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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쿠키청년기자단] 다시, 편의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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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편의점의 주인공 ‘88만원부터 청년세대까지’

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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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홍지희 쿠키청년기자 = 편의점은 청년의 현실을 집약적으로 담아낸다. 2008년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아르바이트생, 고시, 취업 준비, 경쟁, 우울한 20대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되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 어떤 현실에 놓여있었는가를 보여주었다. 학업과 생계에 치여서 살아가며 하루세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이들이 오고가는 공간이었다. 2014년 출판된 ‘편의점 사회학’의 저자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편의점에서의 소비가 88만원 세대의 여유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편의점은 88만원 세대의 모습과 우울함을 담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88만원 세대라는 문제 지적 이후로 13년이 지났다. 다시 청년, 청춘, 공정담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칭하는 용어,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88만원 세대, 청춘은 청년세대로 대체되었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유명한 책 제목 대신, 노력과 열정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꼰대’, ‘라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기초적 편의에서 고급·만능 편의로

시간이 흘러 청년 문제를 둘러싼 신조어와 인식이 변했듯이 편의점의 성격도 변했다. 이제 편의점은 간편식만 파는 곳이 아니다. 편의점은 식당에서 파는 밥 같은 도시락 메뉴를 출시하고 트렌디한 메뉴나 화제가 된 레시피를 상품화하는 식으로 호흡을 맞춰나가고 있다.

또한 편의점은 ‘편의’에 적용될 수 있는 생활 모든 영역에 접근하고 있다. 편의점의 사업 영역은 명절 선물, 택배, 물품 보관 서비스, 생활용품 배달 서비스까지 확장되었다. 한국사회의 우울한 을들의 공간이었던 편의점은 점차 첨단화, 고급화되어간다.

바뀌어도 편의점은 어디까지나 편의점

편의점이 점차 세련되게 변하면서, 오늘날의 편의점은 2014년의 편의점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여 젊은 세대의 수요를 맞추고 소통하려고 하고 있으며 밥 같은 밥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편의점은 편의점이다. 여전히 청년이 밥을 먹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이다.

시장조사 업체 오픈서베이에서 진행한 ‘편의점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젊은 층의 이용비율이 높으며 편의점은 아직도 높은 비율로 식사 해결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편의점은 20대 아르바이트 종사자의 비율이 높은 곳이자 최저임금 미달, 임금체불, 쪼개기 계약, 안전 등의 불안정한 노동현장 자체이기도 하다. 이처럼 편의점은 변화했지만 편의점에 청년들의 애달픈 현실이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여전히 청년들의 삶이 담겨있다.

#88만원 편의점에서 벗어나기
청년 착취로 가동되는 편의점

편의점의 상품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물건 품목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점원이 튀김기와 같은 기구를 이용해 직접 조리해야 하기도 하고 택배서비스를 위해 전표 출력업무까지 담당한다. 지점에 따라서는 식당 규모의 테이블을 갖춘 편의점도 등장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고객 응대에서 감정노동이 수반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은 단순 단기 아르바이트나 반복업무가 아닌, 상당한 강도를 가진 노동의 하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업무 강도뿐 아니라 불안정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2017년 알바노조가 실시한 편의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402건의 사례에서 근로계약서 미작성 및 비교부 사례가 77.4%, 야간수당 미지급률이 67.3%, 최저임금 미달률이 55.0%에 달한다. 2021년 최근에 실시한, 청년유니온 청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서도 문제는 그대로인 상황이다. 여전히 편의점의 최저임금 위반율은 46.5%에 달하며 주휴수당을 보장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쪼개기 노동도 47.7%에 달한다. 이렇게 초단시간 노동, 최저임금 위반 등의 상황이 중첩되며 실제로 주휴수당 위반율은 77.3%에 달한다.

“아직까지도 최저시급 안 맞춰주는 곳 많아요. 점주 입장에서는 가게가 작고 입지가 안 좋아서 그렇다느니... 근데 그거 다 신고하면 점주들 망하죠. 그리고 끼니는 폐기(판매를 위한 유통기한이 갓 지난 음식) 먹으래서 먹는데 솔직히 먹다 보면 금방 질리고,, 잘못 먹었다 탈난 적도 엄청 많아요.”_편의점 폐기 찍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2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씨

편의점 카운터에 선 청년은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이 외에도 4대 보험 미가입률 87.6%, 휴게시간 관련 법규 위반율 59.4%, CCTV 감시 경험 41.8%, 고용주 또는 고객의 폭언 및 폭행 경험이 54.5%, 성폭력 경험률 12.9%의 결과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회적, 신체적, 정신적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 받는 상황이다.

“나이가 본인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되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 엄청 많아요. 돈 던지고 반말하는 건 뭐 어딜가나 기본이고, 생각해준답시고 내 몸매(외형)지적, 내 앞길 걱정을 빙자한 꼰대소리들... 이런데서 그만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야지 공부 안 하냐면서 자기 딸들 자랑하는 아저씨가 있는데 오늘도 와서 그 얘기 하고 갔네요. 20대면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 편의점이란 공간이 그닥 좋은 기억이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아요.”_편의점에서 불쾌한 외모 지적 들은 적이 있는 2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B씨

“재고 없다면 없는 거지 알바 의심하는 X들, “봉투 필요하세요?” 했는데 “그럼 이걸 들고 가요?”라고 하는 X들 많아요.“_감정노동에 시달리는 2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C씨

”취하신, 혹은 취하지 않으셨는데도 사회성 없는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오셔서 저를 하대하기도 해요. 카드를 던진다든가, 반말을 한다든가.“_폭언 및 폭력 경험이 있는 2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D씨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현장에는 임금 체불 문제, 최저시급 미달, 심각한 감정노동의 문제가 있다. 과거 편의점은, 아르바이트 하며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 각박하고 힘든 현실에 설명력을 실어주는 하나의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편의점 자체가 부당노동, 감정노동, 저임금으로 청년을 짓누르는 하나의 사회현실이다. ‘88만원 세대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가 아닌, 그 자체로 청년세대가 마주하는 하나의 벽이다. 청년의 암울한 삶에 대한 간접적 설명이 아니라, 청년이 마주하는 하나의 부당한 사회다.

“편의점 음식이요? 이제 비싸서 못 먹겠어요”

편의점은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는 공간인 동시에 2008년의 편의점의 모습을 그대로 대입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편의점은 고급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도시락, 해외브랜드 아이스크림, 다양해진 조리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메뉴가 다양해짐에 따라 ‘편스토랑’ 슬로건도 유행했다. 편의점 음식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이름의 한 예능에서는 승리한 메뉴를 실제 편의점에 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편의점이지만 그래도 ‘밥 다운 밥’을 찾고자 하는 애잔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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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홈페이지 제공

하지만 분명하게 주목해야 할 점은 예전처럼 끼니를 쉽고 싸게 때운다는 과거의 인식이 마냥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 코로나 19 상황과 마트 물가 상승에서 편의점은 필수품이나 주요 판매상품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리는 경쟁전략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경쟁적으로 홍보한 기사만 수십 건이 넘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편의점이 취한 주된 판매전략을 따라가 보면 고급화도 택하고 있다.

2017년 트렌드모니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편의점에서는 식당 식사보다 저렴한 수준인 3000원 상당의 도시락 소비가 높았으나 4000원 이상의 도시락이 계속해서 출시되며 4000원 이상 라인의 도시락 매출 비중이 증가했다. 실제로 편의점 업체의 프리미엄 전략이 특히 유행했던 2016-18년에는 4900원짜리 우삼겹 덮밥, 5300원짜리 장어덮밥이 출시된 바 있다. 최근에도 정찬 도시락과 같은 ‘프리미엄 도시락’이 출시된 바 있으며 이 외에도 이마트 24, 세븐일레븐, GS 25과 같은 편의점 업체가 자체 베이커리,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어 마케팅하고 있다.

”가끔 이용은 하지만 자주 이용하고 싶지는 않아요. 돈이 많이 부족할 때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고 비싼 느낌이에요. 솔직히 절약이랑 거리가 좀 멀어요. 가성비도 나쁘고요. 게다가 요즘 편의점 물건들이 다 비싸잖아요?. 점 바이 점이긴한데 바 아이스크림 별로 없고, 즉석식품도 요즘 식당 음식처럼 나오는 것들이라 다 가격대가 좀 있어요. 야식 먹으려고 갔는데 킬바사 소세지 하나에 6000원 하는거 보고 질겁했네요.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취생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니까 적은 양을 조금씩 구매하는거죠. 그러니까 사실 따져보면 저렴한 것도 아니고요.”_20대 편의점 이용객 E씨

“싼 것도 아닌데 또 먹고 나면 부실하게 먹은 것 같아요. 데워먹는 음식에 삼각김밥, 마실 거 이렇게 하면 이미 5-6천원 나와요. 양도 진짜 적고요. 어쩌다 든든하게 먹자고 골라보면 가격이 꽤 나가고요. 예전에 유튜브 예능프로 클립에서 편의점 음식으로 만드는 레시피 뭐 이런거 만드는 거 본 적 있는데, 가격이 거의 그냥 식당가서 한 끼 잘 먹는게 낫겠다 싶은 가격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_20대 편의점 이용객 F씨

이제 편의점에서 쉽게 때울 수 있는 한 끼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옛말이다. 편의점은 청년의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제안의 성격도 갖는다. 유효한 분석이기 위해서는 청년이 살아가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을 토대로 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책상 위 통계에만 존재하는 청년, 여론조사 기관이나 기업이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 낸 MZ문화, 동정의 시선은 청년에 대한 어떤 제대로 된 접근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래된 틀과 동정의 이미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청년세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새로운 개념이나 알파벳 붙이기가 아닌, 지속적이고 미시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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