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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글로벌 아이] 인생게임에서 이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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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루벤 클레머 사망. 99세.’

지난주 뉴욕타임스(NYT)에 눈에 띄는 부고가 실렸다. 발명가이자 장난감 개발자인 클레머가 지난 14일 미국 샌디에이고의 자택에서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스타트렉에 나온 총(스타플릿 페이저)이나 플라스틱 훌라후프 등 여러 장난감을 세상에 내놨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단연 보드게임인 ‘인생게임(The Game of Life)’이다. 1960년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 첫선을 보인 뒤, 지금까지 전 세계 59개국에서 약 7000만 개가 팔렸다.

보드게임으로는 모노폴리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상당해, 50년 넘게 여러 버전으로 진화하며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으로 자리매김했다. 게임판 위에 말을 놓는 순간 대학에 진학할지, 곧장 사회로 나갈지부터 결정한다. 이후 직업이 정해지면 룰렛을 돌려 나오는 숫자대로 삶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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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루벤 클레머가 만든 보드게임 ‘인생게임’은 여러 버전으로 제작되며 전 세계 59개국에서 판매됐다. [사진 미 완구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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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종착점은 은퇴다. 여러 돌발 상황을 거치면서 일생을 마칠 때 누가 많이 돈을 벌었느냐로 승패가 결정된다. 고작 은퇴하려고 몇십 분 동안 게임을 했나 하는 허탈감이 드는데, 아이들과 게임을 하다 보면 불편한 구석도 있다. 직업에 따른 삶을 너무 단순화한 데다, 한 사람 인생을 자산 규모로만 평가하니 말이다.

클레머 본인의 삶조차도 인생게임처럼 단순하진 않았다. 오하이오의 루마니아 유대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어머니가 가족을 떠났다. 2차 대전 중 해군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고, 두 번 이혼했으며 세 자녀 중 장남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면서 200여 개의 장난감을 개발했고,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발명을 계속했다. 2005년에는 미국 완구산업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그는 죽기 전에도 현역 발명가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의 친구인 조지 버치 해즈브로 부사장은 “이런 면에서 볼 때 클레머는 자신의 인생게임에서 승리자”라고 평가했다.

지금 현실 세계를 보면 인생게임 속 말처럼 사는 이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오직 더 많은 자산을 향해 지금도 열심히 룰렛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혹은 학문적으로 다른 가치를 좇고 있다고 여겼던 이들, 그 자식들까지 예외가 없다. 간혹 편법을 쓰다 탈이 나고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데, 한창 게임판 속에 있을 땐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인생은 한 가지 척도로만 평가될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게임’ 제작자의 부고에서 발견하게 된다.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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