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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시론]발전소로 변해가는 농촌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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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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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태양광 발전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민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2030년까지 10GW 발전목표를 세우고 있는 정부는 ‘영농형’ 방식으로의 전환과 농가 소득 증가를 이유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고, 국회에서는 같은 논리로 농지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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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기 영남대 명예교수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농업이 갖는 공공적 특성에 있다. 개별 농가들의 소득 증가나 농촌경제 활성화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땅, 물, 공기 등 자연적·환경적 요소를 이용하여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산업이다. 다량의 금속성 발전설비들을 논밭 한가운데 설치하는데 토양과 수질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다. 농작물이 제대로 생장할 리 없고 생산은 당연히 감소할 것이다. 발전설비와 각종 구조물들로 인해 자연경관이 훼손되는 건 말할 나위 없다. 주변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등 환경조건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평화로운 농촌사회가 발전사업으로 분쟁과 갈등에 휘말릴 수도 있다. 발전수익으로 농가소득이 늘어난다지만 과연 어떤 농가들이 혜택을 볼 것인가. 농지는 결국 농사보다는 전력생산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될 것이고, 발전시설이 확대될수록 다수의 중소 임차농 소득은 줄고 지주와 업체들의 배만 불릴 것이다. 최근엔 발전수익을 노린 투기로 농지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4년여 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농정기조는 크게 변했다. 과거 생산성이나 효율성 중심 농정에서 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존되는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의 발전을 지향하는 농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작년부터는 공익형 직불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우리도 머지않아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살기 좋고 아름다운 농촌을 가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논밭에 발전설비를 들여놓는다는 건 이런 새 농정기조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농촌 태양광 발전사업이 현 정부 들어 급격히 확산되었다는 점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한편에서는 농업·농촌의 공익기능 증진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영농형’이라는 이름으로 논밭에 발전설비 건설을 확대하고 있다.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다 좋다는 식의 근시안적인 무원칙 농정이 아닐 수 없다. 근원을 찾아가 보면 농업·농촌에 대한 경시와 닿아있다. 많은 면적이 필요한 사업이니 쉬워 보이는 농촌이 표적이 된 것이다. 농업·농촌의 경시는 생명, 자연, 환경의 가치에 대한 경시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경지면적과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이다. 얼마 되지 않는 이 땅은 5200만 국민 먹거리의 최후 보루이자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

최근 5년간 태양광 사업으로 감소한 농지가 1만㏊에 이른다. 심지어 우량농지로 분류되는 농업진흥지구에까지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지는 농업·농촌 고유의 공익적 기능이 잘 발현되도록 이용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태양광 발전에 이용되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훨씬 큰 이익이다. 주민 수용성이나 참여도를 높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농지 소유주나 주민의 동의 문제를 넘어 환경과 생태, 식량안보, 국토의 균형발전 등 공공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다. 더구나 농업의 산물은 기본적으로 탄소 흡수원이며 바이오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중요한 재생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에너지 소비 비중 1.5%, 온실가스 배출 비중 2.9%에 불과한 농업이 태양광 사업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농촌 이외의 도시나 산업단지 같은 에너지 다소비 지역에 집중해야 하고, 발전효율 향상을 위한 기술혁신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여건상 태양광 비중이 높게 설정된 건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기후위기 극복은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당면 과제다. 그래서 우리도 속도를 내야 한다. 하지만 방향은 더 중요하다. 얼마 안 되는 전국의 농지가 태양광 패널과 각종 발전 관련 시설들로 뒤덮일 모습을 상상해 보자. 기후위기 잡으려다 정작 식량 위기, 생태계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탄소중립을 내세운 농촌 난개발을 멈춰야 한다. 10GW 목표치를 향해 지금도 농촌의 들녘은 발전소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잘못 뿌린 씨앗은 결국 미래 국민과 후손들의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용기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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