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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배운 운동권' 느낌의 鄭 외교 [노원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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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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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외교권을 넘긴 1905년 을사조약에 이름을 올린 5명의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단연 이완용이 유명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완용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완용이 민중들 사이에서 매국노의 대명사로 떠오른 데는 1907년 총리대신으로서 고종의 양위를 압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을사조약 당시 이완용은 학부대신으로 주무장관은 아니었다. 그때만해도 외부대신 박제순이 가장 욕을 많이 먹었다.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인사 중 문대통령을 빼고 역사책에 가장 크게 언급될 사람은 정의용 외교부장관이 아닐까 한다. '조국 추미애 김현미가 있는데 무슨 소리?' 할수도 있겠지만 정의용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안보실장이나 외교부장관은 평소에는 주목도가 높지 않은 반면 역사의 무대에서는 존재감이 급상승한다. '조국 내전'과 김현미의 '부동산 전패', 추미애의 '검수완박'은 물론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비할수는 없다. 내정을 잘못하면 국민이 피곤해지지만 외교를 잘못 하면 국체가 위태로워진다.

문재인 정부 최대 프로젝트는 트럼프와 김정은을 세번 만나게 한 것이다. 그것은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정의용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일할때 김정은을 만났고, '김정은이 핵포기 의사가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트럼프에게 옮겼고, 그래서 북한 독재자가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정의용은 애초에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초대해보라는 제안을 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나중에 인정하고 나섰다. 정상회담 이후 이 이야기가 서울에서 소문처럼 떠돌았고, 나도 의심쩍다고 생각해서 정의용에게 직접 이 문제를 제기했다." 정의용이 그저 김정은의 희망을 트럼프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김정은에게 아이디어를 줬다는 얘기다.

그랬던 정의용이 지금은 외교부장관으로서 '종전선언'으로 문재인 정부의 피날레를 장식하려 뛰고 있다. 김현미는 아파트값을 못 잡는다고 잘렸는데 북핵 폐기가 새빨간 사기극으로 드러난지 오래인데도 정의용은 끄떡 없다.

북한 문제는 그렇다치고 이 정부를 대표하는 '미국통'으로 평가받아온 정의용이 대놓고 친중 발언을 쏟아내는 장면은 당황스럽다. 그는 지난 방미길에 미국 외교협회(CFR) 대담회에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20년전 중국이 아니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을 반중 블록에 묶으려는데 대해서는 "냉전적 사고"라고 폄하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그의 이 발언을 옹호하는 사설까지 썼다.

그 말이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할순 없지만 한국 외교부장관이 미국 땅에서 한 발언으로는 충격적이다. 외교관은 논리로 말하는게 아니라 국익에 도움이 되는 말만 하는 직업이다. 정 장관의 발언은 국익훼손에 가깝다.

특파원 간담회에선 "중국이 강압적이라고 여러 나라가 우려하고 있지만 중국이 아직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 장관은 사드 이후 중국 사업을 접은 롯데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 생각해 본적 있나. 코로나 사태 한참 전에 중국 관광객이 끊겨 파리날린 명동 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중국 외에 어느 나라도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한적이 없다. 실제적인 피해는 하나도 없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는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중국에는 얻어맞고도 '안 아파요. 하나도 안 아파요' 한다.

중국이 강압적이지 않다면 세상에 강압적인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대놓고 한국을 겁박하는 발언을 일삼는데 정 장관 개인한테는 안 그러는 모양이다. 정 장관 기준에 강압적인 것은 병자호란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당한 꼴, 그러니까 세번 무릎 꿇고 그때마다 세번씩 머리 숙이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쯤은 돼야 하는 것인가.

정 장관은 프로필이 괜찮다. 좋은 학교를 나와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정통 외무관료로 잔뼈가 굵었다. 1946년생으로 586과는 세대나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그런데 나이 지긋한 그가 북한과 중국을 대하는 것을 보면 어느 586 이상으로 '586적'이다. '늦게 배운 운동권' 느낌이랄까. 직업관료에게 기대되는 세련됨과 매끄러움 따위는 잊어버린 것인지 곳곳에서 모나고 뾰족한 발언을 쏟아낸다. 일부러 누구 들으라는 듯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외교부장관은 역사책에 이름이 크게 나오는 자리다. 히틀러의 야심을 방치해 2차대전 비극을 부른 영국 수상 체임벌린과 항상 짝을 이뤄 거명되는 이름이 당시 외무장관 핼리팩스다. 핼리팩스는 히틀러를 오판했고 그 결과 체임벌린의 오판에 영향을 미쳤다. 정 장관 나이쯤 되면 역사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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