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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가상자산 거래소, 현금매매 멈추니 거래량 99% 감소…줄폐업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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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시행된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영업 요건 여파로 중소 거래소의 거래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대금의 0.1~0.2%로 붙는 수수료가 주수입원인 거래소들의 채산성 악화와 줄폐업 가능성이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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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지 못해 영업을 중단해야하는 서울의 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면업무 서비스 중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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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가상자산 거래소는 25일부터 ▲은행과 계약을 맺고 법인 명의 집금계좌(실명계좌)를 확보한 4곳 ▲실명계좌는 없지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아 가상자산 간 거래가 가능한 25곳 ▲사업자 신고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30여곳 등으로 나뉜다. 그런데 두 번째 유형의 거래소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ISMS 인증을 받았지만, 실명계좌가 없는 거래소는 현금으로 가상자산을 매매할 수 없다. 하지만 현금으로 가상자산을 사거나, 또는 가상자산을 팔아 현금을 받는 기능을 없애면 규제 테두리 내에서 영업이 가능해 비트코인이나 테더(USDT) 등을 기반으로 한 코인마켓(가상자산 간 거래만 가능한 시장)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코인마켓으로 전환하면서 거래가 뚝 끊긴 것이다.

가상자산 정보 서비스 코인게코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 플라이빗의 일일 거래대금은 지난 24일 9740만달러(1150억원)에서 26일 580만달러(70억원)으로 17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9월 거래대금이 가장 많았던 8일(6억9200만달러)과 비교하면 99.2% 줄어든 것이다. 또다른 거래소 고팍스의 거래대금도 24일 7800만달러에서 26일 210만달러로 38분의 1 토막이 났다. 이달 거래량 이 가장 많았던 3일(1억5500만달러)과 비교하면 98.7% 거래량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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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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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5월 일일 거래대금이 100억달러(11조8000억원)로 업비스, 빗썸에 이은 업계 3위 규모를 유지했던 코인빗의 경우 현재 일일 거래대금이 몇천만원에 불과하다. 지닥은 24일(3700만달러) 대비 99.4% 줄어든 20만달러 수준이다.

이들 거래소는 비트코인 내지는 미국 달러화와 일대일로 교환이 가능한 테더 등을 기본적인 교환 수단으로 삼는 코인마켓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코인마켓을 외면하고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현금 매매가 가능한 4대 거래소로 옮겨간 형국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코인마켓으로 전환할 경우 거래량이 줄 것으로 예상하긴 했는 데, 실제 감소폭이 엄청난 수준”이라며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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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이 13일 발표한 ISMS 인증 현황에 따른 가상자산 거래소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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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마켓으로 전환한 거래소가 외면 받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현실적으로 환전이 어렵다는 것이다. 테더의 경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달러화나 원화로 교환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해외 거래소로 보유한 테더를 옮긴 뒤, 이를 비트코인이나 리플 등 다른 가상자산으로 바꾼 뒤에 국내 거래소로 다시 가지고 와서 원화로 바꿔야한다. 그 과정에서 높은 수수료를 내야할 뿐만 아니라 적잖은 번거로움도 따른다. 또 고스란히 특정 가상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에 노출된다는 약점이 있다. 비트코인은 업비트 등에서 환전이 가능하지만 하루에 수십%가 변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정도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게다가 개별 거래소마다 유통되는 가상자산 규모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참가자가 적고 충분한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코인마켓 시장의 가격 변동 위험은 높아지게 된다.

가상자산 업계 일각에서는 코인마켓으로 전환한 중소 거래소들의 연쇄 폐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수입원인 매매 수수료가 뚝 끊기는 데 계속 영업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거래소는 일반 고객들에게는 거래대금의 0.1~0.2%를 가상자산 등으로 받는다. 거래량이 많은 회원의 경우 수수료를 깎아준다. A거래소의 경우 일반 수수료 0.1%를 기준으로하면 수수료 수입이 9월 거래대금이 최대였던 날 8억1000만원에서 26일 700만원으로 수입이 대폭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B거래소(수수료율 0.2%)도 3억6000만원을 기록했던 것이 26일 500만원으로 감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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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내 코인 시세 전광판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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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거래소가 점차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규제가 까다로워지는 것도 중소 거래소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것이 거래소 간 가상자산 이동 기록을 모두 수집해 보관하는 ‘트래블룰(Travel Rule)’ 준수 의무가 내년 3월부터 부과되기 때문이다. 트래블룰은 국제 금융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협력 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요구하는 사안이다. 현재 가상자산 규제 가운데 상당수가 FATF발(發)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 거래소 규제도 FATF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 업비트는 단독으로, 빗썸·코인원·코빗은 합작법인을 세워 트래블룰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가 4개 업체의 독과점 체제로 급격히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다른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거래소에 대한 규제 정도를 계속 높여갈 것”이라며 “거래소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이라 결국 규제 준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극소수 업체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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