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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치, 그날엔…]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의 늪'에 빠진 진보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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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존재감·기대감 약화…'무관의 영광', 2000년 총선의 교훈

울산 북구 국회의원 선거 41.78%, 진보정당 첫 국회의원 배출 기대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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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구 살리고 사람 살리는 한가위' 정의당-대선후보 추석 합동인사에서 여영국 당 대표가 선물한 운동화를 신은 김윤기,심상정,황순식,이정미 대선 후보(앞줄 왼쪽부터)가 열심히 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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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9일 대통령선거는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일부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관심의 뒷전에 놓여 있다. 파격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아도 논란으로 번지지 않는다. 정치에서 악플보다 더 무섭다는 ‘무플의 늪’에 빠진 셈이다.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명의 대선 예비후보 가운데 진보정당 소속은 김재연 진보당 대표 1명이다. 대선 출사표를 던진 정의당 정치인들이 예비후보로 등록할 경우 인원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원이 늘어난다고 존재감이 복원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진보정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현실 정치에 뿌리를 내린 지는 20년도 넘었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정당이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던 시절의 정치적 역동성이 지금보다 더 컸다는 점이다.

진보정치 역사를 바꿔놓을 수도 있었던 2000년 제16대 총선은 오늘의 진보정당이 복기해야 할 지점이다.

2000년 제16대 총선 전까지 진보정당의 현실 정치 참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90년대에는 민중당도 있었고, 건설국민승리21(국민승리21)도 있었다.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른바 ‘민중후보’라는 이름으로 1987년 대선과 1992년 대선에 도전한 바 있다.

2000년 전까지는 대선은 물론이고 총선에서도 단 한 명의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다만 정치인 권영길이 이끄는 국민승리21이 1997년 대선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면서 2000년 제16대 총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진보정당이 사상 첫 국회의원 당선자를 만들어낸 선거는 2004년 제17대 총선이다. 그렇다면 제17대 총선 전에는 국회의원을 배출할 기회가 없었을까.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당선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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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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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제16대 총선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선·낙천운동으로 뜨거웠던 선거다. 진보정치 입장에서도 잊을 수 없는 선거다. 민주노동당은 전국 곳곳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이어갔고, 청년진보당은 서울 총선에서 파격적인 공약과 선거운동으로 관심을 모았다.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은 선거에서 중요한 요소인 인지도 측면에서 경쟁 정당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그런 정당이 있는지도 모른 채 투표에 임했다.

정치 역사에서 2000년 제16대 총선이 진보정당에 특별한 이유는 가능성과 기대감의 불씨를 키웠던 선거이기 때문이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선전한 것도 2000년 제16대 총선의 정치적 업적이 토대가 됐다.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의 젊은 정치인들은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현실 구현 가능성에 의문이 들고, 때로는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중의 시선을 모았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과 소상공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세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은 유의미한 선거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울산 북구 국회의원 선거는 진보정치 역사를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최용규 후보는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울산 북구에 출마에 1만8867표(41.78%)를 얻었다. 당시 울산 북구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보다 4배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울산 북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43.03%)가 1만9430표를 얻으며 당선됐다. 최용규 후보와의 표 차이는 563표에 불과했다.

당시 최용규 후보는 울산 북구에서도 농소2동, 농소3동, 양정동, 염포동 등에서 강세를 보였다. 열세 지역에서 조금 더 따라 붙고 강세 지역에서 표를 더 모았다면 진보정치 역사상 최초의 국회의원 탄생은 2004년이 아니라 2000년에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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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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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서도 진보정당 후보들의 선전이 이어졌다. 성남 중원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는 21.48%를 득표했다. 한나라당 김일주 후보가 얻은 25.11%의 득표율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서울 강북을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박용진 후보는 득표율 13.26%를 얻으면서 3위를 차지했다.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젊은 정치인의 총선 돌풍은 강북을 넘어 서울 총선의 화제로 떠올랐다. 정치가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주기 충분했다.

청년진보당도 제16대 총선에서 진보정치 역사에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서울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5%를 넘은 후보를 3명이나 배출했다.

서울 성북갑에 출마한 정회진 후보는 5.21%, 강북갑에 출마한 남교용 후보는 5.02%, 강동을에 출마한 설정은 후보는 5.38%를 얻었다. 설정은 후보의 득표율은 자유민주연합 후보의 득표율보다 높았다.

민주노동당의 전국적인 선전, 청년진보당의 서울 총선 선전은 ‘고인 물’처럼 인식됐던 정치에 대한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진보정치를 더 높이 성장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 충분했다.

당시 서울의 유권자들이 당선 가능성도 낮은 정당의 후보에게 5%가 넘는, 10%가 넘는 지지를 안겨준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 정치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나선 젊은 정치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그 속에 녹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00년 총선 이후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진보정당 정치인들의 총선 득표율은 상승했다. 이른바 스타 정치인도 배출했다. 하지만 2021년 진보정당의 정치적 위치는 예전 같지 않다.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던 2000년 당시의 진보정당이 국민적 기대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우월한 위치인지도 모른다.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를 선택한 국민은 200만명이 넘는다. 진보정당은 200만명의 기대감을 발판으로 더 성장하는데 성공했을까. 아니면 정치적 존재감이 약화했을까.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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