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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국내서도 ‘헝다 사태’ 일어날 가능성은… “리스크 충분히 관리돼 확률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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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건설사이자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국내 건설업계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서도 ‘제2의 헝다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전문가들은 한국 건설·개발업계의 사업·재무구조나 제도 환경이 중국과 달라 헝다 사태가 한국에서 재현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다만 재무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성은 있다는 지적은 제기된다.

조선비즈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의 대형 민영 부동산 기업 헝다 그룹이 허난성 주마뎬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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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헝다그룹은 중국 최대 규모의 건설회사로서 부동산 개발·관리뿐 아니라 전기자동차, 보험, 식음 등 각종 사업에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발업체에 대한 대출 제한을 강화하자 자금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부채 추산 규모가 3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파산 위기에 빠졌고, 지난 24일에는 달러화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파산 수순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관심이 가는 대목은 한국에서도 제2의 헝다사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지다. 시장 일각에서는 부동산 급등에 따른 호황을 겪은 국내 건설업과 개발업에도 거품이 끼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다수는 한국에서 ‘제2의 헝다 사태’가 나올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먼저 체계적 리스크 관리 없이 무리하게 확장한 헝다와 달리 한국 건설·부동산 시장은 사업구조나 재무구조 차원에서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김영덕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헝다의 가장 큰 문제는 전반적인 사업을 책임지는 부동산 개발사가 중심이 돼 리스크를 떠안고 은행이 이를 재무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책임이 집중됐다는 것”이라면서 “한국은 시행사뿐 아니라 건설사 등이 책임을 분담하는 형태라 사업구조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질은 공영개발이 아니면서도 사회주의 국가답게 공영개발의 성격을 가지게 돼 은행이 당국의 지침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점도,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교적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해 온 한국과 다른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헝다 사태의 핵심은 기업파산으로 인한 부실채권의 우려”라면서 “한국의 경우에도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 건설사의 무분별한 차입과 사업 확장이 연쇄 효과를 일으켜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으나, 현재는 ‘건설은 대마불사’라는 인식이 사라졌고 건설사들도 이를 알아 최근 몇 년간 사업 다각화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라진성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도 건설사마다 상황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현재 대형 건설사 중 문어발식 확장에 나서는 곳도 딱히 눈에 띄지 않고 재무구조도 비교적 보수적으로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시행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재견 신영 리서치센터장은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의 각종 규제가 오히려 리스크 관리 요인이 된 면이 있다”며 “특히 금융·대출 규제가 워낙 깐깐하다 보니 재무적으로 건전성이 담보되고 있고, 땅값이 너무 올라서 시행사들이 무리해서 땅을 사기도 힘든 상황이라 악성 현장이 없는 게 요즘 실태”라고 했다.

헝다 사태는 중국 특유의 제도가 낳은 부산물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 경제 전문가인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토지의 소유권은 지방정부가 국유자산관리국을 통해 가지고 있고, 토지의 사용권만 민간 기업에 파는 중국 특유의 부동산·금융 제도가 헝다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부동산 제도 때문에 지방정부가 중앙은행의 보증을 받아 개발 자금을 받아오는 대신, 헝다는 그 자금으로 공사와 분양을 도맡아 지방정부에 기부채납(寄附 採納)하는 암묵적 카르텔인 ‘종합개발’ 방식을 이용해왔다. 이로 인해 미분양 등 부동산 개발사업에 부실이 발생할 경우 지방정부의 부채로 직결되고, 당국의 지시에 따라 자금을 제공한 중앙·지방 은행까지 부실해진다는 것이다.

강준영 교수는 “중국은 부동산 소유권 거래가 금지돼있고, 금융 시스템을 개방하지 않아 은행을 비롯한 금융을 국가가 사실상 소유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환경 자체가 다르다”며 “한국에서는 헝다 사태가 발생하기 힘든 이유”라고 말했다.

이번 헝다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겠다는 점도 국내에는 없는 리스크로 꼽힌다. 강 교수는 “중국은 베이징·상하이·광저우 출신들이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구조”라며 “헝다는 창립자가 광저우 출신이라 상하이나 광저우 출신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후견을 받아 성장했는데, 베이징 출신의 시진핑 주석이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헝다와 상하이·광저우 출신 파벌을 정리하는 목적이 있다는 맥락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 충격을 감내하면서까지 대형 기업을 옥죄는 행태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여러 요인을 종합할 때 한국에서 제2의 헝다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지만 한국 건설·개발업계도 주의할 필요는 있다는 경고도 있다. 김영덕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린 상태라 건설·개발 업계에서 큰 사업들에 대한 욕구가 생길 수 있는데, 재무 리스크를 무시하고 사업을 공격적으로 운영하다가는 헝다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며 “지금은 자금을 모으기는 쉽지만 무리한 투자나 개발사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시점인 만큼 헝다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재무관리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훈 기자(its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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