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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채를 둘러싼 공장 6개...막을 법규 없어 "오염피해는 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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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 기준, 대기 기준, 거리 기준... 규정 미비
오염조사에서 국내 기준 없어 해외 권고치 적용
수질 관련 규제는 ‘기업 활동’ 위해 감시 면제

[국가가 버린 주민들]<2부>방치된 시스템 ⑤유해물질, 운에 맡긴다?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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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인천 서구 사월마을 마을회관 뒤편에서 주민들이 기자(맨 왼쪽)에게 사월마을의 오염 피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쪽으로 마을에 가득 들어찬 폐기물처리 공장들이 보인다. 인천=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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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에 어느 날 2층짜리 공장이 들어섰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공장 6개가 집을 둘러쌌다. 공장과의 최소 거리는 불과 3.5m.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집은 유압기계제조업체, 온수저장탱크 제조업체, 고철 수집운반업체, 자동차정비기기 제조업체 사이에 있다.

인천 사월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순재(87)씨 집 이야기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시야가 탁 트인 곳이었다"며 "집 바로 앞을 2층짜리 공장이 막아섰고 매일 소음에 시달린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10년간 주민건강영향조사 청원이 이뤄진 전국 8개 지역을 취재하면서, 공장과 거주지 간의 간격 및 공장 밀집에 대한 법령 미비로 오염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해물질 배출 기준도 엉성하다. 사실상 오염 피해는 운에 맡겨야 할 정도였다.



사월마을에 200개가량의 공장이 들어서고, 전북 익산 장점·왈인·장고재 마을에서 고작 500m 떨어진 곳에 발암물질을 내뿜는 비료업체가 들어서고, 충북 청주 북이면에 3개의 소각로가 몰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관련 법령이나 조례가 없어서,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는 업체의 신청이 들어오면 으레 허가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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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사월마을의 주택들은 200개가량의 폐기물 처리 공장에 둘러싸여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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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물질 28%, 배출 규제 없다


우선 망간을 비롯해 철, 알루미늄 등 오염물질 18종은 아무리 많은 양이 대기 중에 흘러나와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에 일반오염물질 29종과 특정대기유해물질 35종을 합해 총 64종의 대기환경오염물질을 지정하고 있다. 이 중 배출허용기준(굴뚝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허용기준)이 있는 물질은 35종(일반오염물질 11종+특정대기유해물질 24종)밖에 안 된다.

나머지 29종 중 특정유해물질로 분류되는 오염물질 11종은 그나마 입지 제한을 받거나 개별법(석면, 다이옥신, 폴리염화비폐닐)으로 허용기준을 따로 정해두었지만, 일반오염물질로 분류되는 18종에 대한 규제는 전무하다. 대기환경오염물질 중 28%를 차지한다.

유해물질 배출 측정 방식도 허점이 있다. 각 사업장은 오염 저감장치 등의 방지시설을 설치해야 인허가를 받을 수 있고, 배출 규모에 따라 굴뚝자동측정기기(TMS) 또는 자가측정(주 1회~반기 1회)을 통해 오염물질의 배출 농도를 점검해야 한다. 환경부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TMS와 달리, 자가측정은 업체에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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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북이면 주민들과 이 지역 암 사망자 유족, 미세먼지해결을위한충북시민대책위가 지난 7월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환경부가 발표한 주민건강영향조사가 주민들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이라며 환경부의 책임 있는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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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측정은 측정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방식 등으로 국립환경과학원이 정한 굴뚝 위치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이를 분석해 그 결과를 대기오염배출허용관리시스템 또는 지자체에 보낸다. 이렇게 보고된 결과물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주민들이 볼 수 있다.

사업장이 저감장치를 끄거나 측정치를 조작하고, 운전 미숙·고장 등으로 측정 결과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남도가 자가측정 배출량 조작 등을 적발해 행정처분한 업체는 여수국가산업단지 등에서 총 92곳에 이르렀다.

문제는 또 있다. 각각의 오염물질이 기준을 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 물질이 혼합돼 배출되면 건강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혼합오염물질에 대한 기준치는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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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수신면의 한 마을에 사는 주민이 마을 내에 위치한 공장에서 나온 유해물질의 이름을 적은 메모를 보여주고 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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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관계자는 "업종별 배출량 및 배출농도 특성, 저감기술 동향, 저감목표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 허용기준에 새 오염물질을 추가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며 "혼합물 기준은 의학계 판단, 다양한 경우의 수 등을 감안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1년 배출허용기준 도입 후 6차례 기준을 강화하거나 신규기준을 추가해왔다"며 “현재 특정대기유해물질 8종의 배출허용기준이 입법 예고된 상태이고, 향후 허용 기준 설정 대상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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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동해 송정동의 주민이 인근 시멘트 공장과 항만에서 날아온 먼지가 벽에 내려앉은 자신의 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송진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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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속·발암물질 검출은 됐는데...


또 건강영향조사에서는 굴뚝 배출뿐만 아니라 대기 중에 떠도는 유해물질도 포집해 농도를 측정했는데, 이때 대기환경기준이 마련된 오염물질은 단 8종뿐이다.

인천 사월마을 조사에서 검출된 망간(106.8ng/㎥), 니켈(13.9ng/㎥), 철(2,055.4ng/㎥) 등의 대기 중 중금속 농도는 대조지역(구월동ㆍ연희동)에 비해 2~5배 높은 수준이었지만, 국내기준이 없어 적정성 여부를 따지지 못했다. 환경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치(망간 150ng/㎥ㆍ니켈 25ng/㎥ 등)를 끌어와 배출농도가 높지 않다며 주민들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폐기물 소각로가 몰려 있는 충북 청주 북이면도 비슷하다. 대기 중에서 발암물질인 벤조(a)피렌(0.22ng/S㎥)과 카드뮴(0.0005 ㎍/S㎥)이 검출됐는데, 환경부는 이들 물질의 배출농도 역시 영국과 유럽연합(EU), WHO의 권고치 이내라는 이유로 “유해물질과 주민들 암 발병 간의 역학적 관련성을 입증할 근거가 제한적”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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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북이면 환경 오염에 따른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총괄한 김용대 교수가 지난 7월 29일 충북대 의학대학 건물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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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북이면 건강영향조사를 총괄한 김용대 충북대 교수는 “해외의 권고치는 각 지역 국민들의 특성과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기준을 잡은 것인데, 인종이 다르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심층적인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침적먼지에 포함된 유해물질은 국내외 모두 관련 기준이 없다. 사월마을에서는 비소, 카드뮴, 크롬, 철, 납, 알루미늄 등 총 8종의 중금속이 침적먼지에서 검출됐음에도 정부는 이들 물질과 주민건강의 관련성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또 체내 오염물질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사월마을 주민들의 소변에서 평균적으로 카드뮴(0.76㎍/g cr.)과 수은(0.47㎍/g cr.) 등이 검출됐는데 독일 기준을 가져다 써야했고, 청주시 북이면 주민들의 혈액과 소변에서 다이옥신 등이 검출됐지만 국내외 기준치가 없다는 이유로 질병피해 원인으로 지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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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공장에서 오염물질을 배출, 집단 암 발병이 발생했다고 보는 충남 천안 수신면의 주민들이 마을 어귀에서 공장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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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수 배출, 대부분 자가측정도 면제


수질오염 관리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환경부는 물환경보전법을 통해 수질오염물질 59종을 지정하고, 배출허용기준도 마련했다.

그러나 전국 공공하수ㆍ폐수 종말처리 시설 또는 1일 폐수배출량이 200㎥가 넘는 사업장 등에만 수질원격감시체계(TMS)를 설치해 감시한다. 2018년 전국 8곳의 공공 하ㆍ폐수처리장이 TMS 기록을 조작해 적발되기도 했다.

TMS 의무가 없는 소규모 사업장은 자가측정도 면제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1999년까지는 폐수 자가측정 의무규정이 있었는데 기업활동을 위한 규제 완화 취지로 임의규정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가 분기별로 1회 이상 오염도 검사를 하지만, 그 시기만 피하면 기준을 안 지켜도 된다는 의미이다.

악취 배출도 허용 기준치가 있지만, 주민 민원이 전제돼야 규제할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지역이 별다른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민원이 계속 들어오면 지자체장이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고, 이 경우 지자체에 관련 시설을 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민원이 계속 들어오면 허용기준치에 따라 제재를 가하지만, 신고대상지역(악취관리지역)이 아니면 개선 권고→조치 명령→과태료(최대 200만 원) 순의 조치만 취할 뿐 가동 중단이나 시설 폐쇄를 강제할 수 없다.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한해서만 그나마 최대 조업정지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

토양오염도 별다른 규제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토양오염은 기본적으로 대기나 폐수 등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대기와 수질만 관리할 뿐) 따로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정수 환경안전연구소 소장은 “기준이 없는 오염물질은 해외 기준을 국내 사정에 맞게끔 검토해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또 주민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오염물질에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해 통합유해성평가 시스템을 운영해 대기ㆍ수질ㆍ토양ㆍ작물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주민들의 독성물질 노출 정도를 모니터링하는 ‘독성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WHO도 국내에 ‘독성센터’ 운영을 권고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관련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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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동해시 동해항 인근 송정동에 사는 한 주민의 집 담장 안쪽에서 바라본 항만 모습. 하역과 운송을 담당하는 시설이 가깝게 보인다. 송진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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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격거리·공장 밀집 기준 전무


국토교통부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6조에 따르면, 특정 건축물에 대한 이격거리와 배치를 지자체 조례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무규정이 아니다. 실제로 사월마을에 약 200개 공장의 설립을 허가한 인천시는 "이격거리와 관련한 조례는 없다”고 밝혔다. 비료공장의 발암물질로 인해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있었던 익산시에도 조례가 없다.

사월마을 주거환경조사에 참여했던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독일은 공장종류별로 위험도를 7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주거지와 100~1,500m 이상 떨어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월마을은 약 606㎡의 면적인데,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 가구당 250m 내에 평균 44.29개의 공장이 있다. 2018년 반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사월마을 내부에는 독일 기준으로 △6등급(1,000m) 사업장 3개 △5등급(700m) 3개 △4등급(500m) 17개 △3등급(300m) 12개 △2등급(200m) 25개 △1등급(100m) 62개가 분포해 있었다. 이후에도 업체 허가가 계속돼 현재는 공장이 약 200개에 이른다.

청주시의 경우, 2017년 12월 조례를 만들기는 했다. △자연취락지구로부터 직선거리 1,000m 이내 △반경 1,000m 이내 10호 이상의 가구가 있을 경우 △관광지, 학교 그 밖에 공중이 수시로 집합하는 시설 또는 장소로부터 1,000m 이내에는 소각시설을 설립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반 교수는 “소각시설의 굴뚝 높이를 40~50m로 가정했을 때 분진거리가 날아가는 거리는 1,000미터를 훨씬 넘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주시는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조례'에 나온 기준을 준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축분뇨 관련 조례는 악취가 분포되는 거리를 기준 삼은 것으로 대기오염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는 뒷짐 지고 있다. 국토부는 지역별ㆍ시설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일괄적인 이격거리 기준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 교수는 “공장 밀집도와 이로 인해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총량 등을 계산해 공장과 주거지와의 거리를 법률로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염 법령 부재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보고 있다. 연탄공장이 모여 있던 대구 안심연료단지의 주민이었던 정순례(가명·83)씨는 말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어요. 셋방살이를 하느라 약도 못 지어먹고 살아왔어요.”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남편은 먼저 세상을 등졌고, 정씨도 진폐증을 앓고 있다.

아프지만, 언제부터, 왜 아픈지 모르는 주민들은 오염지역 인근에서 지금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2부>방치된 시스템

⑤유해물질, 운에 맡긴다?

⑥두 번 죽이는 조사 결과

⑦이주대책은 언제

⑧회한과 바람


청주=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인천=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대구=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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