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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中 기술 빼돌리기에 전세계 '초비상'…韓은 '솜방망이'[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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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핵심기술 빼돌린 A교수 집행유예형 선고

KISTEP "주요 국가들 기술 유출 단속 정책 강화...한국도 보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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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자료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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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 국내 최고 과학기술 교육기관의 A교수는 자율주행차량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했다 지난해 9월 구속 기소돼 지난달 말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석방됐다. A교수는 2017년 11월 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계획인 '천인계획'에 선발된 후 중국 측 대학으로부터 수억원을 받고 라이다(LiDAR) 기술 연구 보고서를 넘긴 혐의를 받았다. 라이다는 자율주행차의 '눈'에 해당하는 첨단기술로 전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치열한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다. 재판부는 A교수의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다 인정했지만 "당장 경제적 성과를 발생시키는 연구 자료가 아닌 점" 등을 고려해 '솜방망이' 선고를 내렸다.

미ㆍ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요국가들 사이에 반도체ㆍ인공지능(AI) ,자율주행, 양자기술 등 첨단 기술을 둘러 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천인계획처럼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인력ㆍ기술을 빼돌리고 있어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방패'를 더욱 견고히 하는 추세다. 반면 한국은 A교수의 사례처럼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보다 강력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5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해외 기술유출방지 정책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들은 첨단기술에 대한 해외투자, 인수합병, 인력 이동 등에 의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강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한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18년 8월 해외로의 기술이전을 보다 엄격하게 심사해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보호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춘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2019)를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포함된 수출통제개혁법(ECRA)은 상업 및 군민 양용(dual-use) 제품, 소프트웨어, 기술에 이미 적용되던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을 법문화, 영구화시키는 동시에 수출통제의 범위를 넓히고 규제를 엄격하게 강화했다. 위반할 경우 최대 100만 달러(약 11억 7000만 원)의 벌금과 20년의 징역형 등 강력한 처벌이 가해진다.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 들어서도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올해 1월 통과된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2021)은 담당 차관보 신설, 국가 안보 위협 해외 인재 프로그램 및 대학의 리스트 작성 등 한층 강화된 산업 기술 보호 정책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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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장 큰 동맹인 영국도 중국의 기술 빼돌리기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영국 의회는 2020년 11월 주요 기술 산업ㆍ핵심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보안 및 투자법(NSIA)'를 통과시켰고, 2022년 1월4일부터 시행된다. 영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투자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개입할 권한을 제공하는 게 뼈대다. 위반할 경우 최대 기업 매출액의 5%나 1000만 파운드(약 160억 원)의 벌금과 함께 해당 거래 취소라는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일본도 경제안보 관점에서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에 총력 대응하고 있다. 특히 대만, 한국과 함께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의 주 타깃이 되면서 최신 기술의 유출 우려가 고조되자 지난 4월 통합 혁신 전략 추진회의, 지난 6월 경제산업성 산업구조심의회 통상ㆍ무역분과회 안전보장무역관리소위원회 등을 잇따라 개최해 긴급 대응 방침을 정리했다. 일본 정부는 경제안보 관련 정보의 수집ㆍ분석ㆍ집약ㆍ공유에 필요한 체제 강화, 대학ㆍ연구기관, 기업 등에 대한 기술 유출 방지 조치 등을 추진 중이며, 내년 중 외환법 운용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기술 제공 시 허가 의무화 등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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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자료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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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기술 빼돌리기의 주요 타깃인 대만도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대만 대륙위원회는 지난달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대만 인재의 대륙 유출을 방지하겠다며 '양안(중국과 대만) 인민관계 조례' 개정을 예고했다. 과학기술자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하며 위반시 최고 1000만 대만 달러(약 4억1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중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대만을 비롯한 해외 반도체 인재 영입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3월 초순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 전체회의 개막 당시 14차 5개년 계획(14ㆍ5계획)에서 기술자립을 위한 외국인 기술인력 영입 확대 계획을 공개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도 지난 5월 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과학기술 자립(自立)과 자강(自强)을 통한 과학강국 건설을 천명하면서 외국 기술인력 확보에 나서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대만은 3년간 중국이 3~4배 이상의 급여로 유혹해 빼간 반도체 기술 인력이 2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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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요국가들의 기술 단속이 강해지면서 중국의 한국 기술 공략도 늘어나고 있다. 2014년 현대ㆍ기아자동차 설계도면 유출, 2018년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사들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 유출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진행된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재판 중 실형 선고는 4%에 그칠 정도로 약한 처벌 등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암호화폐 등 입증하기 어려운 경제적 대가가 오갈 경우, 해외 서버를 통한 정보-기술 유출시 피해 입증이 어려운 점, 중국 당국과의 사법 공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단속ㆍ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KISTEP은 "우리나라도 최근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며 각국의 다양한 사례를 참고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된 기술유출방지 법정계획에 대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의 상정과 검토 등도 고려해야 한다. 갈수록 증가하는 우리나라 첨단기술과 인력 등의 유출 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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