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美 반도체 투자 압박→기밀자료 요구 “앞으로 더 심해질 것” [뉴스원샷]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CEO 서밋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재 산업2팀장의 픽 : 세 번째 반도체 서밋



“(영업자료 공개 요구는) 남의 집 곳간을 일일이 들여다보겠다는 뜻 아니냐. 방법이 거친 걸 보니 미국이 급하기는 급했나 보다. 미국 인텔과 경쟁하는 삼성전자나 대만 TSMC로서는 더욱 당혹스러울 것이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반도체 기업에 앞으로 45일 안에 재고·주문량 등 주요한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데 대해, 25일 중앙일보와 통화한 익명을 원한 국내의 한 통상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집 곳간 들여다보겠다는 요구”



지난 23일(현지시간)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글로벌 반도체·자동차 업계 경영진을 소집해 온라인으로 반도체 공급망 대책회의(반도체 서밋)를 열었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TSMC, 인텔, 애플,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마이크로소프트, GM, 포드, 다임러, BMW 등이 초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서는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참석했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이후 반도체 서밋은 이번이 세 번째다.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반도체 시장 투명성’을 명분으로 관련 기업에 45일 안에 반도체 재고와 주문‧판매 등과 관련한 정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달라는 투자 요청에서, 이번엔 기업의 영업정보를 제출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러몬도 장관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정보 제공 요청은 투명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며 “(반도체 수급) 병목 현상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아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5일 내 제출 요구…강제수단도 동원



러몬드 장관은 그러면서 ‘국방물자생산법(DPA)’ 적용을 언급했다. ‘45일 내, 11월 초까지 자발적 제출’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DPA에 근거해 기밀정보를 받아내겠다는 경고장이다.

DPA에는 국가 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주요 필수물품의 생산을 확대하거나 가격 담합 등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제정된 연방 법률로, 당시엔 군수물자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제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자 이 법을 발동해 3M에 마스크 생산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요즘 미국 자동차 산업이 심각하다. 자국 내 자동차 재고가 106만 대 수준으로, 지난해(257만 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동차 공급난을 겪으며 중고차 가격은 다락같이 오르고 있다.

기술컨설팅 업체인 앨릭스파트너스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올해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770만 대의 생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했다. 매출 규모로는 2100억 달러(약 247조원)에 이른다.



압박 노골화…부담 커지는 국내 빅2



이처럼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업계에 대한 압박을 노골화하면서 삼성전자는 부담이 커졌다. 민감한 기술·영업 정보가 자칫 경쟁 업체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재고 수준을 빌미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고객사로부터 가격을 내리라는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최근 셧다운(생산 중단) 사태를 겪고 있는 현대차그룹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효과적이면서도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심영택 한국 뉴욕주립대 교수(미국 변호사)는 “이번 자료 공개 요구는 향후 가격 담합 조사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며 “미국의 반독점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가동될 수 있다는 사전 경고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더 많은 반도체를 당장 공급하라는 뜻이지만, 언제든 투자와 조사 압박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한양대 교수)은 “그만큼 미국의 주력인 자동차 산업에서 반도체 공급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라며 “또 자율주행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미국 정부가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도 있다”고 해석했다.

중앙일보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





“비밀유지 확약받고 협조 의사 어필해야”



내연기관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차랑 한 대에 200~300개 수준이지만 자율주행차 시대엔 10배가량으로 늘어난다. 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같은 고급 제품도 들어간다.

박 교수는 이어 “과거 미국은 슈퍼 301조(통상법 301조)를 동원해 일본의 반도체 업체에 원가 공개를 요구한 경험이 있다. 이후 D램 덤핑을 문제 삼아 (일본 반도체 업체를) 몰락시켰다”며 “반도체 공급난이 가중되면 미국 정부의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다. 삼성은 구글·애플·아마존 등 고객 기업과 인텔 같은 경쟁 업체에 대한 비밀유지를 조건으로 미국 정부와 협조하되, 우호적인 관계 조성 노력을 최대한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재 산업2팀장 lee.sangjai@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