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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남북정상회담' 꺼낸 김여정, 뒤엔 묘한 '밑밥'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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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재차 꺼내든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이 이틀 연속으로 호응하며 남북정상회담 개최 용의까지 밝혔다. 내년 한국의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미국을 움직이고 대북 제재 완화 등 최대한의 이득을 얻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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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방남한 당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국립중앙극장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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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北, 지금이 ‘정상회담’ 견인 적기 판단?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5일 발표한 담화에서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되면 의의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북남수뇌상봉 등이 빠른 시일 내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전날인 지난 24일에도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부부장은 지난달 한ㆍ미 연합훈련 등을 문제 삼고, 15일에는 한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시험에 '남북관계 파괴'까지 거론하며 날선 비판을 거듭했는데, 지난 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데 대해 갑자기 환영하고 나선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북한이 종전선언 제안 국면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이며, 전반적으로 조바심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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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청와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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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격한 입장 선회에 대해 한국 내 대선 판세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여야 대선 주자의 지지율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혼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으로서는 내년에 남북 대화에 우호적인 차기 정부가 들어서리라고 마냥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대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얻을 수 있는 카드는 최대한 챙겨두겠다는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전격적으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한국 대선 판세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환영하고 나섰다. 통일부는 26일 전날 김 부부장의 담화와 관련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들을 건설적 논의를 통해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며 "이를 위해 우선 남북통신연락선이 신속하게 복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북 간 통신선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차단한 지 13개월 만인 지난 7월 복원됐지만, 약 2주 뒤 북한은 한ㆍ미 연합훈련에 반발하며 다시 연락을 받지 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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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13개월 만에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했던 지난 7월 27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서울사무실에서 한국 측 연락대표가 북측 연락대표와 통화하는 모습. 통일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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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바이든 대북정책에 '한국 활용' 맞대응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ㆍ미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계속 무시한 채 무력 시위를 이어왔다. 지난 5월부터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 정황이 드러났고, 지난 11~12일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지난 15일엔 열차에서 탄도미사일을 쐈다. 하지만 미국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관련 동향에 굳이 연연하지 않고 사실상 '관리 모드'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전격 제안함으로써 한ㆍ미 모두의 관심을 끌고 대화 재개의 공을 상대편으로 넘겼단 분석이다.

특히 태세 전환의 시점이 의미심장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CFR) 대담에서 "이제는 대북 제재 완화를 고려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대북 제재를 계속 이행하겠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북한이 가장 바라는 제재 완화 문제를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엿보이자 북한은 이 틈을 노리지 않고 한국을 통해 미국을 움직이는 전술을 쓰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ㆍ미 갈라치기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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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오후(현지시간) 한미정상회담 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청와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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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목표는 ‘적대시 정책’ 철회, 즉 '제재 완화'



문제는 김 부부장이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이중 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의 모호성이다. 북한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부터 꾸준히 요구하던 적대시 정책 철회에 더해, 최근 들어선 '이중 기준 철폐'를 강조하고 있다. 핵ㆍ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북한의 군사 행동은 내부 계획에 따른 자위권 차원이니 한ㆍ미가 이를 문제삼을 권리는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북한은 "공정성을 잃은 이중기준과 대조선적대시 정책"을 지적하면서도 그 범주에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포함되는지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한ㆍ미 연합훈련이나 미국산 무기 도입 및 한국의 자체 무기 개발, 기존의 대북 제재 이행 등 북한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어떤 것이든 적대시 정책이자 이중 기준이라고 주장할 우려가 있다.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전제 조건을 내세워 향후 언제든지 말을 바꿀만한 '밑밥'을 깔았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또한 '적대시 정책', '이중 기준' 등 어떤 표현으로 포장하더라도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제재 완화'에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은 연합훈련 영구중단, 첨단무기 도입 금지 외에도 제재, 인권, 주한미군 등 방대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다"며 "북한이 의도적인 모호성으로 주도권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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