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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구석’ 등교…시간 여유 생겼지만, ‘미래’는 모니터에 갇혀 [오늘도 ‘방구석’ 등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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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만족” 53% 늘어…“불만” 22%
학습생산성 향상·저하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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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시립대 2학년 정혁씨(23)가 서울 동대문구 자취방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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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평 남짓한 자취방 침대에서 일어나 세 걸음을 걸어 책상 앞에 앉았다. 북향으로 난 작은 창은 볕이 잘 들지 않는다.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반바지. 집에서 입는 편한 옷차림이다. 옆집에서는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방 인덕션 위에는 어제 저녁에 만든 카레가 담긴 냄비가 놓여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이 작은 자취방이 대학생 정혁씨(23·서울시립대 2학년)의 캠퍼스이고, 폭 1m짜리 책상이 정씨의 강의실이다.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제로 콜라’를 책상 한구석에 놓고 노트북을 여니 짧은 등굣길이 끝났다.

“오늘 따라 좀 느린 것 같은데….” 오전 9시 교양수업 과학사를 듣기 위해 줌 강의실에 접속한 정씨는 능숙하게 화면을 조정했다. 줌 화면이 왼쪽에, 필기용 파워포인트(PPT) 화면이 오른쪽에 떴다. 1.5㎝(가로)×1㎝(세로). 증명사진보다 작은 줌 화면 안에서 교수가 설명을 이어갔다. 교수는 눈맞춤이나 질문·답변 없이 내용을 읽기만 했다. 처음엔 집중하던 정씨도 시간이 갈수록 카카오톡 대화창을 여는 빈도가 늘었다.

정씨는 1년 반째 계속되는 비대면 대학 생활이 아쉽다. 지난 학기에는 경남 창원의 본가에서 수업을 들었다.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고, 학생들과 정보 교류도 하려고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었지만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교문은 더 굳게 닫혔다. “원래 교수님이나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인데, 비대면 수업을 하니까 수업 참여 같은 게 좀 힘들어요.” 정씨는 1주일에 10차례 가까이 ‘혼밥’을 한다.

카레와 즉석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2시 전공수업을 들었다. “하…벌써 힘들다.” 정씨가 고개를 떨궜다. 교수가 질문을 던지며 집중시키려 하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시간은 자유로워 좋은데…교수와 학생은 ‘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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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대학생 한모씨가 온라인 수업 쉬는시간에 침대에 누워 있다. 김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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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감염병 시대가 길어지면서 ‘캠퍼스 라이프’도 바뀌었다. 대학생들은 달라진 수업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속내는 여전히 복잡하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 지난 8월16일부터 25일까지 대학생 37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비대면 수업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53.2%를 기록해 지난 3월 조사 때보다 7.6%포인트 높아졌다. 그러나 불만족한다는 응답 역시 22.1%로 적지 않았다. 비대면 전환 이후 학습생산성을 두고는 ‘대면 수업보다 향상’(37.8%)과 ‘대면 수업보다 저하’(36.0%)라는 의견이 팽팽했다.

원할 때 녹화 수강…집중력은 감소
44% “교수-학생 소통채널 필요해”

책만 읽는 강의에 ‘수업의 질’ 하락
화상 실습에 한계…취업 고민 커져
‘단톡방엔 침묵만’ 학생 교류도 단절
“더 넓은 시야 가질 기회를 잃어버려”

비대면 전환을 반기는 학생들은 ‘시간 활용의 자유로움’을 장점으로 꼽았다. 전북 소재 사범대학에 다니는 한모씨(22)는 비대면 수업이 더 편하다. 23일 전북 전주시의 자취방에서 만난 한씨는 잠자리 복장인 반팔 티셔츠와 운동복 반바지를 입고 기자를 맞았다. “대면 때는 잠이 부족해서 많이 졸았는데, 비대면 때는 잠을 잘 자서 한번도 졸아본 적이 없어요.” 한씨는 이날 아침으로 냉동 치킨을 조리해 먹으며 녹화 강의를 들었다. 교수가 말하는 내용 중 궁금한 점은 포털사이트 검색엔진을 통해 바로바로 찾았다.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들을 수 있고,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녹화 강의가 유용하다고 했다.

조선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오종태씨(23)도 남는 시간을 적극 활용한다. 주 4일 6시간씩 총 24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대면 수업 때는 오랜 등·하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요즘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토요일이면 도서관에 가 녹화 강의를 몰아 듣는다. 비대면 전환 이후 수업 자료가 미리 올라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호작용이 부족한 비대면 강의 특성상 집중력이 흩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에브리타임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은 학습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교수·학생 간 소통채널’(43.7%)을 꼽았다. 오씨는 “교수 입장에서는 학생이 얼마나 수업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기 어렵다. 진도를 그냥 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대면 수업 때는 항상 앞자리에 앉았는데, 지금은 교수님이 나를 안 보는 것 같을 때면 집중력이 조금 떨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 책만 읽어주는 교수…수업 질 하락 어쩌나

비대면 전환 이후 수업의 질이 하락한 경우도 많다. 동아보건대 간호학과생 송하일씨(23)는 비대면 전환 이후 수업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져 분노까지 느낀다고 했다. 23일 만난 그는 1.5배속으로 녹화 강의를 틀어두고 기자에게 “편하게 물어보라. 어차피 이 교수는 책만 읽는다”고 했다. 본래 2시간짜리 수업은 단 50분만 진행됐다. 교수도, 학생도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았다. “학생들 입장에서 편한 건 맞죠. 그런데 지금이 편한 만큼 미래가 불안해요.”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송씨는 학교에 애정이 있었다. 건물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을 먹으며 서로 공부를 봐주던 간호학과 학생들의 모습을 회상했다. 실습실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고, 교수와 교류도 많았다. 비대면 전환 이후 “학교, 학생회, 교수 3박자가 다 무너졌다”고 했다. 책 내용만 일방향으로 읽어주는 수업이 늘었다. 교수에게 항의하고, 학교 커뮤니티에 온라인 설문조사를 돌려 학생들의 불만을 정리해 올렸는데도 변화가 없었다. 한 강의는 아예 듣지 않은 채 교재만 읽었는데 A+를 받았다. “성적을 받고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상처뿐인 승리, 딱 그 느낌.” 송씨는 지금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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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연기 전공자인 이기화씨가 24일 경기 고양의 한 뮤직스튜디오에서 화상을 이용해 연습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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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처럼 실습 경험이 중요한 과목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에 대한 불만이 크다. 충남 소재 사범대학에 다니는 4학년 조모씨(22)는 복합적인 생각이 든다. 저시력장애인인 조씨는 대면 수업 시절 강의실을 찾아갈 때 종종 어려움을 겪었다. 비대면 전환 이후 그럴 일이 없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비대면이 더 속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교사로서 갖춰야 할 발표 실력이 떨어질까 우려된다. 조씨는 “대면 수업 때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면서 말하는 연습이 어느 정도 됐는데, 비대면을 겪은 뒤로는 학생들을 직접 볼 때 당황하고 적응을 못할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뮤지컬연기를 전공하는 이기화씨(24·청강문화산업대 2학년)도 “무용 수업의 경우 원래는 교수님이 자세 보고 잡아주니까 실력이 는다”면서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몸이 삐뚤어졌다든지, 골반이 잘못됐다든지 피드백을 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다양한 사람 만나 시야 넓힐 기회 잃어”

학업 외적인 부분도 타격을 입었다. 학생들 간교류는 사실상 단절됐다. 단과대 학생회 임원인 한씨는 피부로 직접 느낀다. 23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대면민원(학생회실에서 학생들의 복사기 이용 등을 돕는 것)을 하러 가는 한씨를 따라갔다. 원래 돌아가며 하루 7시간씩 당직을 맡았지만 코로나19 이후 2시간으로 줄였다. 한씨가 당직을 하는 1시간 동안 학생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학생회 부원 3명만 자리에서 수다를 떨었다.

학생회 회기 동안 회식이나 단체여행(MT)조차 한번도 없었다. 선후배를 연결해주는 멘토·멘티 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코로나19 이전에 비하면 한참 아쉽다. “제가 임원이라 새내기 단체 카카오톡 방에 들어가 있는데, 공지용 방이나 사담용 방이나 한마디도 없어요.” 새내기들은 얼굴을 모르는 동기 대신 한씨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다. “동기와도, 타과생과도, 선배들과도 다 연결이 안 돼 붕 뜬 느낌일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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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시립대 2학년 정혁씨(23)가 서울 동대문구 자취방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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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혁씨도 교류에 목마르다. 정씨는 “대학에서는 수업을 받는 것 말고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가는 사람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있다”며 “사회에 나가기 전에 다양한 성향,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억지로라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 자체가 극과 극으로 갈려 서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데, 더 넓은 시야를 가질 기회를 많이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학과 학생회장에도 출마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이전 자신이 경험했던 ‘대학 생활’을 신입생들도 누리게 해주고 싶어서다. “제가 좋은 추억이나 기억을 갖고 있던 소소한 것들이 있어요. 소모임 활동이라든가, ‘밥약 문화’(신입생과 선배가 밥을 먹으며 친해지는 것)라든가…. 누군가 해야 한다면 제가 하려고요.”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캠퍼스를 가진 대학은 온라인 대학과 달리 학교 캠퍼스 안에서 이뤄지는 많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며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학생들 스스로도 대학생이라는 게 뭔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휴학생이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에서는 학위뿐 아니라 인맥 형성과 소통을 통한 협업 능력도 배워야 한다. 그런 기회가 완전히 상실되면서 학생들이 더 고립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해람·강한들·김혜리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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