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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수업을 듣긴 했는데 교수님이 누구셨지?"...비대면에 대학 교육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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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 대학 수업의 그늘 ◆

재수를 해서 올해 서울 명문대에 입학한 A씨는 처음에는 전공 공부와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전면 비대면 수업이 결정되면서 기숙사는 아예 폐쇄되고 캠퍼스에 가볼 수도 없었다. 비대면으로도 열심히 수업을 들어 보려 했지만 대학 과 동기 단톡방에서 한두 명씩 동기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힘이 빠졌다. 그는 "1학기엔 휴학은 안 되는데도 반수를 하려는 학생이 많은지 팀프로젝트에서 친구들의 열의가 하나도 없는 게 느껴졌다"면서 "나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한 해를 보내느니 수업 녹화 영상은 몰아 듣고 남는 시간엔 '삼반수'로 약대 준비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대학 비대면 수업이 2년째 이어지면서 대학에 전공 공부의 열기가 사라졌다. 비대면 수업은 수업 준비 부담이 작다 보니 신입생들은 반수, 2~3학년생들은 아르바이트, 3~4학년은 취업 준비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2020학년도 한 해 동안 188개 4년제 대학의 신입생 34만7657명 중 2만666명(5.9%)이 자퇴했다. 3~4학년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 상황을 이용해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에 힘을 쏟는 '멀티족'이 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5월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초·중·고교 등교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학은 자율에 맡기면서 대학생들은 2년간 등교 없는 대학 생활을 맞이하게 됐다. 대학들은 올해 '거리 두기 상황에 따라'라는 조건을 달아 대면 수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하루 확진자가 3000명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올 2학기도 대면 수업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무산됐다.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이나 현장실습을 하지 못하고 2년 만에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전문대생들이 겪는 상실감은 더 크다. 수도권 2년제 전문대학 기계과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B씨는 "지난 3학기 동안 학교에 몇 번 나가 보지도 못하고 실습을 제대로 못해본 게 제일 억울하다"며 "취업을 위해 전문대에 왔는데, 학교 생활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올해 여름엔 현장실습을 받아주는 기업체도 드물어 시간만 허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신입생들이 비대면 수업만 듣다 보니 사고나 학력 수준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멈춰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면서 "학습 공백이 더 커지기 전 대면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 문광민 기자]

강의만 틀어놓고 반수·알바行…"이대로면 대학교육 틀 무너져"


비대면 수업 집중도 떨어져
실시간 온라인 수업 열어도
100명 중 30명만 수업 참여

학생간 실력 양극화 현상 심각
친구·선후배 관계 갈증 여전
전면 대면수업 적극 검토해야

매일경제

지난 24일 학생들 발길이 끊겨 한산한 서울의 한 대학교 건물 내부 모습. 현재 일부 소규모 수업, 실험·실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학교에서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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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 A교수는 지난 1학기 비대면 수업만 계속하다가 기말고사 때 처음으로 학생들을 만났다. 설렘도 잠시,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답안지 수준은 둘째 치고 교수 이름을 적는 칸을 아예 비워둔 학생들이 절반가량 됐던 것이다. 그는 "주변 교수들에게 말하니 이번 학기에 교수 이름을 아예 틀리게 적는 학생도 많다면서 제대로 모르면 아예 공란으로 남겨두는 게 배려일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얼굴 마주 보고 하지도 않는 수업, 전공이니 기계적으로 수강 신청을 하고 교수는 누구인지 상관없이 그냥 기말고사만 치고 끝내는 게 대학 수업이 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낮아지고 있다. 시간 여유가 생겨 학교 수업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수업 집중도나 교수와의 상호작용 등에 큰 공백이 발생하고 있어 교수들은 대면 수업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매일경제

서울 사립대 공과대학 B교수는 "비대면 수업의 장점이라면 학교 가는 시간이 적다는 것인데, 사실 등·하굣길은 학교 가면서 '잘 배워야지'라고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그 시간이 없어지다 보니 몰입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대면 수업에서는 교육의 양적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심도 있는 이해력, 공감을 통한 지식 응용력, 지식을 대하는 사람으로서 자세를 배우는데 비대면 수업은 단지 학습을 하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그나마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교수와 상호작용이 가능해 학습 효과가 높다는 실시간 줌 수업 대신 자기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녹화 영상을 선호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올해 서울에 소재한 S대에서는 특강으로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 학생 100명 중 30명만 들어왔다. 학생들이 교수에게 실시간으로 질문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수업보다 24시간 원하는 때 재생 가능한 녹화 수업을 선호했기 때문에 결국 수업은 녹화분 상영으로 이뤄졌다.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대면 수업을 해보니 학생 간 실력 양극화가 크게 벌어진 것 같다"며 "대면 수업을 할 때는 교수님도 봐야 하니까 조금씩이라도 공부하고 준비해 평균이 유지됐다면, 지금은 하는 학생들은 하고 안 하는 학생들은 아예 안 해 격차가 커졌다"고 말했다. 비대면 수업은 녹화 영상을 반복해 볼 수 있어 학습 효과 측면에서 나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이를 반복해 숙지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 효과도 못 내기 때문에 학생 간 수업 이해도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박인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편하다는 이유로 대학에서는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는데 과연 대학에서 '진짜 교육'을 하려는 것인지, 학생들을 편하게 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교육이라는 건 결국 힘을 들일수록 효과가 있는데 수요자 선호도만 감안해서 대면 수업을 안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면 수업이 주는 구속성이 없어서 아예 학업에서 마음이 멀어지는 경우도 다수다. 수도권에 소재한 한 대학의 3학년생인 C씨는 이번 1학기에 줌이 아닌 녹화 영상으로 이뤄지는 수업만 골라 들었다. 단기 아르바이트(알바) 업체에서 언제 '콜'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입이 괜찮은 콜이 오면 언제든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C씨는 "그동안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수업 영상을 틀어놓기만 하면 어디서 뭘 하든 상관없기 때문에 편하다"고 말했다. 학생 역시 자기 시간 활용을 이유로 온라인 수업을 선호하고 있지만 학교 생활에서 친구, 선후배, 교수와의 관계에 대한 갈증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구 소재 K대에 재학 중인 한 2학년 학생은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새내기 캠퍼스 로망도 누리지 못하고 2학년이 된 우리 코로나19 학번을 '미개봉 중고'라고 친구들이 자조하고 있다"면서 "마음은 새내기인데 벌써 헌내기가 됐고 아직도 제대로 대학을 가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생각하면 빨리 대면 수업을 시작하도록 학교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방 국립대 E교수는 "학생 중 확진자가 나오면 학교에서는 모두 단과대, 학과에 책임을 물으니 어느 교수가 쉽게 대면 수업을 시작하겠나"라며 "두 과목이 비대면 수업을 하는데 대면 수업을 하는 한 과목을 듣기 위해 장거리를 통학하라고 하면 학생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으니 전면으로 대면 수업을 한다는 학교 방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학 교수는 "대학은 단지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곳만이 아니다"며 "이대로 비대면 수업이 더 이어지면 대학 교육의 틀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제림 기자 / 고민서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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