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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판결문에 '화천대유' 3번 나왔는데…권순일 "전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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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법관이 수천억원대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았다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수사에 이은 두 번째다. 법조계에선 자칫 ‘법조 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권순일(62·사법연수원 14기) 전 대법관이 수사 선상에 오른 장본인이다. 그에게 제기된 혐의는 변호사법 위반 및 사후수뢰죄다. 변호사법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등록하지 않고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한 변호사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12조 1항 4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등은 지난 23일 대검찰청에 권 전 대법관을 고발했고, 대검은 이튿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유경필)에 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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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전 대법관이 지난해 10월 30일 오전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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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변 등 고발인은 권 전 대법관이 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아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는 데도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고문을 맡아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재명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사건 대법원 무죄 당시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고 알려진 권 전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취업해 연 2억원 정도의 자문료를 받은 것은 사후수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천대유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추진한 대장동 민·관 합동개발사업에 민간 자산관리회사로 참여해 관계사(천화동인 1~7호)와 함께 3억 5000만원(지분 7%)을 투자, 배당수익만 4040억원(배당률 68%)을 거뒀다. 또 일부 구역의 아파트 사업을 직접 시행해 2000억~3000억원대 추가 분양수익을 얻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2개월 뒤인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했다.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권 전 대법관과 관련해 “대장지구 북측 송전탑 지하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시게 된 것”이라며 “실질적인 법률 자문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크레딧(지위)을 감안해 한 달에 약 1500만원, 연봉으로 2억원 정도 드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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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 자산관리 사무실 입구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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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전 대법관에 관한 논란은 변호사법 위반에 그치지 않는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 16일 “공직자윤리법이나 김영란법(청탁금지법) 등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고문 위촉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해명했는데, 법원행정처는 “화천대유는 자본금 10억원 이하 사기업으로 공직자윤리법상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 대상이 아니다. 권 전 대법관도 이와 관련한 취업 심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때문에 권 전 대법관은 이해충돌 논란에도 휩싸였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7월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에 관여했고, 이 지사가 재판받던 혐의 중 하나가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사에 대한 수원고등법원의 2심 판결문에는 ‘화천대유’란 단어가 3번 등장한다. 그러나 권 전 대법관은 “그 회사와 관련된 최근 의혹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권 전 대법관은 2017년 9월 대장동과 결합개발이 추진됐던 신흥동 제1공단 부지 개발과 관련 소유권확인 소송 최종심에도 대법원 2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가 2011년 새로운성남(NSI)으로부터 신흥동 개발 사업권을 양수받은 뒤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을 했다가 성남시가 반려하며 사업이 무산돼 발생한 분쟁이었다. NSI는 개발이익 일부를 받기로 했다며 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실제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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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특정 업체에 부동산 개발이익 특혜를 몰아줬단 의혹이 불거진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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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도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이 ▶재원조달계획 불분명 ▶사업 안정성 확보 어려움 등의 이유로 세 차례 반려되자 성남시를 상대로 별도 행정소송을 냈지만, 2016년 2월 최종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성남시는 당초 제1공단 공원화 사업과 대장동 주거단지의 결합개발 계획을 분리개발로 변경해 대장동 개발 사업이 속도가 붙게 됐다.

금융피해자연대에서 활동하는 이민석 변호사는 “몰랐다고 하지만, 대장동 사업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꿰고 있을 만한 이가 권 전 대법관”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권 전 대법관에게 추가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화천대유가 권 전 대법관에게 지급한 자문료를 두고도 “내로남불”이란 뒷말이 나온다. 권 전 대법관이 2015년 변호사 형사 성공보수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 주심을 맡아 “일반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형사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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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중앙포토


권 전 대법관과 함께 화천대유 고문 또는 자문변호사 등으로 재직했던 고위공직자 출신 법조인의 이해충돌 논란도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천화동인 4호의 소유주 남모 변호사가 2015년 수원지검의 정·관계 대장동 민영개발 로비 사건 수사 당시 변호사법 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때 수원지검장이었던 강찬우(58·연수원 18기) 전 검사장이 현재 화천대유 자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1심 재판에서 남 변호사를 변호했던 박영수(69·10기) 전 국정농단 특별검사는 특검 임명 전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활동했다. 1·2심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 역시 퇴임 후 몸담았던 로펌을 통해 화천대유와 고문 계약을 하고 법률 자문을 했다. 다만, 이들은 화천대유 고문 활동과 남 변호사와의 연관성은 부인하고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해충돌을 떠나서 법조계의 최고위직 출신 공직자로서는 극히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본인들이 적절히 회피하지 않은 건 법조인들 스스로 법조윤리를 내팽겨쳤다고 밖엔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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