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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통령 후보 공부해야...반중감정에 외교정책 흔들려서는 안돼” [플라자 프로젝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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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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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모인 플라자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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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패권 전환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딜레마는 동북아시아의 패권 전환을 한반도의 전란과 직결시켰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존립은 국제정세 변화를 포착해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유력 후보의 외교안보 철학, 정책을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보수는 한미동맹, 진보는 남북관계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투표로까지 이어진다. 이해에 따른 정치적 대립은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마저 집어삼켰다. 정권 성향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부터 뒤집힌다. 외교안보 상황까지 정쟁 도구로 삼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73년간은 한국 외교의 주체적 역량, 자율성이 특별히 요구되지 않는 시대였다. 한미동맹과 팍스 아메리카나로 불리는 유례없는 단극질서는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될 것이란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굳건해졌다. 미중 패권경쟁과 5년 단위로 흔들리는 남북관계가 한반도를 교차하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외교력이 생존과 직결되는 국가에서 대통령선거의 화두는 온통 후보를 둘러싼 소문에만 맞춰지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미국은 변하고 있다. 중동에서의 철군, 대중국 포위망 강화 등을 동시에 추진하며 비용은 동맹국들과 분담했다. 단극질서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이는 앞으로 한국 역시 기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향후 5년간의 외교무대가 차기 정권의 정책 실험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경향신문은 내년 대통령선거일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와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플라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인 외교안보, 경제, 군사 분야 전문가들은 대권 후보들이 참고할 수 있는 진단과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외교안보에는 좌우가 없다’는 원칙하에 경향신문은 이들의 생각을 가감없이 공론장에 올릴 예정이다.

그 시작으로 플라자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라 할 수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가 주장했던 것은 ‘미중 전략경쟁에 대비할 것’,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핵미사일에 대응할 국방 역량을 확보할 것’, ‘한일관계를 악화시키지 말 것’ 등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주류 사고와 충돌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교수에게 플라자 프로젝트와 그의 전문 분야인 미중 패권경쟁 등을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9월 6일에는 경향신문에서 대면으로, 9월 23일에는 서면으로 두차례 진행했다.

■‘플라자 프로젝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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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모인 플라자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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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설계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미중 전략경쟁을 헤쳐나갈 묘안을 설계하자는 목표로 출범한 모임이다. ‘플라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2019년 1월 19일 첫 발제 모임을 플라자 호텔에서 가졌기 때문에 붙였다. 진보냐 보수냐와 관계없이 외교안보·군사·경제 영역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전현직 관료, 학자, 각 연구소의 저명한 연구원 등이다. 참여인원은 옵서버를 포함해 약 50명이다. 두달에 한 번 토요일 오전에 모여 회의를 가져왔고, 코로나19 국면에서는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대선 후보들에게 묻고, 제안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우리나라는 정책 결정에 있어 대통령 의사가 절대적이다. 결국, 외교안보정책도 대통령의 이해 수준에 달렸다. 그런데 외교안보 사안은 선거에서 주요 변수나 이슈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 역시 거의 이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사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나 기회를 인식할 능력도 떨어졌고, 보좌진들도 측근이나 캠프에서 발탁했다. 미·중·일·러의 4강 외교가 중요하다면서 대사는 주변 정치인들 배려 자리로 활용하는 식이다. 과거 미국 자유주의 패권 질서 시대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미동맹에 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정세가 변하고 있다. 이제는 한미동맹도 변수가 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외교안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만 한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그 정도로 위기인가.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패권경쟁이나 세력전이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전쟁터가 됐거나, 나라가 망했다. 예외가 없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분명 지금을 패권경쟁과 세력 전이의 시기로 기록할 것이다. 기존 인식, 규범, 해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인 접근법으로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혼란은 상상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특히 다음 5년은 미국 국내정치의 변화, 미중 간 서태평양 전력의 역전, 미중 경제력의 균형화가 급격히 발생할 것이다. 미중 간 충돌 혹은 급격한 관계 변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점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게임체인저가 될 전술핵무기를 구비할 것이다. 이런 위기는 전대미문이다.”

-대안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한국은 외교안보·대북 분야가 지나치게 정치화돼 있다. 좌우에 따라 문제에 대한 접근법도 다르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도 하지 않는 식이다. 모두 모여 토론하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외교·군사·경제 심지어 과학기술 전문가까지 모여서 종합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당면한 위기는 과거 직면했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선 후보들과 직접 소통할 계획도 있나.

“귀를 기울이는 후보가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설명하겠다. 국익이 걸려 있는 외교안보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미중 패권경쟁의 현 스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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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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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관계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가.

“공식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패권경쟁 관계임을 부인한다.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미중 경쟁은 패권과 관련이 있다. 먼저 타협하거나 회피하는 측이 굴복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와 규범 제정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국내에는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인식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이 2030년 이내에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퓨(Pew)리서치의 2020년 여론조사를 봐도 서유럽 모든 국가가 이에 예외없이 동의한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이 계속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 생각하는 비율이 77%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다음이 일본인데 53%다. 한국과 세계의 인식차가 너무 크다. 국내 정치적으로 중국을 때리고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이 표를 얻는 방법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 실체나 국제정세의 흐름과는 괴리가 클 수 있다. 국민적 반중 감정에 외교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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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은 미국이 앞서지 않나.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국방비 규모는 2~10위 국가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럼에도 미국 내 주요 연구기관이나 내부보고서는 전면 핵전쟁이 아니라면 대만해협이나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이 이미 군사적으로 역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허언이 아니다. 미국은 유사시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denial, A2/AD) 전략 때문에 항공모함 전력을 운용하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지리적 인접성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국방비를 GDP의 2% 미만으로 쓰고 있다. 미국은 3.5% 수준이다. 향후 중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더 크다는 의미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은 미국 해군의 핵 항공모함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해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저지하고, 진입을 허용했을 때는 근거리에서 공격해 물리친다는 전략이다. 적의 전력 투사 수단 및 지원 능력에 대한 공격이 핵심이다.)

-외교력은 어떤가.

“미국의 영향력이 큰 지역은 서구와 중견국 일부다. 이미 중국은 120여개가 넘는 국가의 최대 무역국이다.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동유럽, 남아메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수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지지가 우세다. 서유럽 국가들에게도 중국과의 무역은 너무나 중요하다. 중국과 경제 협력을 끊거나 군사적으로 대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 일본이나 호주, 영국, 한국 등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중국은 경제력을 패권경쟁의 핵심 변수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력과 패권 사이에 반드시 즉각적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시차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경제력은 결국 패권의 근간이 된다. 경제력 강화는 핵심 과학기술력에 달려 있다. 결국 이 분야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미국은 군사력 및 외교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나.

“미국은 현재 국제무대에서 가용할 재원이 부족하다. 향후 국방비 수준의 이자를 감당해야 할 정도로 부채도 심각하다. 국내 인프라 건설을 추진할 재원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군사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민주 대 권위주의 대결, 체제 간 경쟁 등으로 미중 경쟁을 프레이밍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 불가피한 전략이다.”

-향후 미중 경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고 보나.

“미국은 우방국들을 모아 대응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동기나 이익 없이 연대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외교력 역시 이해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각국의 개별적 이해를 파고들고 있다. 오랜 역사적인 경험으로 중국은 합종보다 연횡이 더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연횡 전략에 맞설 마땅한 복안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인가.

“중국은 강한 적과 직접 부딪치지 않는다. 거센 파도가 다가오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강한 적이 다가오면 후퇴하고, 적이 후퇴할 때 괴롭힌다. 큰 싸움을 하지 않고도 승리하는 것을 추구한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시간관념도 설정한다. 시진핑은 미중 경쟁이 ‘장기전’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100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전략들은 미국이나 서구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바둑 경기와 같다. 반면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 때까지 정교한 전략 없이 돌진했다. 실질적 이득은 얻지 못하고, 자신의 역량과 정책적 옵션들을 소진했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체스경기를 한 것이다. 바이든은 국제정치를 잘 이해하는 정치인이다. 미국의 한계도 잘 알고 있다. 중국과 직접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즉 미국식 바둑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미국의 재원과 인력은 크게 소진하지 않고 동맹과 우방국들과 협력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다만 국내정치가 분열돼 있어 바이든의 대외 전략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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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단극체제에서 양극체제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은 미국/중러/서유럽의 삼분론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향배는 논리적으로 4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위 표 참조). 미중관계는 현재 C(제한된 협력)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A(신냉전)나 D(미중 공진)의 시나리오로 전이할 개연성도 존재한다. 현재는 A시나리오로 전환할 개연성이 더 커 보인다.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은 중국에 군사적으로 대응할 군사적 변환을 적극 추진 중이다. 중기적으로 평가한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중간선거에서 지거나 차기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D시나리오로 전환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보다는 국제 개입을 줄이고 국내문제에 치중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나 D시나리오는 한국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중국과 전면적 충돌을 하거나 중국의 영향권 내에 의도치 않게 편입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의 외교안보경제 정책은 시나리오 C, 즉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잘 유지되도록 돕고 보완해주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미국 자체적으로 이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대단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중견국들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노력과 협력이 없다면 혼돈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한국은 시나리오 C를 구축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시나리오 A, 그다음으로 D로의 전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3월 22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이 알래스카회담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했다고 언급한 것은 시나리오 D로의 전이 개연성도 충분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미국 동맹으로서 한국의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동북아 지역은 미국의 군사변혁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11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하원 군사위청문회에서 ‘미국 미사일방어청은 세가지 능력을 개발 중’으로 ‘하나(1단계)는 이미 한국에 배치됐고, 나머지 두가지(2·3단계)도 올해 전개돼 탄도미사일 방어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국은 이미 대중국 봉쇄를 위한 군사적 변환을 추진 중이다. 한미동맹은 이제 대북 군사동맹에서 대중 군사동맹으로 전환을 희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사드 도입 때 보여주었던 것처럼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사드의 업그레이드는 올해 끝낼 예정이고, 2023년까지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미사일 방어망에 연동되게 할 것이다. 중국이 극구 반대하고 있는 3NOs(추가 사드 배치, 미국 방공망 편입, 한미일 군사협력)를 한국이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대응은 어떨 것이라고 보나.

“중국은 아직 대한국 전략과 정책이 부재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보다는 압박 형태로 대응하려 할 것이다. 즉 이대로 가면 중국과 전면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중국-호주 충돌에서 보듯이 보상을 해줄 의지와 여력이 부족하다. 한국이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봉착할 수 있다. 한국 보수 그룹들은 전술핵 배치를 적극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의 대외환경이 5년 내에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항적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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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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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버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친중이며, 한미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논리다. 주요 외교안보 인사들의 언행이나 저서가 이를 강화시켰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의 역대 정권은 늘 한미동맹 유지와 강화를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삼아왔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과 평화적 공존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도 미국이 정한 제한선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오히려 이는 북한에 큰 불만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남북관계의 현실이며 한계다. 한미동맹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동맹보다 강력하다. 이처럼 군사적으로 제3의 적에 대응할 준비가 잘된 동맹은 지구상에 없다. 현상의 단면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가 친북·친중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보면 기존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을 흔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쿼드 가입 문제나 균형외교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객관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은 통상국가이며 ‘낀’ 국가이다. 개방성, 시장, 국제협력의 확대가 국익에 필수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쿼드’보다 상위 개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은 미국이 말한 ‘핵심축(linchpin)’이다. 축이 빠지면 미국도 대단히 곤혹스러워진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류는 북한을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갔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북한에 초점을 맞춰 풀어간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향후 대북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어렵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더 이상 이들의 정책 우선순위에 있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북핵문제를 어떻게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할지가 초점이 된다. 남북관계는 이미 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남북 간 평화를 말하지만, 이는 안보를 바탕으로 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 상황에 따라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면 질서가 깨진다. 그만큼 평화적 공존은 어렵다. 이제는 북한과 ‘대항적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대항적 공존이 무엇인가.

“핵심은 대북 군사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항해 미국의 도움 없이도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즉 공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한국도 북한의 핵미사일 때문에 공격하지 못하고, 북한도 한국의 대응 능력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차기 5년은 북한과 무엇을 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 특히 미중과의 정상회담에서 불필요하게 북한 비핵화 등의 어젠다를 내지 말아야 한다. 북한 비핵화는 세계 비확산 체제의 핵심이다. 이건 미중이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할 일이다. 자기네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의 외교협상 카드 중 하나로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런다고 해서 북한 비핵화가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북한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입장만 천명하고 한국의 이익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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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및 안전무력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평양 |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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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취해야 할 외교 전략

-미중 사이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패권경쟁 시기에는 국내정치에 원심력이 크게 작동한다. 국내는 친미, 친중 등으로 분열할 뿐 정작 강대국에 대응할 여력은 소진해버린다. 한국의 이해를 놓고 볼 때, 중국에의 편승은 고려하기 가장 어려운 마지막 선택이다. 그러나 한미동맹만을 고집스럽게 외치는 것도 답은 아니다. 미중 간에 섣부른 선택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불확실한 전환기의 실리적 정책은 성급한 선택의 도박(benefit-maximizer)전략보다 비용을 최소화(cost-minimizer)하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러 변수가 동시에 움직이는 국제정세는 하루아침에 판단하기 어렵다. 이를 받아들이고 진보와 보수를 넘어 최적의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전제하에 한국의 단기대책은 ‘결미연중 플러스’다.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위한 제3공간 외교와 다자협력 연대를 적극 추진해나가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외교적 자원과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 쿼드 플러스(Quad Plu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의 가입을 추구해야 한다. 중장기적 대책은 자율성을 확대하는 ‘중강국’ 전략이다. 미중 경쟁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추동하는 ‘강국’의 역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강국은 과거처럼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세계에 공공재를 제공할 역량이 존재하는지가 새로운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녹색성장, 질병방역, 4차 산업혁명, 환경보호, 비핵추진 레짐 등에서 한국이 세계를 이끌 수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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