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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동남아를 한국판으로" 정부가 베트남에 백신 기부한 이유 [신짜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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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시내 호텔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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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60] 지난번 글을 통해 한국 정부가 삼성과 베트남 간 관계를 고려해 베트남에 백신을 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09/30775/)

지난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가운데 한 호텔에서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양국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방역물자를 나누며 함께 위기를 극복해 왔다"면서 다음달(10월) 한국이 베트남에 100만회분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국이 특정 국가에 직접 백신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는 영국과의 백신 스왑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100만회분을 들여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스왑을 체결한 직후 딱 이만큼의 백신을 베트남에 무상 지원할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어 문 대통령은 23일 공군1호기로 귀국하던 중에 기내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제는 충분히 여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됐다. 백신 후발국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베트남에 최초로 백신을 기부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삼성과 베트남 간 관계를 고려한 조치입니다.

삼성이 베트남에 두고 있는 굵직한 법인만 4개에 달합니다. 박닌 생산법인(SEV), 타이응우옌 생산법인(SEVT), 호찌민 가전복합단지(SEHC), 삼성디스플레이 베트남법인(SDV) 이 주인공인데, 박닌과 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삼성이 한 해 동안 생산하는 전체 스마트폰 물량의 절반 수준인 1억5000만대가량을 찍어냅니다. 삼성 TV의 핵심 제품인 100인치 이상 마이크로LED TV가 나오는 곳도 베트남 공장입니다.

삼성이 베트남에서 공식적으로 찍은 자본금만 20조원이 넘고 삼성이 베트남에서 수출하는 금액이 한 해 60조원이 넘습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베트남이 한국 항공기를 망망대해 위에서 회항시키고, 백신을 확보하라고 총리가 등판해 한국 기업을 압박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을 대체할 생산기지를 하루아침에 찾을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최근 직접 삼성 공장에 방문해 삼성을 상대로 "한국이 백신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SOS 요청까지 한 상황입니다. 삼성과 베트남 간 끈끈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베트남에 첫 번째로 백신을 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입니다.

두 번째는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입니다.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 전역에서 가장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나라는 일본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동남아의 맹주 태국은 일찍부터 일본 자본이 들어와 곳곳에 싹을 뿌려두었습니다. 일본의 태국 경제투자는 한국의 10배에 달하고, 거리에 굴러다니는 차 90%가량이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차입니다. 일본은 '확실한 텃밭' 태국을 축으로 인근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또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에 입각해 동남아 전역에 차이나머니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 규모가 한국의 10배가량 되니 푸는 돈의 액수 자체가 다릅니다. 공항 도로 등 기간시설을 중국 정부가 지어주고 그 대가로 중국 기업을 대거 침투시키는 국가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린 지 한참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동남아에서 '경제 영토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그나마 한국 입장에서 비벼볼 만한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미리부터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한 까닭에 현지 기반도 탄탄하고 호평도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현대차가 도요타를 제치고 차를 가장 많이 팔고 있으며 DB손해보험이 출자한 보험사 PTI는 현지 손보사 랭킹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신한은행 베트남법인은 현지 외국계 은행 자산 규모 2위입니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 간 경쟁에 맞서 단기간에 다른 나라에 공력을 쏟아부어 이런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밉든 곱든 베트남이란 나라를 축으로 동남아 경제 영토 확장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가장 먼저 백신을 기부하기로 한 것에는 이런 스토리도 밑바탕에 깔려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치적으로 강조한 '신남방정책' 역시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코로나19 이후 한때 한국과 베트남 네티 즌간 서로 불편한 감정을 쏟아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감정은 감정이고 실리는 실리입니다. 계산기를 잘 두드려 얻을 건 얻고 줄건 주고, 중장기 대비할 것은 그것대로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일입니다.

[하노이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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