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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대영의 경제 바로 보기] 부동산과 돈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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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제연구소장

이투데이

물건과 서비스의 가격은 통상 화폐 단위로 표시된다. 거꾸로 화폐, 즉 돈의 값은 무엇일까? 돈의 값은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양, 즉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국내거래에서는 물가이고, 해외거래에서는 환율이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양이 줄어든다. 미국 달러당 환율이 오르면 달러를 바꾸는 데 원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 한국 돈의 대외가치가 떨어져 미국 물건을 사거나 미국 여행을 갈 때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먼저 물가가 올라 돈의 값이 떨어지면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자. 현찰과 예금 등의 금융자산 소유자와 남에게 돈을 꿔 준 채권자, 정액 소득자 등은 손해를 본다. 반면 이익을 보는 사람은 부동산이나 공장 같은 실물자산 보유자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린 채무자이다. 상환금액과 이자가 정해져 있는 채무는 나중에 가치가 떨어진 돈으로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가계, 기업, 금융기관, 정부 등의 경제주체를 크게 보면 채무자는 주로 정부와 기업이고, 채권자는 가계이다. 국민경제에서 가장 큰 채무자는 국가재정이 방만한 나라의 정부인 경우가 많다. 물가가 상승하면 정부와 기업이 이익을 보고 개인이 손해를 본다. 개인 중에서 최상위 계층은 부동산 등의 실물자산이 많아 오히려 이익을 본다. 봉급과 연금 등의 정액 소득자의 피해가 크다. 이들 중 집을 보유한 중산층도 급속한 물가상승기에는 줄어든 실질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집을 팔게 되어 극빈층으로 전락하기 쉽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중산층은 붕괴되고 소수의 최상층과 다수의 극빈층으로 분화된다.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회가 되어 국가의 존망이 흔들린다.

다음으로 돈의 대외가치인 환율이 오르면 경제주체 간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될까?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거나 수출업체의 수익이 증가할 수 있다. 환율이 달러당 1000원에서 1250원으로 오르면 수출업체는 10만 원짜리를 100달러에 팔다가 80달러에 팔아도 원화로는 계속 10만원을 받을 수 있어 20달러의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수출업체가 100달러에 계속 팔 수 있다면 원화 12만5000원을 받게 되어 매출과 수익이 늘게 된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업체와 외화자산 보유자가 이익을 본다.

반면 환율이 오르면 수입업자나 외화부채 보유자, 유학생과 해외여행자는 동일 금액의 달러를 위해 더 많은 원화가 필요해져 손해를 본다. 수입업자는 휘발유나 밀가루 값에 반영하여 부담을 소비자에게 넘길 수 있다. 따라서 환율상승의 부담은 대부분 일반 국민이 진다. 여기에다 달러로 환산한 대한민국 자산의 대외가치도 감소한다. 그런데 수출업자 등의 이익은 어디서 온 것일까? 미국 등 외국에서 온 것은 아니다. 미국 수입업자는 달러로 같은 금액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수입물품을 쓰는 소비자, 유학생과 해외여행자 등의 손실이 보이지 않게 수출업자와 외화자산 보유자의 이익으로 간 것이다.

물가와 환율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같은 일이 발생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되고, 부동산이 없는 사람은 집값 집세가 올라 가난해진다. 집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해 저축을 해도 부를 축적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물가와 환율,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야 경제주체 간에 이익과 손실의 부당한 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집값 집세도 물가의 일부로 소비자물가지수에 충분히 포함되어야 경제정책이 제대로 운영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1970년부터 2020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독일 일본의 화폐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한국은 소비자물가가 21배 오르고 미 달러당 환율도 4배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독일은 소비자물가가 3배 정도 상승하는 데 그쳤고, 미 달러 대비 환율은 3분의 1로 떨어져 독일 돈의 가치가 미국 돈에 비해 3배 커졌다. 일본도 독일과 비슷했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신뢰할 만한 장기통계가 없지만 소비자물가보다 훨씬 많이 상승했을 것이다. 한국은 소비자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의 상승에 따른 국내 화폐가치의 하락이 환율상승이라는 원화의 대외가치 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 50년간 화폐가치의 변화를 보면 한국에서 정액 소득자, 금융자산 소유자, 소비자 등이 큰 손실을 보았다. 반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 보유자, 채무자, 수출업자 등은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한국경제는 그간 빠른 성장을 했지만 경제성과가 공정하게 나누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잘못된 보상체계와 복지 부족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가 필요로 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 공급되어 돈의 값이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물가와 환율,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경제성장도 해야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나라가 된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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