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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피플]노력과 도전…'쉰하나' 탱크 최경주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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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 한국인 첫 PGA챔피언스 투어 우승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신조

필드에 가장 오래 있는 '연습벌레'

한국인 첫 PGA 진출·우승 이은 쾌거

30일 이름 건 인비테이셔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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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가 마지막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퍼트를 넣은 뒤 환호하는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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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51)가 늘 강조하는 말이다.

지난 6월 최경주는 올해 시드를 잃고 2부(콘페리) 투어에서 활동하는 이동환(34)과 김민휘(29) 등 후배들의 어려움을 보고는 “좌절하지 마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PGA 투어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응원하겠다”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최경주는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선배다. 그의 골프인생이 노력과 도전으로 이뤄낸 결과이기에 최경주의 조언은 더 크게 다가온다. 많은 후배들이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이유다.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으로 활동해온 ‘탱크’ 최경주가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2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페닌슐라의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앤드 스파이글래스 힐(파72)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합계 13언더파 203타를 쳐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다.

2000년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진출, 2002년 한국인 최초의 PGA 투어 우승에 이어 또 한 번 한국 남자골프의 역사를 새로 쓴 기념비적인 일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프로 활동을 하던 최경주는 2000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무대를 밟았다. 1999년 12월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하며 투어 카드를 얻었다.

최경주의 PGA 투어 진출은 무모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예견대로 첫해 30개 대회에 출전해 14번 컷 탈락하면서 시드를 잃었다. 하지만 최경주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일본에선 남자골프의 인기가 높았다. 여자골프와 비교해 시장 규모도 컸던 터라 돌아오면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PGA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집념과 의지로 어려운 길을 택했다.

퀄리파잉 스쿨에 다시 도전한 최경주는 극적으로 출전권을 받아냈다. 2년 차엔 톱10까지 이름을 올리며 서서히 적응했다. 그리고 3년 차이던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마침내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탱크’라는 별명처럼 될 때까지 하겠다는 투지와 노력 그리고 땀으로 만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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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문승용 기자)


새 길을 개척하며 PGA 투어를 누빈 최경주는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까지 통산 8승 거두며 아시아 선수 최다승이라는 기록을 쌓았다. 통산 8승의 과정 역시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2009년 통산 7승 고지에 오른 최경주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체중 감량과 스윙 교정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경주에겐 모험이었고 또 한 번의 도전이었다.

당시 최경주의 몸무게는 90kg을 넘었다. 그는 가장 컨디션이 좋았을 때인 83~85kg을 유지하기 위해 식단을 바꾸고 살을 빼는 운동을 했다. 골프선수에게 변화는 가장 무서운 적이지만, 겁내지 않았다. 그러나 최경주의 선택은 실패로 끝났다. 1년 동안 노력했으나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엉덩이 연골 인대 통증 등 부상도 따랐다. 거리도 줄어 경기력이 크게 떨어졌다. 서서히 은퇴 얘기가 흘러나왔다.

2년 뒤인 2011년 최경주는 다시 정상에 섰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큰 실패를 경험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얻은 성과였다. 그토록 염원하던 메이저 대회는 아니었지만,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다. 탱크의 부활이었다.

최경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연습벌레’다. 3년 전, 국내에 들어와 후배들과 경기에 나섰던 최경주는 “지금까지 친 공의 개수가 7000만개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연습량은 PGA 투어 선수들도 혀를 찰 정도였다. 남들보다 일찍 연습장에 나와 해가 질 때까지 샷을 했다.

1970년생인 최경주는 쉰살을 넘긴 지난해부터 챔피언스 투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서른 살의 나이로 PGA 투어에 도전한 데 이어 20년 만에 새로운 길을 나섰다.

만 50세 이상이 참가하는 챔피언스 투어는 PGA와 유럽 무대를 누벼온 베테랑들의 격전지다. 국내에선 선수가 많지 않아 활성화되지 않았으나 미국에선 PGA 투어 다음으로 인기가 많고 투어 규모도 크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최경주는 단단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챔피언스 투어 수준이 기대 이상으로 높다”며 “우승하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해야 할 것 같다. 선수들의 면면이 화려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이전보다 더 강렬한 눈빛을 보였다.

그동안 PGA 투어와 챔피언스 투어를 병행해온 최경주는 지난 8월 “병행하는 게 힘에 부쳤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챔피언스투어에 전념할 생각이다”라고 새로운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결실을 봤다. 지난주 챔피언스 투어 14번째 대회에서 준우승한 최경주는 일주일 만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한국인 최초의 챔피언스 투어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10년 4개월 만에 들어 올린 우승트로피다.

최경주는 28일 우승트로피를 들고 금의환향한다. 30일부터 경기도 여주의 페럼CC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최하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해 국내 팬들 앞에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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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가 2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서 열린 PGA 챔피언스 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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