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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19대 대통령, 문재인

김여정 밀당에 또 '흔들'…文, 종전선언 꺼내든 이유는? [대통령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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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있는 약 76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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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로 비교한 역대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제76차 UN총회 기조연설자로 나서 또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하며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고 나올지에 다시금 전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연설 직후 국내외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죠. 국내 진보언론들에서조차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대다수였는데요.

북한은 며칠의 시차를 둔 뒤 "눈앞의 현실은 종전선언 채택이 시기상조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냉담히 답하는거 하더니, 이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좋은 발상"이라며 유화적인 자세를 취해 기대를 모으는 중입니다. 다만 북한이 당장 대화테이블에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주한미군 및 전략자산 철수,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 명시적인 조건을 내걸고 있는데 이른 시일내에 북한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죠.

문 대통령 역시 김 부부장의 화답이 있기 직전까지 "한국과 미국에 의해 대화 제기가 있었는데 북한이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지만 대화의 문을 닫아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치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한 순간부터 철저히 북한 위주로 게임이 흘러가게 되고, 또다시 조롱섞인 거절만 나왔다면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민주당 입장에서도 여간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종전선언 카드를 또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수많은 국내외 변수가 고려됐겠지만 우선 UN총회 연설의 특성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이번 회차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의 UN총회 연설문을 살펴보며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제안을 내놓은 근거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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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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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서 대한민국 정부 승인받은 이승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엔총회 관련 연설문 중에는 많은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을 담고 있는 담화문이 하나 있습니다. 1948년 12월 4일에 국내에서 '유엔총회의 한국 문제 토의 연기는 부당'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문인데요. 여기서 이 전 대통령이 말하는 '한국 문제'는 북한과 별도의 남한 정부를 승인하는 사안을 뜻합니다. 통일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당시 북한에 이미 단독 정부가 수립돼 남한 역시 단독 정부 수립이 추진되던 상황인데요.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이 전 대통령의 담화문이 발표되고 열흘 남짓 후에 개최된 파리 유엔총회에서 한국 정부 승인안은 찬성 48표, 반대 6표, 기권 1표로 통과됩니다. 이 전 대통령이 이런 담화문까지 내게 된 배경을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한국 정부 승인을 반대하던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탓에 부침이 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탓인지 이 전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공산 세력에 대한 반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유엔이 한국 문제를 다루지 않으려 하는 데 대해 "공산적색 '테로(테러)'자들이 도처에 살인·방화로 우리를 공포시켜 복종하게 만들려는 것을 그분들(국제사회)은 모르는가, 이것을 안다면 도의상 효과를 위해서라도 곧 한국 문제를 결정해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한국 사람들을 권장시키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유엔의 한국재건단 활동이 마무리돼 가던 1957년에는 '유엔총회 의장 레슬리·문로 경의 공로를 치하'한다는 연설문을 발표합니다. 아랫사람에게 칭찬한다는 의미의 '치하'란 표현이 조금 어색합니다만 연설문 본문에는 전혀 그런 분위기 없이 감사와 존경의 문구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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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UNKRA개소식참석연설(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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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은 한국재건단이 9년여의 활동 끝에 총회에 활동보고서 제출을 앞두던 시점에 이 같은 담화문을 총회 의장에게 보냅니다. 그는 " 운크라(UNKRA·한국재건단) 국제기구 직원들의 헌신적 봉사를 기념할 만한 하나의 금자탑이라 하겠다"며 "운크라는 한국에 하나의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우리는 운크라가 완성한 허다한 사업을 눈으로 보고 있으며, 운크라 계획에 참여한 국가들과 직원들의 기억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극찬했습니다.

다만 "원조의 필요성이 없어질 단계는 아직 요원하다. 대한민국은 침략의 참화에서 회복되려면 아직 더 많은 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받은 원조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노태우, 韓 국가원수 최초의 유엔총회 연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유엔총회 단상에 올라 연설합니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이 1991년이니 비회원국 지도자 신분으로 연설에 나선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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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유엔연설4(1992)


연설문의 제목은 '한반도에 화해와 통일을 여는 길'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를 3개월여 앞두고 발표한 7·7선언(남북한 간 자유로운 왕래, 이산가족 생사 확인 등 6개항으로 구성)이 총회 연설까지 이어지게 된 것인데요. 총회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7·7선언에 담긴 제안등을 통해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키고 나아가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남북한이 서로를 존중하며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결코 우리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아니다. 이것은 민족 통합을 위해 신뢰를 심는 불가침한 과정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엔총회 연단에 선 한국의 대통령들은 남북한 관계를 주된 논제로 다루는데, 앞서 소개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최초 연설까지도 한반도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설문을 통해 선언하는 목표들을 살펴보면 이른 시일 내에 실현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생각해보면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꺼내 들기에 유엔총회는 여러모로 부적합한 장소입니다. 관계국 간 실무적 협상이 이뤄지는 사안을 소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눈과 귀가 집중되는 탓인데요.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정권에서 구상하는 대북정책의 큰 그림을 꺼내 들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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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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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에 남북,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대북정책이 국내 정치에서도 너무 중요한 사안이 돼버린 탓에,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가시적인 목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기대가 과도했던 측면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다시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자신의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한 국제사회 협조를 촉구합니다. 그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대결 구조로 인하여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반도에 안정된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에 화해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서울과 평양이 한반도의 평화에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당사국과의 더욱 합리적이며 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1991년과 1992년 두 차례나 유엔총회 연단에 올라 아직까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연설을 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경우 올해까지 두 차례에 온라인 연설 한 차례를 더하면 모두 세 차례이지만 '연단에서' 연설한 기준으로 따지면 노 전 대통령이 1위를 지키고 있네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1991년에는 "연단에 회원국의 대통령으로서 다시 서게 된 사실도 역사의 새로운 물결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이제 남북한은 모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성원으로서, 유엔 헌장을 준수하며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대 정부 대북정책 기조가 녹아 있는 유엔총회 연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은 임기 중 1~2회씩 유엔총회 연설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부분은 연설 당시 남북 관계를 국제무대에 설명하고, 정권이 펼쳐 나가려는 대북정책에 협조해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 유엔 천년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9월 6일에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섰는데, 이에 앞서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과 8월 15일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죠.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한 성과를 받아 그해 10월에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합니다. 현재까지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김 전 대통령이 유일하고요.

그는 총회 연설을 통해 "이러한 기적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은 남북한 당사자의 노력은 물론 유엔과 전 세계 지도자 여러분의 끊임없는 지지와 격려의 결과"라며 "통일은 우리 민족의 궁극적 목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야하며 남북 모두가 더불어 성공하는 통일을 이룩하기로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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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 기조연설 3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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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 북핵 문제의 일괄타결을 담은 '그랜드바긴'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기 위한 국제 공조에 적극 임할 것이며, 북한도 이러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며 "북한은 조건 없이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 1992년 남북한이 약속한 비핵화공동선언은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확대하고 북한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재용 기자]

<대통령의 연설 지난회차>

1회 - 박정희 "여러 대책에도 집값 올라" 사죄…부동산전쟁 60년

2회 - 집값 잡기에 가장 간절했던 대통령…盧 아닌 MB?

3회 - 野서울시장 칭찬한 유일한 대통령…盧 "청계천으로 서울 환해져"

4회 - 여가부 만든 노태우…女공천확대 요청엔 "여자들이 안뽑아"

5회 - 커지는 젠더갈등…軍가산점 폐지한 대통령 누구

7회 - "최빈국에서 G8으로"...역대 대통령 연설로 본 대한민국 '국격'

8회 - 박정희 "北 제압 위해 추경"…추가경정예산 70년 역사

9회 - "오바마도 부러워했다" 세계적 자랑 한국 건강보험 역사 살펴봤더니…

10회 - "박정희 vs 김대중" 성공적 의료복지 과연 누구의 공일까요

번외편 1- 노무현으로 시작해 노무현으로 끝나는데…野대권주자 책이라고?

번외편 2- "민노총 때문에 3번 감옥 갔다" 연이은 횡포에 홀로 비판나선 與 대선후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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