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엄벌 내려야” vs “억울한 죽음 막아야”… 다시 고개드는 사형제 찬반 논란 [뉴스 인사이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흉악범 법정 최고형 합당

솜방망이 처벌… 국민적 법감정 외면

경각심 고취 위해 사형 집행까지 필요

사형은 국가에 의한 살인

논쟁 여지 있지만… 생명 박탈권 없어

헌법개정 통해 사형제 완전 폐지해야

세계일보

지난 2004년 8월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뒤편 야산에서 유영철이 경찰, 검찰 직원들과 현장진술을 하던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개월 여아를 끔찍하게 학대하고 살해한 아동학대 살인자의 사형 선고와 집행을 촉구합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 여성 2명을 연쇄 살해한 전과 14범 강윤성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주세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들에 적힌 내용이다. ‘전자발찌 살인범’ 강윤성 사건과 생후 20개월 영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20대 남성 양모씨 사건 등 흉악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며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과 맞물려 ‘사형제’를 찬성하고 집행까지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중 한 명인 홍준표 의원이 생후 20개월 영아를 살해한 사건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되면 이런 놈은 사형시키겠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불씨를 지폈다. 같은 당의 대선 경선 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도 사형 집행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유 전 의원은 최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를 방문해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20개월 된 아이한테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느냐”며 “아동학대범은 악마보다 더한 악마니까 사회에서 격리될 필요가 있다.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흉악 범죄가 반복될 때마다 언급됐던 사형제 논란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형제 부활 목소리 높지만…한국,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

국민 여론은 사형제 찬성에 무게가 실린다.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15일 공개한 여론조사(응답자 1007명)에 따르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77.3%에 달했다. ‘사형제를 반대한다’는 의견은 18.7%에 불과했다.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 중 95.5%는 연쇄살인범 등 흉악범에 대해 사형 집행까지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최근 아동을 대상으로 흉악 범죄를 저지르거나 반성하지 않은 채 출소 후 다시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사형제를 찬성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그동안 흉악범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은 국민을 분노케 했다”며 “엄벌을 위해 법정 최고형을 요구하는데, 법정 최고형이 사형이라면 이에 걸맞은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대표는 “특히 아이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범죄는 매우 끔찍하다.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7)씨는 “교화가 되지 못하고 흉악 범죄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자들이 경각심을 갖기 위해 사형 선고와 함께 집행까지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 이 같은 국민적 법감정을 고려한 듯 검찰은 최근 흉악범들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있다.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 생후 16개월 만에 목숨을 잃은 ‘정인이’ 사건의 양모 장모(35)씨에 대해 검찰은 지난 4월 사형을 구형했다. 장씨는 입양한 딸 정인이를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반인륜적인 범죄”라며 사형 구형 이유를 밝혔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현에게도 검찰은 지난 13일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검찰의 연이은 사형 구형과 달리 재판부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내린 것은 2016년이 마지막이다. 2014년 당시 근무하던 육군 22사단 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일명 ‘임병장 사건’의 범인 임도빈에게 법원이 사형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임도빈 이후 사형 확정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이 정인이 사건의 양모 장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장씨와 양부를 더욱 엄벌에 처해달라는 진정서가 1만통 넘게 접수된 것으로 알려져 항소심 결과가 주목된다.

세계일보

지난 2014년 11월 7일 강원 고성 GOP(일반 전초) 총기 난사 사건의 피의자 임모(23) 병장이 7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제3차 공판을 마치고 군용버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형 확정판결 후 실제 집행된 것은 훨씬 오래됐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24년째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에 가까운 셈이다.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사회도 2007년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5개 단체가 모여 2017년 결성된 ‘사형제 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는 “‘완전한 사형폐지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국내 교정시설에 수용된 미집행 사형수는 총 59명(군 교도소 4명 포함)이다.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유영철, 강호순 등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1992년 강원 원주 종교시설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한 혐의가 인정돼 이듬해 사형 판결을 받은 원언식이 최장기 미결수다. 중국인 사형수도 있다. 경기 안산 일대에서 2명을 살해한 왕리웨이는 2001년 사형 판결을 받았다.

세계일보

지난 2009년 2월1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현장검증을 위해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범죄 죗값 받아야” vs “억울한 죽음 방지”

사형제를 두고 법조계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찬성 측은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건 변호사(법무법인 건양)는 “형벌은 교화의 목적만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큰 목적”이라며 “연쇄살인범이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 등에 한해 사형 선고와 함께 집행까지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형제 반대 측은 재판부의 오판으로 억울한 죽음이 발생할 수 있으며 사형은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한다. 김준우 민변 사무처장은 “오판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것이 사형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국민 각자가 생명권의 주체인 것은 명백하다”며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국가가 이런 생명권을 박탈할 권리는 없다. 헌법 개정을 통해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군사법원에 관한 내용이 명시된 헌법 제110조에 따르면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돼 일부 헌법학자는 헌법상 사형제가 용인된다고 주장하는 만큼 헌법 개정을 통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계일보

지난 4월 9일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형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흉악범들을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해야 한다는 것에는 한목소리를 모았다. 김 사무처장은 “사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격리가 필요하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최근 흉악범이 많고,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현재는 사형 이외에는 어떤 형벌을 받더라도 가석방을 할 수 있다”며 “집행을 하지 않더라도 사형을 선고해 사회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