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원전폐쇄·탈석탄 시대전환…‘메르켈 없는 기민련’ 퇴행은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터뷰: 프랑크 하인리히 기민련 의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프랑크 하인리히(57) 19대 연방의원은 극우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는 통일 직후 동독 켐니츠에 목사로 부임해 이곳에서 3선을 지냈다. 옛 동독 지역인 켐니츠는 우익 시위가 계속되는 ‘화약고’와 같은 곳으로 2017년 선거에선 하인리히 의원은 극우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맞서 2.6% 차이로 간발의 승리를 거뒀다.

―목사라는 종교인으로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1997년 구세군 목사로 이곳에 발령받았다. 이곳 사람들의 고통과 필요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10집 중 1집은 수리가 필요했고, 시가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노령의 주민들과 외국인들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조직하고 지원하다가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2007년 기독민주연합(기민련)에 입당하고 12년 동안 의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통일 뒤 북한에 발령받는다고 상상해보면 내 경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뒤 이 지역도 크게 발전했다. 그런데도 왜 극우당을 선호하는가?

“우선 동독 시민들의 기대 수준이 (현실과) 달랐기 때문이다. 통일이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게 헬무트 콜 총리의 약속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약속이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사이 실망하고 ‘항의 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항의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이 극우 이전엔 주로 좌파당에 투표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극단적 우익에 투표하는 데는 국제 정세까지도 작동한다고 본다. 반미 정서와 친러시아 정서도 동독 지역 투표에 영향을 끼친다.”

―최근 극우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이유는?

“위기가 발생하면 행정부의 시간이 오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가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여러 사회적 문제의) 확산을 막아왔다. 이런 노력이 지지도와 연결되고 있다. 그런데 항상 자극적인 주제를 찾아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극우의 수법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초기에는 반유럽연합(EU), 2015년(시리아 난민 사태가 발생한 해)에는 반난민, 현재는 코로나19 방역 반대를 내걸고 사람들을 결집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메르켈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은 언제나 겸손했다. 그런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확신이 들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모든 측면을 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자다운 면모다. 다음 총리가 그와 같은 스타일일 수는 없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인물’이 누구냐가 중요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유권자들이 총리 후보보다 소속 정당의 공약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정치적 내용을 둘러싼 다툼이 있는 선거가 필요하다.”

―기존 연정을 평가하고 앞으로를 전망한다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 정부(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이 주도가 된 메르켈 정부)는 참여 정당 간의 연정 협약의 85~90%를 실행했다. 이 점은 중요하다. 기민련이 연정 파트너로 선호하는 정당은 자유민주연합과 녹색당이다. 사회민주당에 대해서는 대연정을 반복했던 피로감이 커서 원하는 의원이 많지 않다. 좌파당과 ‘독일을 위한 대안’과는 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나는 절대 두 당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스펙트럼의 서로 다른 극단에 있는 두 당이 계속 선거에서 패하길 바란다. 극단적 정당의 영향력 감소는 곧 중도 정당의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메르켈 이후 기민련이 보수 입장으로 퇴행하리라는 우려가 있다.

“일단 시대적 전환을 이루었기 때문에 수구로의 후퇴는 없다. 원전 폐쇄와 탈석탄에너지 정책을 예로 든다면 기민련엔 메르켈 총리보다 더 선도적으로 파리기후협정 및 탄소저감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이들이 많다. 나는 원전을 조속히 폐쇄해야 된다는 신념 때문에 당의 원전 유지 입장에 반대표를 던지고 싸워야 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태로 당론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도 탈원전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연재해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핵폐기물 처리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또 어떤 나라도 원전에 대한 테러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베를린/글 이진 독일정치+문화연구소장, 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사진 남은주 통신원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