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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지구와 공존 꿈꾸는 플라스틱의 진화[정우성의 미래과학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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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플라스틱은 열이나 압력을 줘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고분자 화합물을 일컫는다. 천연수지와 합성수지 모두 플라스틱이지만, 대개 합성수지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껌이나 천연고무와 같은 다양한 천연 플라스틱이 사용됐다. 그러던 중 1800년대 중반 셀룰로이드가 만들어진다. 열을 가하거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기 쉽지만 식히면 단단하게 변하여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았다. 이후 합성수지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이 만들어진다.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해 만든 베이클라이트, 합성 플라스틱은 다양한 전자제품에 널리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정부가 부족한 구리 대신 플라스틱으로 동전 만드는 걸 검토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찢어지지 않고 위조하기도 어려운 플라스틱 지폐를 쓰는 국가가 많다.

현대 문명에서 플라스틱은 없어서는 안 될 소재다. 칫솔, 바가지 등 생활용품에서부터 기능성 섬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자, 자동차 내장재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인다. 뉴밀레니엄을 여는 2000년 노벨 화학상은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을 개발한 학자들이 받았다. 이들이 개발한 전도성 플라스틱은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등에 쓰인다. 높은 온도를 견디는 플라스틱은 경주용 자동차 엔진에 사용되고, 철보다 강한 섬유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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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나 해변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쌓여 있는 모습(위 사진). 바다로 몰려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썩지 않고 미세 플라스틱이 돼 물고기나 동물의 몸속에 축적될 위험이 크다. 아래 사진은 미세 플라스틱의 모습.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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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현재 미국 하와이에서 북동쪽으로 1600km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가 몰려 이른바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를 이루고 있다. 1997년 당시 요트 경기에 참여한 찰스 무어가 우연히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을 발견한 뒤 언론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 모인 플라스틱 쓰레기의 무게는 대략 8만 t, 그 크기는 대한민국의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쓰레기 섬이 조성되는 데 영향을 미친 국가는 쓰레기에 부착된 라벨로 확인된다. 상당수가 중국과 일본에서 온 것이고, 우리나라 쓰레기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환경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비단 태평양뿐 아니라 대서양, 인도양 등에서도 이 같은 종류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 하면 페트병 등 눈에 보이는 것을 떠올리지만 더 심각한 것은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이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차차 바닷물에 깎이고 뜨거운 태양열에 부서져 아주 작은 입자의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큰 쓰레기는 어떻게든 수거할 수 있겠지만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변해 버린 미세 플라스틱은 건져내기에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생태계 교란이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해양 생물은 장애를 겪거나 죽는다. 물고기 몸에 축적된 미세 플라스틱은 더 큰 물고기나 동물의 몸으로 옮겨지고, 결국 우리 몸에도 쌓여간다. 소화가 안 되는 플라스틱 덩어리가 몸 안에 잔뜩 쌓여 죽어간 물고기처럼 사람도 플라스틱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 더욱이 플라스틱은 석유를 원료로 하기에 많은 유해 물질을 갖고 있다. 많은 현대인이 유기농 식재료를 찾아 먹으며 건강을 챙기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새 상당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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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분해가 쉬운 플라스틱 개발이 한창이다. 사진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개발한 따뜻한 물을 부어주면 상온에서 사라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사진 출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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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빗물이나 하수 처리 단계에서 쓰레기 유출을 막는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를 더 잘 분해하는 미생물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땅에 묻으면 차츰 썩어서 없어지는 분해성 플라스틱 개발도 활발하다. 이 중에는 석유를 원료로 하지 않는 플라스틱도 있다. 짚이나 톱밥, 옥수수 전분 등을 활용한다. 분해성 플라스틱은 쉽게 잘 썩어야 하는데 아직 높은 온도나 습도에서만 분해되는 등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이 있다 보니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와 함께 플라스틱이 완전히 분해될 때까지 이를 보관할 전용 매립장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여러 난관은 있지만 머지않은 시일 내 좀 더 환경오염에서 자유로운 플라스틱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술 진화 못지않게 플라스틱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일회용 비닐봉투나 컵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현재 각기 다른 일회용 플라스틱 컵 소재를 내년부터 통일해 재활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변화도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이런 친환경 움직임을 홍보 수단이나 일시적인 이미지 제고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새로운 텀블러의 남용은 일회용품 이용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다.

의도와 결과가 따로 노는 사례는 최근 플라스틱 용기의 달라진 비닐 라벨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재활용 정책이 강화되며 많은 업체들이 절취선이 들어간 라벨을 붙이고 있지만 사실 재활용 업체들은 예전 방식 라벨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굳이 손으로 라벨을 떼지 않아도 이를 쉽게 분리할 화학적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분리수거 단계부터 모든 포장이 분리된 채 버려진다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새로운 포장 방식이 재활용을 더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온다.

이제 막연한 환경보호 구호보다는 지구와의 공존을 위한 구체적인 플라스틱 사용법과 처리법을 고민할 때다. 좋은 의도와 발 빠른 추진 못지않게 충분한 검증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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