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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韓美서 최고 무공 훈장 받은 ‘6·25의 예수’, 마침내 고향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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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군종 사제 에밀 카폰 유해 고향 캔자스 도착

장례식, 28일 대규모 공연장서 철야로 열려

유해 발견되며 시성 기대감도 커져

25일 오후(현지 시각) 미 캔자스주 위치토 아이젠하워 국제공항 활주로에 비행기 한 대가 안착했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부사관들이 성조기를 두른 관을 운구했다. 나흘 전 하와이주 진주만-히캄 합참기지 내 미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근무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던 관 속 유해의 주인은 6·25 전장에서 숨진 미 육군 군종 사제 에밀 카폰(1916~1951) 신부다. 중공군 포로수용소로 끌려간 뒤 학대와 고문 속에서도 동료 동사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인류애를 실천하다 숨진 그는 ‘6·25의 예수’로 불리며 추앙받았다.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최고훈장(태극무공훈장·명예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다. 올해 3월 전사자 유해 더미에서 신원이 확인된 그가 수습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캔자스주 신문과 방송은 앞다퉈 그의 귀향 소식을 전했다. 그를 맞으러 하와이로 간 조카 레이 카폰과 리 카폰 부부, 천주교 위치토 교구 관계자들로 구성된 귀향 대표단이 직접 카폰 신부의 유해를 확인하고 고향으로 모셔왔다.

스물네 살이던 1940년 신부로 서품된 카폰 신부는 6·25가 터지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1950년 7월 16일 한국 땅을 밟았다.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평양을 탈환한 뒤 북진하는 유엔군과 함께하며 부상자를 구하고 전사자를 위한 임종 기도를 했으며, 다친 적군까지 돌봤다. 그해 11월 쏟아지는 중공군 공세에 퇴각 명령이 떨어졌지만, 낙오 병사들을 돌보기 위해 지시를 거부하고 전선에 남았다가 중공군 포로로 끌려갔다. 열악한 환경으로 사망자가 쏟아져나오는 수용소에서 미군들을 돌보던 그는 중공군이 강제로 사상 교육을 하려 들 때면 점잖고도 단호하게 “당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중공군의 눈엣가시로 구타와 학대에 시달리던 신부는 1951년 봄 수용소에서 생애 마지막 부활절 미사를 집전한 뒤 5월 23일 숨을 거뒀다. 이 같은 구체적 행적은 그와 함께 수용소 생활을 했던 미군들의 증언을 통해 전해졌다. 카폰 신부는 2013년 4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군인에게 주는 최고 등급의 ‘명예 훈장’을 뒤늦게 받으며 전 미국 사회의 조명을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8년 뒤에는 태극 무공훈장 수훈자로 결정돼 지난 7월 조카 레이 카폰 부부가 유족을 대표해 청와대로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큰아버지의 훈장을 받았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이 아닌 군종 사제의 신분으로 한·미 양국에서 최고무공훈장을 받는 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카폰 신부가 나고 자란 고향은 한국인들에게는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으로 유명한 미 남부 캔자스주. 일찌감치 그를 지역의 위인으로 추앙하며 천주교 성인 추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캔자스 지역사회는 그의 유해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일찌감치 장례위원회를 꾸리고 성대한 귀향행사를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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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주 위치토 대성당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를 안치할 2440kg짜리 대리석관을 설치하고 있다. /가톨릭 어드밴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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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에 도착한 그의 유해는 우선 고향인 작은 시골마을 필센으로 향해 성 요한 네포무켄 성당에서 가족 및 고향 사람들과 먼저 만난다. 필센은 매년 여름 카폰 신부를 추모하는 연례 순례 행사가 진행된 곳이다. 유해 발견 소식이 전해진 올해는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도 예년보다 훨씬 많은 200여명이 참가했다고 조카 레이 카폰씨는 지난 7월 본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향에서 가족 및 마을 사람들과 만난 카폰 신부의 유해는 캔자스주 최대 도시인 위치토의 무염시태 대성당(the Cathedral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으로 옮겨진다. 성당에서는 신부의 유해를 안치할 2440㎏의 대리석 관을 제작했다. 현재 진행중인 바티칸 심사를 통과해 향후 지역사회의 염원대로 그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때를 대비해 각별히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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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미 위치토 교구에서 제작한 에밀 카폰 신부 귀환행사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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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폰 신부의 장례식은 28일 저녁 7시(현지 시각)부터 철야로 진행되며 일반에 공개된다. 이 행사는 최대 6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위치토 시내 대규모 공연장인 허트먼 아레나에서 진행된다. 밤을 새며 고향 사람들과 만난 카폰 신부는 29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영결식을 마친 뒤 영면한다. 주로 대형 스포츠이벤트나 콘서트가 열려온 공연장에서 이례적으로 단 한 사람을 위한 장례 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장례 행사의 전과정은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현지 언론들도 주요 장면을 생방송할 예정이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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