다. 시민들이 그나마 적극적으로 보고한 수치조차 제외한 ‘축소치’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질병청은 <한겨레>가 공식 질의를 한 이후인 27일 오후에서야 “‘기타’ 항목으로 보고된 부정출혈 관련 이상 반응은 712건”이라는 답변을 처음으로 내놨다.

전문가들은 ‘기타’ 항목으로 월경 관련 이상 반응 신고를 받을 때 실제보다 ‘과소추정’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인 문진을 할 때도 ‘앓고 있는 질병이 있느냐’고 포괄적으로 물을 때보다 ‘고혈압이나, 당뇨를 앓고 있느냐’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물어야 답변이 나온다. 같은 원리로 ‘기타’ 항목이 아니라 ‘월경 장애’로 물어야 더 정확한 집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백신은 생산 단계에서 성·생식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사후적으로라도 이와 관련된 이상반응 수집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래야만 백신 접종 전 월경 이상 등에 대해 여성에게 안내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겪는 고충이 ‘기타’로 분류돼 집계도 분석도 이뤄지지 않는 관행은 비단 백신 이상 반응 통계에서만 나타나는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다른 정부 부처가 내놓은 공식 자료나 통계에서도 여성의 고충은 ‘기타’로 묶여 방치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산업재해 현황분석’ 자료다. 이 자료는 산업재해가 어떤 업종, 규모, 지역 등에서 발생하는지 분류해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자료에서도 여성이 겪은 산업재해는 ‘기타’ 항목으로 묶여 정확한 집계와 분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광업 △제조업 △전기·가스·증기 및 수도 사업 △건설업 △운수·창고 및 통신업 △임업 △어업 △농업 △기타 등 9가지 항목으로 업종을 분류한다. 산업재해가 주로 발생하는 업종은 개별 카테고리로, 그렇지 않은 업종은 마지막 ‘기타’ 항목에 묶여 분류한 것이다. 여성이 겪는 산업재해의 대부분은 이 ‘기타’ 업종에서 발생한다. 2019년 기준 여성 산업재해자(사망포함)는 총 2만549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77.2%인 1만9696명이 ‘기타’ 업종 종사자였다.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교육 서비스업’ 등이 모두 ‘기타’ 안에 뭉뚱그려져 있어, ‘기타’ 규모가 다른 주요 항목보다 훨씬 더 큰 기형적인 통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지적은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진행한 연구 ‘성인지적 산업안전보건정책 연구’에 담겨있다.

고용노동부는 이 ‘기타’ 항목을 다시 △건물 종합 관리, 위생 및 유사서비스업 △교육 서비스업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부동산 및 임대업 등 12가지 분류로 다시 나누면서 여기서도 ‘기타의 각종 사업’을 넣었다. 쉽게 말해 ‘기타’ 안에 또 ‘기타’ 항목이 들어간 것이다. 이 ‘이중의 기타’ 항목에는 개인 및 가사 서비스업, 건설업 본사 근무자 등 다양한 업종 종사자가 맥락 없이 뒤섞여 있다. 여기서 발생한 여성 산업재해자가 7245명, 전체 여성 산업재해자의 28%에 달한다. 여성 산업재해자 10명 중 3명이 어느 업종에서, 어떤 작업을 하다 다치거나 죽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다. 여성이 주로 일하는 가사서비스업은 이 ‘기타 속 기타’ 항목에 속해있다. 통계청은 가사노동 종사자가 15만6000명에 달한다고 집계한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실제 근로자는 그보다 많은 20만∼40만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97∼98%가 여성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산업재해 분석 통계에서 가사서비스업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난 2015년 가사노동자가 근골격계질환,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전체 여성노동자나 돌봄노동자보다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사서비스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 연구’·한국여성정책연구원)를 감안할 때, 가사 서비스 노동자의 산재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도 ‘기타’로 묶여 산업안전 정책 전반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타’ 항목으로 묶인 데이터는 비공개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근로감독 대상 기업 규모와 법 위반 적발 유형별 건수를 발표한다. 법 위반 유형은 △금품체불 △근로시간 및 휴가 등 8개의 항목으로 분류하는데, 출산휴가·육아휴직 거부 같은 모성보호법 위반 유형은 ‘기타’로 묶여 있어 규모 파악이 불가능하다. 이 데이터를 확보하려면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요구 권한을 이용하거나 정보 공개 청구를 해야 한다. 같은 성격의 정보여도 독립적인 항목으로 분류되면 별도 절차 없이 공개되는데, ‘기타’ 항목으로 묶이면 별도 절차가 필요한 비공개 자료가 되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여성의 고충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기타’로 흡수돼 제대로 집계되지 않거나, 아예 공백 상태로 있는 경우는 도처에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연구자는 “전국 253개 지자체가 수행하는 건강 관련한 유일한 지역통계인 ‘지역사회건강조사’에도 폐경 같은 여성의 성·재생산 관련 지표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주재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데이터센터장은 “과거부터 통계는 유급노동시장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기에 적지 않은 통계가 남성 위주로 작성되고, 여성의 상황은 특수한 것으로 여겨져 ‘기타’로 취합되는 관행이 있었다”며 “‘기타’로 묶이는 여성·장애인·노인·아동의 사례만 세분화해도 보다 정밀한 정책 설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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