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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업체의 구인난이 만든 진풍경 [최연진의 IT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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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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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벤처투자업체(VC) 대표로부터 구인난에 얽힌 뜻밖의 하소연을 들었다. 스타트업들이 개발자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지만 투자업체들의 구인난은 의외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VC들의 구인난은 투자 심사역에 집중됐다. VC에서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지, 투자 대상의 적격성 여부를 판단하는 자리가 투자 심사역이다.

요즘 VC들은 기술과 서비스 혁신을 앞세운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오면서 경제·경영전공자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기술을 아는 이공계 출신들을 투자 심사역으로 뽑는다. 이렇게 채용된 투자 심사역들은 기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투자 심사를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정보를 접하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한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곤 곧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거나 아예 창업을 한다.

그만큼 투자 심사역들의 스타트업 이동이 잦다. 어지간한 스타트업들의 회사 소개서를 보면 대표와 임원진에 컨설팅 업체나 VC 출신들이 포진한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바람에 투자업체들은 부족한 투자 심사역을 뽑기 위해 채용에 나서지만 그 작업이 만만찮다. 스타트업이 급격하게 늘면서 여기 투자하는 VC들도 덩달아 증가해 업계 전반에 구인난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재 국내 VC는 174개이며 여기서 일하는 투자 관련 인력이 1,200명 남짓이다. 이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운용하는 벤처펀드가 약 1,190개이며 금액 규모로 약 35조 원에 이른다. 투자업계 전체로 보면 업체당 투자 전문 인력이 평균 10명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십조 원의 투자를 진행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투자 심사역을 뽑을 수는 없다. VC들은 투자 심사역이 기술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펀드 운용능력을 갖추려면 5년 이상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 보니 VC들은 충분한 경력을 지닌 능력 있는 투자 심사역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바람에 요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VC들이 찾는 투자 인력 자리에 실무자급 공무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스타트업 육성 또는 지원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이 심심찮게 VC로 옮겨가고 있다.

공무원 출신들이 VC에서 할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들의 영역이 있다. VC 대표들은 공무원 출신들이 모태 펀드 등 정부나 지자체의 스타트업 투자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해당 사업을 꿰고 있다보니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지 비결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처럼 관련 부처나 기관에서 보살펴 주는 전관예우까지 작동하면 VC들로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VC로 옮긴 사람들 중에 경험을 쌓아 또다시 스타트업 창업이나 이직을 꿈꿀 수도 있다.

결국 스타트업 투자 열기가 투자업계에 뜻하지 않은 기묘한 인력 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권력 기관과 유착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을 다수 확보한 투자업체에 유리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하면 VC들의 구인난이 그들만의 고민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관련 인력을 양적으로만 늘리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인력의 이동을 막을 방법도 없다. 기우일 수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걱정거리를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일보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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