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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수년간 층간소음 다툼, 결국 살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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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어느 아파트의 한밤 비극

30대男, 위층 올라가 부부 살해

범행 직후 “내가 죽였다” 자수

층간소음 민원 상반기 2만7000건

“아파트별로 중재기구 만들어야”

전남 여수시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30대 남성이 아파트 위층에 사는 40대 부부를 흉기로 살해했다. 피해자들은 늦은 밤까지 장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자영업자였다. 최근 급증하는 이웃 간 층간 소음 갈등이 급기야 살인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여수경찰서는 27일 살인 등의 혐의로 여수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 A(35)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이날 오전 0시 33분이었다.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하려던 A씨는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등산용 칼을 들고 B씨 집으로 올라갔다. A씨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자, B씨 부부가 나왔고 현관문에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언성이 높아지다가 A씨가 B씨 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부부가 현장에서 숨졌다. 손주를 돌보기 위해 집에 와있던 B씨의 60대 부모도 A씨가 휘두른 칼에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은 방 안에 있어 화를 면했다.

A씨는 범행 이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사람을 죽였다”며 경찰에 자수해, 0시 55분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씨는 수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B씨 부부와 오랜 기간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17일에도 층간 소음 문제를 관계 기관에 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B씨 부부는 아파트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사건 전날에도 오후 10시쯤 영업을 마치고 귀가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당시 술이나 약물 등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일용직으로 일하던 A씨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가기 위해 잠을 청했는데, 층간 소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자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층간 소음 분쟁은 최근 코로나를 계기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환경공단에 지난해 접수된 층간 소음 민원은 4만2250건으로 2019년 대비 60.9% 늘었다. 올해 6월까지 접수된 민원은 2만6934건으로 이미 지난해의 64%에 달한다.

문제는 공권력 개입이나 제도를 통해 층간 소음 분쟁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층간 소음을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경범죄 처벌법상 인근소란죄’이다. 하지만 소음의 정도와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처벌이 사실상 어렵다. 혐의가 입증돼도 10만원 이하 벌금형이 전부다. 이승태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대표변호사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판결이 나오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리고, 이기더라도 피해자 1인당 배상금이 대부분 200만~300만원 이하여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층간 소음 민원을 중재하는 ‘관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산하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가 현장에서 직접 소음을 측정한 후 이웃 간 갈등을 중재하고 있지만, 실제 센터가 민원을 접수하고 현장 진단에 나서기까지는 6개월 넘게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센터에 층간 소음 민원을 접수하면 현장 방문까지 2~3개월이 걸리는데, 그나마도 위층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정부도 강제 권한이 없어 2~3개월씩 더 지연된다”며 “층간 소음 피해자의 애로점을 들어주는 아파트별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만드는 등 여러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수=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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